한판승의 사나이, 업어치기의 달인. 전 유도 국가대표 전기영 용인대 교수에게 붙는 수식어다. 전 교수는 한국유도의 전설이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고, 세계선수권은 3연패를 이뤘다.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전 경기 한판승을 거뒀던 일본의 유도천재, 요시다 히데히코를 세계선수권에서 두 차례나 한판으로 물리친 일화는 지금도 유튜브를 달구고 있다. 은퇴 이후 교수로서, 국제유도연맹의 심판 슈퍼바이저로서, 유도 해설위원으로서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전 교수를 만났다.
-많은 스포츠 중 유도를 택한 이유가 있나?
“유도에는 한판승이라는 멋진 득점이 있다. 한판승에 매료돼 어렸을 때부터 관심 있게 봐오던 중 (청주에 있는 교동) 초등학교에 다닐 때 유도부 학생들이 흰색 도복을 정갈하게 개서 어깨에 메고 가는 모습에 첫눈에 반했다. ‘아, 저거다’라는 느낌이 왔고, 남자다운 운동이지 않을까 해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모님과 상의도 하기 전에 무작정 유도실에 찾아가 선생님을 뵙고, 유도가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도 유도인이셨다고.
“알고 보니 할아버지가 운동을 많이 하셨는데, 그 영향으로 아버지도 씨름과 유도를 하셨다. 지금은 연로하셔서 그렇지 나보다 키도 크고, 오히려 신체조건이 더 좋다.”
-전기영 선수 하면 ‘업어치기 한판승’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많은 기술 중에 업어치기가 주특기가 된 이유가 있나?
“유도부에 들어갔더니 제일 먼저 가르쳐준 것이 업어치기였다. 당시 누구나 다하는 것이 오른쪽 업어치기인데 왼손잡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오른쪽 업어치기를 계속하니까 어느 순간 지루했다. 그래서 반대쪽으로 해봤는데 그게 신의 한 수가 됐다. 왼쪽 업어치기가 내 전매특허가 됐다. 유도에는 상대를 넘기기 위해 기울기, 지렛대, 걸기 단계가 있다. 상대방 선수가 어느 쪽으로 잡기를 하냐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내 좌우명이 ‘남과 같이해선 남 이상 될 수 없다’이다. 남들과 똑같이 하지 않으려고 상상력을 발휘해 독특한 방식으로 훈련을 했다.”
-‘업어치기 장인’인 전기영에게도 대처하기 어려운 기술이 있었나?
“세계대회, 올림픽에 나가 대결하려면 분명히 나에 대해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업어치기 기술 하나 가지고는 단조롭다. 다른 것을 개발해야겠다고 고민하던 차에 허벅다리걸기를 연구했다. 이후 업어치기 못지않게 사용했다. 두가지 기술을 겸비하니까 유도에 대한 자신감이 더욱 생겨 재미있었다.”
-선수 시절 징크스나 꼭 지키는 루틴 같은 게 있었나?
“어린 마음에 소문(루머)은 다 믿고 있었던 것 같다. ‘바나나 먹으면 미끄러진다’, ‘아침에 미역국 먹으면 미끄러진다’, ‘계란 깨면 안 된다’. 그래서 웬만하면 안 하려 했다. 그런데 어느새 우연히, 생각지도 않게 그 행동을 다 하고 있었는데 1등을 했다(웃음). 그래서 ‘괜찮네’ 하면서 하나씩 다 극복을 하게 됐다.”
-현역시절 정말 많은 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중 가장 의미 있는 메달이 있다면.
“운동선수들의 로망, 올림픽 금메달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다음은 96년 애틀랜타올림픽 뒤 열린 97년 파리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3연속으로 세계선수권 대회를 제패했다. 그때 자부심이 많이 느껴졌고, 남들이 하지 못한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이 굉장히 남달랐던 것 같다.”
-유도 종주국인 일본과 대결하는 유도선수들의 마음가짐이 남다를 것 같다.
“일본은 워낙 투자를 많이 하고, 유도 인구수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다. 일본 유도선수들은 기본기가 상당히 좋아 정자세에서 맞잡고 경기를 하면 우리가 열세에 놓였다. 그래서 전략적으로 상대 선수보다 많이 움직이고 부지런히 대처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대했다. 우리 선수들은 유도시간 외에도 체력훈련을 많이 한다. 일본뿐만 아니라 체격이 좋고 근력이 강한 유럽 쪽 선수들과도 대결하기 위해서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유럽 선수들의 힘과 체격이) 특히 더 엄청나다는 느낌이 있다.”
-유도 지도자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유도와 인성을 접목해왔다. 우리나라에서도 트렌드를 그렇게 잡았으면 한다. 스포츠가 상업화가 되면서 그러한 중요한 덕목이 무시되고, 성적 위주로만 비춰져 안타깝다. 유도에 좋은 문구들이 많다. ‘자타공영’(자신과 타인 모두 함께 공동의 번영을 누리자. 즉 유도를 통해 자신을 단련하고 단련된 자신을 통해 타인과 더불어 잘살아 보자는 뜻)이라든지, ‘유능제강’(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본래 유도는 약한 사람이 강한 사람을 이기기 위해서 발전된 무도로, 나보다 힘이 센 사람을 이기려면 부드럽게 자신의 체중을 이동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뜻)이라든지. 이러한 것들이 모두 인성과 관련된 것들이라 잘 접목해 유도를 지도하면 좋을 것 같다.”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아무래도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에 나가서 메달을 따는 장면들이 가장 좋다. 런던올림픽 때는 송대남 선수가 서른네 살에 금메달을 땄다. 매번 2인자로서만 살아오다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해피엔딩이라고 느꼈다. 정말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을 많은 분이 이 선수를 보면서 공감했을 것이다. 다들 힘들다고 포기했을 때 그 친구는 묵묵히 자신의 꿈 하나만을 바라보고 계속해 왔다.
-2012년 싱가포르유도협회의 요청으로 싱가포르 유도대표팀을 지도한 적이 있다. 어려움은 없었나?
“싱가포르는 영어권 나라더라. 선수들이 ‘하이(Hi)’라고 인사하는 모습에 문화충격이 좀 있었다. 우리나라는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하지 않나. 유도이기 때문에 가르칠 수 있는 것은 가르치자 해서 (예절) 인사를 우리나라 말로 가르쳤다. 시작할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끝날 때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건 가르치고 왔다. 지금도 메시지로 연락하면 스펠링으로 선생님을 쓴다. 줄여서 ‘Hello, SSN(선생님)’이라고 한다(웃음).”
-많은 부분에서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거나 대등해졌다. 유도의 경우 일본과의 격차가 있나?
“일본에서 들으면 상당히 기분 나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일본과 우리가 대등한 경기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렇게 믿고 싶고, 또 앞으로 올림픽에서 그렇게 (성적이 일본과 대등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 중 한명이다.”
-국가대표 코치를 하면서 이원희·최민호 등 대단한 유도인들을 지도했다. 그 선수들의 특별한 능력이나 장점이 있나.
“‘대식가’. 딱 세글자 생각난다. 경량급 선수인데도 헤비급, 중량급 선수들보다 정말 잘 먹는다. 대회를 나가면 그 둘만 유독 짐이 많다. 내가 ‘야, 너희들 뭐야. 왜 이렇게 짐이 많아’ 그러면 ‘먹을 건데요’라고 한다(웃음). 대회 갈 때 먹을 게 부족하면 불안하더라. 유도는 시합 때 먹을 수 있다. 워낙 스스로 알아서 잘하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나무랄 일이 없었다. 그것도 복이다(웃음).”
-국제유도연맹에서 심판 슈퍼바이저를 맡고 있다고 들었다.
“5년 전에 국제유도연맹에서 행정가로서 일할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2년간 경기 위원으로 일했다. 그러다 갑자기 ‘슈퍼바이저’ 제안이 들어왔다. 전 세계 모든 국제심판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직책이었더라. ‘왜 이런 걸 갑자기 나한테 하라고 하지 부담스럽게?’라고 생각했다. 알고 봤더니 슈퍼바이저가 전 세계에 6명 있는데 내가 6명 중 1명으로 일하는 거였다. 슈퍼바이저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세계선수권이나 올림픽의 챔피언이었다. 심판이 오판했을 때 옆에서 비디오 판독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다가 시합을 중지시킨다. ‘마데(잠깐이라는 뜻)’라고 한 다음 시합을 멈춰 놓고 비디오 판독을 통해 무전을 한다. ‘한판 아닙니다. 절반 주세요’ 하면서 정정한다. 어떻게 보면 유도 팬들과 시청자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이다. 왜냐하면 심판이 가끔 장난을 치는 경우도 있고, 각도에 따라서 보이지 않아 오판하기도 한다. 그럴 때 따로 중지시켜 비디오 판독으로 고쳐주는 역할을 한다.
-유도가 생활체육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말 그대로 이미지를 완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아직은 ‘유도’하면 부상 위험 같은 것 때문에 겁을 내고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다. 유도를 하면 더 건강해지고, 뼈가 튼튼해진다는 등 좋은 쪽으로 마케팅이 필요할 것 같다.”
-인성도 좋아진다.
“그렇다. 제일 중요한 건 인성이다. 태권도는 우리나라의 국기 스포츠다 보니 그런 시스템이 잘돼 있다. 유도가 태권도와 경쟁하기보다는 태권도와 마찬가지로 이미지가 좋아져 부모가 안전하게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시스템이 되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일반인이 유도 중계를 볼 때, ‘이런 부분을 보면 더 재밌게 볼 수 있다’ 하는 포인트가 있다면.
“유도에는 ‘절반’과 ‘한판’이 있는데… 이 ‘한판’이 되게 매력적이다. 그 말씀만 드리고 싶다. 한눈팔면 안 된다. 한눈 한번 팔면 그냥 넘어가 버리니까요(웃음). 채널 고정. 그 멋진 장면을 놓칠 수 있다. 그러니까 항상 집중해서 봐야 한다.”
-앞서 아버지 얘기를 했다. 지금처럼 성장하기까지 부모님의 도움이 컸던 것 같다.
“내 좌우명도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방 벽에 걸어두고 나가신 거다”
-아, ‘남과 같이 해서는 남 이상이 될 수 없다.’
“아버지가 그 글귀를 내 방에 걸어두었다. 그게 내 좌우명이 되면서 아버지가 뒤에서 나를 응원해 주신다는 게 느껴졌다.”
-어떤 유도인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이것이 되게 어려운데, ‘유도? 아, 전기영. 업어치기’ 이 정도만 돼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글·진행 김재현 한국문화스포츠마케팅진흥원 이사장 사진·동영상 청년서포터스 ‘젊은나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