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밤-부패 권력층에 맞선 한 남자의 복수 활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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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수의 밤(Nemesis)

제작연도 2019

제작국 태국

상영시간 84분

장르 액션, 스릴러, 범죄

감독 군파르위트 푸와돌위시드

출연 지라유 탄트라쿨, 라마바디 낙차트리

개봉 2021년 2월 3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라온아이

㈜라온아이

영화를 본 뒤 보도자료를 읽어보았다. 부패한 권력층에 복수하는 한 남자의 하룻밤을 라이브방송으로 생중계한다고? 생중계한다면 뜻을 이룰 수 있었을까. 다음 악당을 찾아가기 전에 경찰이 먼저 봉쇄할 텐데. 또 다르게는 이렇게 요약돼 있다. “그를 취재하기 위해 왔던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취재팀이 인질이 되어 동행한다.” 이거 내가 본 영화 맞나.

회계사무실에서 일하는 마놉은 젊은 신랑이다. 결혼 2년차 아내는 임산부다. 단란한 신혼생활은 아내의 직장상사가 마놉의 아내를 강간하면서 깨졌다. 직장상사 시티촐은 태국에서 제일 잘 나가던 TV쇼 진행자. 아무도 없는 저녁, 마놉은 시티촐을 찾아가 흠씬 두들겨 팬다. 시티촐은 권총을 꺼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나가던 마놉을 쏘지만, 마놉은 부상만 입고, 마놉의 아내가 총에 맞아 즉사한다. 시티촐은 상습마약범인 마놉이 부인의 치정관계를 의심해 쏴 죽인 것으로 사건을 조작한다. 증인을 조작하고 의사·변호사를 매수한다. 또 한명의 악당이 있다. 술 취해 슈퍼카를 몰던 이 남자는 애꿎은 학생을 치어 죽였다. 사건은 이 남자 집에서 일하던 정원사가 차를 훔쳐 시내를 돌아다니다 사고를 낸 것으로 조작됐다. 남자를 찾아간 아버지는 아들의 복수를 하려 했지만, 미수에 그치고 만다. 아버지는 교도소에서 살해당한다.

7년 뒤 어느 날 밤 시작된 복수

7년의 세월이 지난 2018년 여름밤, 그날 사건에 대한 복수가 시작된다. 촬영에 나선 이는 리얼리티쇼 취재팀도 아니고, 그날 밤 복수의 현장은 생중계되지도 않았다. 마놉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자신 안에 또 다른 이중인격 존재, 복수의 신 시바가 있다며 상담한다. 촬영팀은 기록을 남기기 위해 이 의사가 고용한 것이다. 마놉에게 마약을 주입했던 형사는 ‘시바’에게 얻어맞은 뒤 트럭에 치여 즉사한다. 이어 시바는 아내의 직장상사 시티촐에게 뒷돈을 받고 거짓변호를 한 변호사를 총으로 쏴 죽인다.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이 매수됐다고 실토한다. 이 과정은 촬영팀의 비디오에 고스란히 찍혔다. 그러나 태국 형법 제226조에 따르면 영상은 증거자료가 될 수 없다. 강압 등의 상황에서 찍힌 영상은 증거자료로 제출될 수 없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지난 2019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선보인 적 있다. 당시 리뷰를 찾아 읽어보니 전반적으로 호평 분위기지만, 영화 후반의 반전이 ‘억지 아니냐’는 물음표를 찍은 평들도 있었다. 앞서 리얼리티쇼 생중계를 언급한 시놉시스도 그렇지만 왜일까.

두 번째 영화를 돌려보며-온라인 시사의 가장 큰 장점이다-합을 맞춰보니 정교하게 앞뒤는 다 맞는다. 예컨대 박사가 독일에 있는 자신의 남편과 영상통화를 하는 장면이 있다. 영화의 타임라인을 관성적으로 따라가다 보면 독일에 있다는 남편이 ‘알고 보니’ 사고로 죽었다니 어떻게 된 것일까라는 의문이 당장 떠오를 수 있다. 그런데 이 장면을 다시 보면 영상통화 속 작은 창에 박사의 모습은 비치지 않는다. 즉 실제의 영상통화가 아니라 남편과의 과거 통화장면을 통해 박사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까지 끼워 맞추기엔 후반부의 상황전개는 데우스엑스마키나다. 시바와 미놉의 이중인격이라는 장치가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트릭이라면, 후반부의 반전은 대칭을 이루지 않는다. 모든 것이 너무 급격하게 뒤집힌다.

반전을 거듭한 진실

‘복수의 밤’ 사건의 진실은 형사가 촬영팀으로 그날의 일을 기록한 찻에게 그가 찍은 비디오의 메모리카드를 건네고, 찻이 그 기록의 편집본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세상에 드러난다. 물론 인터넷에 다 올라가지 않은 ‘진실’도 있다. 시티촐에게 매수된 의사이자 박사의 지도교수에게 총을 쏜 이는 누구였을까. 찻의 영상에는 주인공과 박사가 나눈 대화와 총격음만 찍혀 있다. 주인공은 박사에게 이렇게 묻는다. “이 세상에 정의가 있느냐고 믿나요.” 박사는 믿는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행해지는 사적 정의구현은 결국은 부정의한 시스템에 의해 단죄된다. 세상의 시계는 다시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흘러가겠지만, 그날 밤 벌어진 대량살인사건의 진실은 구전되는 판타지 속에서 살아남는다. 투박하지만 멋진 이야기다.

코미디 영화 감독, 사회비판 영화로 돌아오다

list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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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 관계자는 시사파일을 전하면서 이렇게 영화에 얽힌 뒷이야기를 전했다. “태국에서 지난해 2월 개봉하려다가 군부 압력으로 개봉이 미뤄진 영화”라고 한다. 영화가 담고 있는 사회비판 메시지는 뚜렷하다. 다시 앞서 홍보자료를 인용하면 영화가 담고 있는 사회비판을 태국의 현 상황과 연결시킨다.

태국은 입헌군주제 국가다. 즉 국왕이 있다. 태국의 최근 정치상황에서 가장 큰 분기점은 지난 2014년 군부 쿠데타다. 국왕은 쿠데타를 승인했고 쁘라윳 육군참모총장이 총리로 등극해 그 체제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10만명의 시민이 모여 군주제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코로나19 국면에서도 말이다. 인터넷 정리문서의 이름이 ‘2020년 태국 민주화운동’이다. 이 시위의 발단엔 8년 전 페라리로 교통경찰을 치어 죽이고 해외 도피생활을 하던 재벌 3세가 불기소 처분을 받은 것에 대한 공분이 있었다. 바로 이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묘사한 그 사건이다. 왜 집권 군부세력이 푸와돌위시드 감독의 이 영화를 불편해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감독의 전작은 2013년에 개봉한 코미디 영화 <쓰리 마스크 오브 익시스턴스>다(사진). <복수의 밤>도 액션장르의 틀 내에서 만들어진 영화지만 진지한 사회비판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역시 영화는 시대와 함께 호흡한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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