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함에 평단과 장르팬이 열광한 이유
제목 모추어리 컬렉션(The Mortuary Collection)
제작연도 2019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111분
장르 판타지, 호러
감독 라이언 스핀델
출연 클랜시 브라운, 케이틀린 커스터, 크리스틴 킬머, 제이콥 엘로디 외
개봉 2021년 1월 21일
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수입/배급 ㈜이놀미디어
이 진부함이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영화가 시작하고 한참의 시간을 지난 후에도 그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일종의 애피타이저인 첫 번째 이야기는 전형적인 나폴리탄 괴담이다. 화장실 서랍장 속 촉수 괴물이 도벽이 있는 소녀를 잡아먹었다. 끝. 기승전결보다는 하나의 이야기 조각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액자 속 세가지 이야기. 대부분 익숙하다. 하룻밤 엔조이를 꿈꾸던 남학생, 뭔가 위험스러워 보이고 외골수 타입의 여학생을 만나 콘돔 없이 거사를 치른 다음 날 구토를 느낀다. 음, 남학생이 임신하겠군. 예상대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아픈 아내의 병수발에 지친 남자, 의사로부터 받은 진통제로 아내를 살해한다. 고기 써는 진동나이프를 영화는 유난히 클로즈업해 보여주는데, ‘저게 이 단편의 주요한 도구가 되겠군’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의 시신을 유기하는데 박스 속에 다 들어가지 않은 다리를 그 진동나이프로 썬다. 시체가 든 무거운 상자(결혼 드레스를 보관하던 나무상자다)를 끌고 엘리베이터로 가는데, 유난히 고물인 엘리베이터는 이 남편을 태우고 고장 나고 만다. 그리고 한없는 추락. 추락하는 와중에 남편은 행복했던 신혼시절의 환영을 본다. 상자가 열리고, 해골바가지가 된 아내가 나온다. 추락 속 무중력 상태에서 이 백골만 남은 아내는 남편을 껴안고 키스를 한다. 무중력 상태에서 핏방울은 처연하게 공중에 떠올라 이들 부부 옆을 부유한다. 아름다운 연출이다. 고어의 미학.
딱 예상한 만큼의 이야기 전개
그리고 이 영화의 가장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라고 예고하는 베이비시터 살인사건. 정신병동에서 폭동이 있었고, 12명의 아이를 살해한 살인마가 병동에서 탈출했다. 번개와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 주인공 여성은 낡은 브라운관 TV로 공포영화를 보고 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어셔가의 몰락>처럼 TV 속 살인마와 쫓기는 베이비시터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여자는 고기를 가는 수동 그라인더에 남성의 손가락을 갈고, TV로 남성의 머리를 박살내 버린다. 으음. 반전이 있겠군. 예상대로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이 영화에 대한 평점은 높다. 매우. 리뷰도 호평 일색이다. 왜일까. 영화에서 명시적으로 언급되진 않은데, 4개의 에피소드는 각각 1950년대와 60년대, 70년대 그리고 8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미국문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각 에피소드에 반영된 시대적 특징을 알아차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코드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로서는 단순하게 모두가 평등한 아날로그 세상이다. 신문배달 소년이라던가, 촤르륵 촤르륵 다이얼을 돌리는 전화기. 심지어는 특수효과조차 메인은 CG가 아닌 특수분장이다(생각해보니 공중에 흩어지는 핏방울은 확실히 CG다). 맞아. 우리가 특촬물이라고 불렀던 것은 저런 코스튬 플레이어였지. 나중엔 감독으로도 데뷔한 톰 새비니가 자기의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실리콘과 아세톤을 활용해 몇 시간 동안 수고해야 하는 그런 특수분장이었다. 인건비가 싼 중국 하청산업 덕분에 CG로 떡칠하게 된 것은 21세기 들어서야 나타난 경향이었고.
사실 몇몇 고어신을 제외하면 영화의 스토리는 전형적인 1980년대 옴니버스물 <크립쇼(Creep Show)>(1982)를 닮았다. 정확히 말한다면 1950년대 공포만화 원작의 <납골당의 공동묘지(Tales from The Crypt)>(HBO에서 1989년부터 1996년까지 방영했고, 국내에서는 비디오로 출시되었다)의 짧은 에피소드들, 1950년대에 첫 방영되고 그 뒤 여러 차례 리메이크된 <환상특급(Twilight Zone)>(1983) 시리즈의 권선징악, 인과응보적 에피소드들의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다.
잊고 있었던 장르의 문법들
만약 이 영화를 전체관람가 등급으로 찍는다면? 흑백필름에, 노골적인 고어신은 김기영 감독식의 메타포로 바꾼다면 어떨까. 영화를 보며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공포영화는 장르영화다. 장르영화란 고유한 코드와 문법이 존재한다. 공포영화의 규칙은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쏟아져 나온 슬래셔 장르 영화들(<13일의 금요일> 시리즈나 <나이트매어> 시리즈 같은)을 통해 확립됐다. 자의식과잉으로 장르영화의 문법을 언급하며 의식적으로 위배하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너드(nerd)들, 공포 영화광을 양산한 게 <스크림>(1996) 이후다. 일부러 1980년대를 배경으로 설정해 우직하게 과거의 고색창연한 장르의 문법들을 밀고 나간 것이, 팬들이 이 영화에 환호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진수성찬을 먹고도 집밥이 그리워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니까.
영화의 설정은 1980년대 중반 레이븐스 엔드(raven’s end)라는 한 외딴 섬마을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말뫼에 사는 노동자의 삶을 다룬 스웨덴 감독 보 빌더버그가 만든 동명의 영화가 있다). 영화의 대부분 이야기는 이 섬마을 장의사 몽고메리 다크(이 얼마나 장의사다운 이름인가!)가 이끌어 가는데, 샘이라는 여성이 다크를 찾아오면서 이야기를 하나둘씩 풀어놓는다. 다크 역을 맡은 클랜시 브라운은 우리에겐 DC유니버스의 악당 렉스 루더의 목소리 연기로 유명하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관심이 갔던 것은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도둑소녀 역을 맡은 크리스틴 킬머(사진)였는데, 위키피디아나 인터넷영화데이터베이스(IMDB)에 별다른 정보가 없어 궁금했다. 그러다 구글 검색을 해보니 그의 공식사이트가 나온다. 배우이면서 동시에 영화감독이다. 연출한 영화는 대부분 단편이고 출연작도 최근에 몰려 있는 것을 보면 앞날이 창창한 떠오르는 신예다. 조금 더 검색해보니 그의 인스타그램 등 개인 SNS가 줄줄이 나온다. 이 영화 출연 소감도 올려놓았다. 세상 참 편해졌다. 영화의 시작 장면에 신문배달을 하는 동양계 소년이 나온다. 중국시장을 암시해 일부러 동양계 아역배우를 발탁한 것인가 생각했는데 엔딩크레딧을 보니 트리스탄 변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역시 IMDB에는 별 정보가 없어 인터넷을 검색하니 온갖 정보가 나온다. 2010년생 한국계 미국 소년이다. 이 아역배우도 근래에 여러 작품을 섭렵한 떠오르는 배우다. 아마 앞으로 더 스크린에서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