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쓰는 말, 어원과 의미를 찾아서
무심코 넘기지만 정색하고 물어보면 잘 모르는 우리말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어처구니 혹은 어이다. 영화 <베테랑>으로 유행어에 오른 ‘어이가 없네’는 뜻밖의 일을 당해 기가 막힐 때 쓰는 표현이다. 맷돌을 돌리려고 하는데 손잡이, 즉 어이가 없으면 얼마나 황당한가. 그런데 우리말글을 지키는 작가 장승욱에 따르면 악역의 대사는 그른 듯하다. 오히려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는 성석제 소설에 담긴 의미가 사전적 설명에 잘 들어맞는다. 국어사전은 맷돌 손잡이가 아니라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사물로 정의하고 있다. 지붕에 얹어진 동물상이라는 어원설도 제기되지만, 대부분의 낱말이 그렇듯이 확실하고 명백한 부모는 알아내기 힘든 듯하다. 오히려 ‘어이’와 같이 유래와 기원이 다양한 토박이말일수록 생명력이 끈질길지 모르겠다.
순우리말의 어원과 의미를 살피면서 풍부하게 활용하는 일은 ‘우리의 것은 소중한 것이여’의 차원을 넘는다. 존재를 담고 현상을 꿰는 언어에 정통하면, 특히 모국어를 갈고닦는 것은 바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는 작업과도 같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도사리와 말모이, 우리말의 모든 것>은 광산이다. 처음 접하거나 사라져 가거나 되살려 쓸 낱말들이 노다지처럼 쏟아진다. 제목에 나오는 도사리는 익는 도중에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이고 말모이는 사전의 순우리말이다.
도사리를 줍듯이 뜻도 모르고 흥얼거리는 노랫말의 속살을 들여다보자.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의 아낙네가 안방과 안뜰을 함께 이르는 아낙에서 나왔다는 유래는 자연스럽게 아내, 안사람으로 이어진다. 홍콩 영화 <영웅본색>에 삽입되고 동남아 각국에서 번안되며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가요 ‘희나리’는 책을 읽기 전까지 개나리와 비슷한 꽃인 줄 알았다. 덜 말라 생나무로 있는 장작에 붙이는 이름치고는 참으로 예쁘지 않은가. “기다릴 수밖에 없는 나의 마음은/ 퇴색하기 싫어하는 희나리 같소”라는 가사는 사랑의 종말을 거부하는 절절한 심정이다. 불에 탄 통나무는 회색의 재나 검은 숯덩이로 변하기 때문이란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란 직설적 토로보다 어른스럽고 깊은 연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상앗대의 준말인 삿대도 입에 익지만 따져보면 답하기 힘들다.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라는 동요나 “에 헤야 데 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라는 트로트로 입에 착착 붙지만 말이다. 삿대는 물가에서 배를 떼거나 미는 데 쓰는 장대다. 배를 나아가게 하는 기구가 아니다. 잘못 사용했다고 ‘삿대질’까지 할 필요는 없겠다. 낱말 하나를 놓고 미주알고주알 캐는 것도 옹졸하지 않은가. 참고로 미주알은 똥구멍을 이루는 창자의 끝부분을 뜻한다. 일상에서 입에 담기 불편한 말을 미주알로 바꿔 부르면 쓰는 사람의 품격도 한층 올라간다. 흔히 욕설의 대명사로 통용되는 수캐의 생식기도 토박이말로는 ‘엘레지’다. 후손들의 교양 있는 언어생활을 배려한 조상의 지혜에 감사할 따름이다.
<정승민 독서팟캐스트 일당백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