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사일런싱(The Silencing)
제작연도 2020
제작국 캐나다, 미국
상영시간 94분
장르 범죄, 스릴러
감독 로빈 프론트
출연 니콜라이 코스터 왈도,애나벨 월리스
개봉 2021년 1월 28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과거 밀렵꾼이었지만 마음을 다잡고 자신의 사냥터였던 자연보호구역의 관리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레이번(니콜라이 코스터 왈도 분)은 5년 전 눈앞에서 실종된 딸을 아직까지 찾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능성은 희미해지고 조금씩 지쳐가는 그는 술을 유일한 위안으로 삼으며 하루하루 피폐한 삶을 이어간다.
어느 날 레이번이 관리하는 숲의 강가에서 실종된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고 신입 보안관 앨리스(애나벨 월리스 분)는 이 사건이 그동안 꾸준히 발생해온 미해결 실종사건들과 관련 있음을 직감한다. 더불어 매사 사건을 일으키고 다니는 문제아 남동생 브룩스(히어로 파인즈 티핀 분)가 연관이 돼 있을지 모른다고 의심하면서 불안은 커져만 간다. 결국 각자의 목적과 과정을 통해 하나의 진실 앞에 마주 서게 된 두 사람은 서로가 지켜야 할 것들을 위해 치명적인 선택과 비밀을 공유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포스터의 느낌만으로는 숲을 배경으로 한 생존 모험물이나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등장하는 괴물영화로 오해할 만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양들의 침묵>이나 <세븐> 같은 1990년대 인기를 누렸던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범죄 스릴러로 기대하고 즐기는 쪽이 현명하다.
희생자들은 섬세한 시술에 의해 성대가 절개돼 비명을 지를 수 없는 상태로 깊은 숲속에 버려진 후 속옷만 입고 맨발로 도망치다 뒤쫓는 인간사냥꾼의 손에 희생된다.
90년대의 향수를 소환하는 범죄 스릴러
여주인공 앨리스 역을 맡은 배우 애나벨 월리스의 인터뷰를 보면 이런 영화의 정체성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스릴러 장르를 무척 좋아한다. 특히 90년대 스릴러 작품들을 좋아하는데 ‘그 좋았던 작품들이 다 어디 갔지?’라고 생각하는 찰나 <사일런싱>의 시나리오를 받게 되었다.”
동시에 이 영화는 우리가 기억하는 전형적 범죄 스릴러와 다른 요소들도 수용하며 변화를 꾀하고 있기도 하다.
영화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범죄자의 모습은 흥미롭다.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고 전신을 고릴라나 빅풋(Bigfoot·미국 수풀지대에서 살고 있다고 전해지는 미지의 생물. 사스쿼치라고도 불린다.)처럼 위장막으로 둘러싸 수풀 사이에 위장이 용이하도록 변장해 정체를 숨긴 살인자의 외형은 허구의 영화적 상상력이 극대화된 캐릭터다. 자체만으로는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현실성이 담보될수록 몰입감이 커지는 범죄 스릴러의 특성상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의문이다.
또 굳이 살상 정확도나 기동성 면에서는 효율이 떨어지는 아틀라틀(Atlatl·고대에 만들어진 투창기)을 이용해 사람을 사냥하고, 심지어 나중에 범행이 밝혀졌을 때 치명적 단서가 될 수도 있을 이니셜을 촉에 새겨 놓는다는 설정 역시 영화적 흥미를 높이기 위한 장치의 일환으로 유용할 뿐이다.
파국을 부르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관계
영화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복잡하고 다층적인 심리를 감당해야 하는 존재들로 그려진다. 그중에서도 가족애는 이 영화의 차별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요소이자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며 이끄는 핵심적 정서이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또는 애도하기 위해 극단의 폭력까지 불사하는 인물들의 처절한 몸부림은 예정된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결국 제목 <사일런싱>은 구조요청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희생자의 처지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고 범죄자를 응징하지만 모든 진실을 함구할 수밖에 없는 극단적 결말을 선택하는 인물들의 처지를 중의적으로 포괄한 제목이 된다.
감독 로빈 프론트는 자국인 벨기에에서 다수의 인상적인 단편들로 국제적 주목받은 뒤 장편 데뷔작인 <디 아르덴(D’Ardennen)>(2015)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이룬 인물이다. 전작 역시 가족애가 중요한 주제이다.
함께 저지른 범죄의 죗값을 홀로 치르고 4년 만에 석방돼 돌아온 형은 동생이 과거 자신의 여자 친구와 연인 사이임을 알게 되면서 폭주하는데 결국 우발적 살인을 저지르고 이를 처리하기 위해 동생에게 동행할 것을 강요한다.
한 여자를 사랑하는 범죄자 형제의 비극적 대립을 사납게 그려낸 이 작품은 201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벨기에 영화를 대표해 출품되기도 했다.
연출을 맡은 로빈 프론트는 벨기에에서 태어나 꾸준히 재능을 키워온 인물로 캐나다와 미국의 자본이 결합한 합작영화인 <사일런싱>은 그의 두 번째 장편영화이자 영어권 다국적 프로젝트로는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벨기에는 세계 영화시장에서 그리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는 아니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자국 영화 점유율이나 1인당 영화 관람횟수도 높은 편이 아닌데다 인접국인 프랑스와 네덜란드 등의 강한 영향과 할리우드 영화의 득세로 영화산업에 꽤 열악한 환경이다.
1990년대 이후 국내에 예술영화의 시장이 성장세를 보이며 소개된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의 <토토의 천국>(1991)은 국제무대뿐 아니라 국내 관객들에게도 벨기에 영화를 존재를 처음 각인시킨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감독의 후속작인 <제8요일>(1996) 역시 큰 성공을 거뒀는데 삽입곡으로 쓰인 루이스 마리아노의 ‘엄마, 세상에서 가장 예쁜 당신(Maman, la plus Belle du Monde)’은 지금까지도 국내 영화음악 프로그램의 단골 신청곡이다.
2000년대를 넘어서며 다르덴 형제나 샹탈 애커만 같은 작가주의 감독들이 두각을 나타내며 벨기에 영화가 꾸준히 거론되며 명맥을 유지하는 기회가 된다. 특히 <더 차일드>(2005), <자전거 탄 소년>(2011) 등을 대표작으로 하는 다르덴 형제는 한때 영화를 꿈꾸는 한국 젊은이들이 가장 선망하는 감독으로 꾸준히 언급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친숙하고 유명한 벨기에 영화인의 이름은 뭐니 뭐니 해도 장 클로드 반담일 것이다. 다리 찢기를 트레이드마크로 80년대부터 액션배우의 아이콘으로 등극해 현재까지도 왕성한 배우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본인의 이름을 내건 픽션영화가 2편이나 제작될 정도로 유명세를 자랑한다.
<최원균 무비가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