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사람들-남겨진 사람들의 뚜렷한 아픔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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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살아남은 사람들(Those Who Remained/ Akik maradtak)

제작연도 2019

제작국 헝가리

상영시간 88분

장르 드라마

감독 버르너바시 토트

출연 카롤리 하이덕, 아비겔 소크, 마리 나기

개봉 2021년 2월 10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알토미디어(주)

알토미디어(주)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라는 흑역사는 인류에게 큰 생채기를 남겼고, 충격과 고통이 컸던 만큼 꾸준히 영화의 소재로 등장한다. 제목부터 노골적으로 읽히는 영화 <살아남은 사람들> 역시 당시를 소환한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이 작품이 당시 수용소의 참상을 직접적으로 고발한다거나 떠나간 사람들의 애도에 머물지 않고 이후의 시대와 사람들에게 주목하고 있다는 차별성을 높게 평가한다. 실제로 이 작품은 남겨진 사람들이 서로의 아픔을 이해해가며 보듬는 과정을 잔잔하게 그려나간다.

수용소에서 아내와 두 아들을 잃은 40대 산부인과 의사 알도(카롤리 하이덕 분)는 과거의 상처에 짓눌려 삶의 의미를 잃은 채 무기력한 일상을 살아가던 어느 날, 고모할머니 올기(마리 나기 분)의 손에 이끌려 진찰받으러 온 16세 소녀 클라라(아비겔 소크 분)를 만나게 된다. 거식증으로 몹시 야위고 또래에 비해 늦은 생리를 토로하는 고모할머니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냉소적이며 제멋대로인 클라라의 모습을 보며 알도는 연민을 느낀다. 이후 몇 번의 마주침이 이어지면서 두 사람은 상대의 깊은 상처를 확인하게 되고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되면서 서로에게 큰 힘이 되지만, 이는 또 다른 새로운 아픔을 잉태한다.

41세 아저씨와 16세 소녀의 위태로운 관계

<살아남은 사람들>은 헝가리 심리학자이자 작가인 F. 바르코니 주자가 2004년 발표한 <남자들의 세계의 여자들을 위한 소설>(2004)이라는 책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영화를 연출한 버르너바시 토트 감독은 가급적 원작소설을 정확히 담아내고자 노력했지만, 후반부를 이끌어가기에 부족한 드라마는 시나리오 작가와 함께 상당 부분을 추가하고 각색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매우 정적이고 따뜻한 작품이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정서는 녹록지 않다. 제2차 대전 직후 스탈린이 통치하는 소련의 지배를 받은 헝가리의 사회상은 매우 경직되고 불안하다. 그 안에서 상실과 이별의 기억을 애써 외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로를 경계해야만 하는 그들에겐 희망이나 행복이란 꿈속에서조차 묘연한 슬픔일 뿐이다. 여기에 필연적으로 맺어진 두 남녀의 특별한 관심과 연대는 그들의 나이 차로 인해 자칫 불순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감독은 이런 외형적 요소를 적극 활용한다. 다각도로 위태로울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의 관계는 섬세하고 밀도 있게 관찰된다. 이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긴장감을 유지하는데 종장에 이르러 안도와 비애가 교차하는 묵직한 여운까지 유발해낸다.

아카데미도 주목한 헝가리 영화의 현재

저예산의 열악한 제작환경에도 과거의 풍경을 설득력 있게 재현한 <살아남은 사람들>은 버르너바시 토트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그가 주연까지 맡았던 첫 번째 장편 연출작인 코미디 영화 <카망베르 로즈>

(Camembert Rose·2009)는 유튜브를 통해 영어자막으로 볼 수 있는데, 다수의 단편을 통해 내공을 쌓으며 주목받아온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비범한 가능성을 확고히 인정받았다.

영화가 내포한 고전적 품위와 감수성을 성취하는 데는 배우들의 몫이 컸다. 유약한 지식인 알도 역을 맡은 카롤리 하이덕은 헝가리 베케슈처버 출생으로 부다페스트 연극영화 대학을 거쳐 연극계에 입문해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의 맥베스 역 등 다수의 연극 무대를 통해 정통 연기를 갈고닦은 배우다. 이 작품으로 헝가리 필름 아카데미와 헝가리 영화비평가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000년생인 클라라 역의 아비겔 소크 역시 무대극을 통해 내공을 길렀다. 첫 주연 작품인 이 영화를 통해 헝가리 영화비평가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미국 버라이어티지가 선정한 ‘주목할 유럽 영화인 1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2020년 헝가리 아카데미상에서는 주요 4개 부문을, 헝가리 영화비평가상에서는 주요 3개 부문을 수상했다. 또 아카데미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부문에 헝가리를 대표해 출품되어 유력후보작 10편을 선정하는 쇼트리스트에 선출되면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경쟁하기도 했다.

헝가리판 살인의 추억 <누명>

㈜액티버스엔터테인먼트

㈜액티버스엔터테인먼트


헝가리는 영화의 탄생 직후인 1896년에 최초의 극장이 설립되고 발 빠르게 영화산업 환경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나라 중 하나였다. 하지만 현재는 시장의 생산과 수요, 자국 영화의 점유율이 상당히 낮은 편이다. 당연히 벨라 타르나 일디코 엔예디, 코르넬 문드럭초 같은 감독의 몇몇 예술영화 영역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외국에 소개되는 편수 자체가 많지 않고 상업영화의 영역은 더욱 그렇다.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절묘한 지점에 있는 <살아남은 사람들> 역시 시대극이지만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작품이고, 그만큼 주연을 맡은 카롤리 하이덕과 아비겔 소크의 연기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공교롭게 두 사람은 아르파드 소프시츠 감독의 2016년 작인 <누명>이란 작품에도 함께 출연했다.

1960년대 전후 10년 동안 헝가리 작은 마을인 마루프에서 벌어진 실제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누명>은 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처음 상영될 당시 헝가리판 <살인의 추억>이라 소개되기도 했다.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고 있는 레티(가보 야스베르니니 분)와 진범인 보그나르(카롤리 하이덕 분)라는 두 남자를 중심으로 다양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범죄 스릴러지만 영화 초반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밝힌 채 전개된다.

카롤리 하이덕은 독특한 성적 충동을 지닌 살인범으로, 아비겔 소크는 우연한 만남으로 화를 당하는 소녀 역으로 출연하는데 두 사람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은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살아남은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두 주연배우의 새로운 모습을 확인하는 즐거움이 배가 될 텐데 쉽게 접하기 힘든 헝가리 상업영화의 현재를 경험하는 데도 요긴한 작품이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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