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요요현상(Loop Dreams)
제작연도 2019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92분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고두현
출연 곽동건, 문현웅, 윤종기, 이동훈, 이대열
개봉 2021년 1월 14일
등급 전체 관람가
유년기에 누구나 한 번쯤 접해보는 장난감이 요요(Yo-Yo)일 것이다. 가는 줄에 의지해 풀렸다가 되감기를 반복하는 둥근 몸통에 온전히 시선을 빼앗기는 황홀경이란 아직 세상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일지도 모른다.
90년대 말 대한민국에 밀어닥친 요요 열풍은 많은 청소년을 매료시켰다. 세계 굴지의 음료회사가 홍보의 일환으로 마련한 요요 이벤트가 기대 이상의 성과로 이어진 것이다. 요요에 남다른 애정과 재능을 품은 5명의 소년은 열정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무엇이든 때가 있는 법. 어느새 나이를 먹어 입시와 취업의 시기를 지내며 이들은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처지에 놓인다. 남은 인생을 후회 없이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놓아야만 하는가? 마치 미리 각본이라도 써놓은 듯 소년들은 제각기 다른 길을 선택한다.
한 친구는 경쟁사회가 원하는 이상적인 회사원으로서의 길을 선택한다. 다른 친구는 요요 자체를 소재로 한 사업을 일으켜 원대하게 키워보겠다는 꿈을 펼친다. 어떤 친구는 직장생활과 취미생활을 모두 누리기 위해 노력하고, 남은 친구들은 요요의 꿈과 열정을 끝까지 놓지 못한다. 시기와 계기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결국 그렇게 각자도생의 길을 걷게 되고 카메라는 그들이 선택한 삶의 궤적을 묵묵히 기록한다.
참을 수 없는 취미의 버거움
최근 레트로 열풍으로 다시 조명되고 있는 90년대는 다양한 문화와 욕구가 만개했다. 그즈음 젊은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찾았고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각자의 환경과 취향에 따라 각양각색의 것들이 탐구, 수집, 취미의 대상이 되었다. 이중 사전적으로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서 즐겨 하는 일’이라고 정의되는 ‘취미’는 말 그대로 전업이나 생계와는 별개로 오직 부담 없는 즐거움에 방점이 찍힌다. 하지만 시간과 노력이 투자되고 아마추어와 프로를 나누는 경계선 가까이 도달할 즈음이면 뜻밖의 갈등과 고통은 시작된다. 과연 이 선은 넘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정답이 없고 옳고 그르고의 문제도 아니기에 심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굳이 ‘요요’가 아니더라도 대상물이 다를 뿐 누구나 한 번쯤은 이와 유사한 갈등의 국면에 맞닥뜨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 속 청년들의 이야기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대부분의 사람은 즐거움을 버리고 생계를 위해 마지못해 직업을 감당하지만, 과연 그것이 마지못한 선택이라 단정할 수 있을까? 너무 좋아한 취미라 ‘전업’으로 선택했다는 누군가는 그로 인해 행복한 ‘취미’를 잃었다고 말한다. 영화는 진솔한 이야기들을 통해 담론과 사색의 여지를 제공한다.
일과 취미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상황을 표현할 수 있는 영어 제목을 정하자는 생각으로 선택한 ‘Loop Dreams’도 ‘반복하는 꿈’, ‘순환하는 꿈’이란 중의를 반영한 것이다.
기교보다는 투박함에서 파생되는 진실성
고두현 감독은 대학친구이자 요요 마니아인 친구의 부탁을 받고 공연을 위해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요요 공연팀 ‘요요현상’ 멤버들과 영국으로 향한다. 이 공연은 대학 졸업을 앞둔 ‘요요현상’ 멤버들의 마지막 공연이었다. 감독은 그들과 동행하며 목격하고 체험한 것들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귀국 후에도 멤버들의 뒷이야기를 기록해 나갔다. 그렇게 이어진 8년이라는 시간은 이 한편의 영화로 압축되었다.
영화는 현란한 타이포그래피나 빠르고 감각적인 편집 같은 화려한 기교보다는 기록된 영상들을 연대기적으로 이어나간다. 솔직한 인터뷰 화면이 지루하다고 느낄 때쯤 한 번씩 끼어드는 신기에 가까운 요요기술 장면은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물들이 선택하는 의외의 행보에 긴장감이 쌓이고 종국에는 어떤 결말을 내놓게 될지 궁금하게 만든다. 이런 담백한 연출은 영상에 나름의 현실성을 부여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담보된 진실성을 더욱 신뢰하게 만든다.
충분히 재미있고 가치도 있는 작품이지만 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2010년대 대한민국 보통 젊은이들의 현실과 문화의 일면을 진솔하게 기록한 사회학, 역사학적 자료로서 더 큰 의미를 갖게 될 작품임을 의심치 않는다.
요즘 ‘요요 현상(Yo-Yo Effect)’이란 말은 다이어트를 하면서 체중이 줄었다가 다시 늘어나는 것을 반복하는 현상을 일컫는 의미로 주로 사용된다. 요요의 반복 왕복운동에서 착안해 예일대 철학박사 켈리 D. 브라우넬이 처음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요요의 기원에 대한 가설은 다양하다. 최초의 언급은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에서 있었다는 주장도 있고, 용도나 발현지에 대한 추론도 가지각색이다. 그중에서도 요요가 단순한 오락도구가 아니라 사냥도구로 개발되었다는 주장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래서일까? 요요는 다수의 극영화 속에서 꽤 효율적이며 매력적인 무기로 묘사되는데, 아무래도 실물의 판매와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영상물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목격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1980년대 초 KBSTV에서 방영했던 만화영화 <이상한 나라의 폴>(1978년 <이상한 나라의 삐삐>라는 제목으로 TBC에서 방영)에서 주인공 폴이 마법의 힘으로 강화된 요요를 무기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프랑스를 주축으로 일본, 한국 등이 참여한 다국적 만화 시리즈인 <미라큘러스: 레이디버그와 블랙캣>의 요요가 친숙할 것이다. 일본문화 개방 이전인 1980년대 중반 어둠의 경로를 통해 인기를 누린 <스케반 형사(スケバン刑事)> 시리즈는 당시 청소년들 사이의 근본 없는 일본문화에 대한 동경에 일조했다.
프랑스 영화인 피에르 에테는 자신이 직접 연출하고 주연까지 맡은 <요요>(1965)라는 제목의 코미디 명작을 남겼다.
2017년 미국에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위 아 스로워스(We Are Throwers)>는 요요 마니아들의 세계를 나름 진지한 시선으로 폭넓게 기록했다. 58분의 영상 안에는 스포츠와 예술의 영역까지 넘나들며 새롭게 재조명받고 있는 요요의 다양한 모습과 현대적 가치를 재규정하는 과정이 집약적으로 담겨 있다.
<최원균 무비가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