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존스기자의 눈에 비친 소련 사회주의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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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스터 존스(Mr. Jones)

제작연도 2019

제작국 폴란드, 영국, 우크라이나

상영시간 118분

장르 드라마

감독 아그네츠카 홀란드

출연 제임스 노턴, 바네사 커비, 피터 사스가드 외

개봉 2021년 1월 7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수입 ㈜제이브로

배급 ㈜디오시네마

㈜제이브로

㈜제이브로

<동토의 왕국>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1984년 MBC에서 방영한 5부작 드라마였는데, 한 재일교포의 눈에 비친 북한사회를 그린 드라마다. 그가 북한사회를 보고 느낀 감정을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환멸’이다. ‘환멸’은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일본으로 돌아오는 만경봉호 선상에서 북한에서 받은 김일성훈장을 바다로 던지는 행동으로 상징되고 있다. 벌써 36년 전인데, 인상 깊게 남아 있는 장면이 있다. 노면전차, 그러니까 트롤리를 타고 퇴근하는 노동자들의 피곤에 절어 있는 모습에 대한 묘사다. 6·25전쟁 시기 구월산유격대를 다룬 <3840 유격대>나 <113 수사본부>와 같은 다른 반공활극과 다른 점은 나름의 근대화를 겪은 현대 북한사회의 일단을 살짝 드러냈다고나 할까. 세월이 지났고, 아는 것이 더 많아진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한반도 북부에 건설되어 있을 것으로 믿었던 ‘지상낙원’은 그저 허울 좋은 선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 깨달았다는 그 재일교포의 결론이 맞았을지도 모른다.

스탈린의 자금에 대한 탐사

영화 <미스터 존스>의 주인공이자 탐사기자 가레스 존스가 스탈린을 만나 물어보고 싶었던 것은 하나다. 그들(소련)은 트랙터와 자동차, 화학, 탱크가 과거에는 없었지만, 지금은 만들어내고 있다고 선전한다. 전 세계적인 공황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소비에트는 외형상 돈을 펑펑 쓰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스탈린의 돈줄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것을 묻기 위해 그는 스탈린을 취재하고 싶어한다. 국가원수를 취재하는 건 쉽지 않지만, 그는 이미 운 좋게도 히틀러와 괴벨스가 탄 개인 비행기에 탑승해 본격적인 광기로 치닫기 전의 나치 수뇌부를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그가 스탈린 인터뷰를 위해 도움받으려 했던 민완기자는 그와 국제전화를 하던 날 강도를 만나 죽었다. 죽은 기자가 남긴 단서는 그 답이 우크라이나에 있을 것이라는 강력한 추정이다. 모스크바로 무작정 떠났던 존스는 다시 당국의 감시를 피해 우크라이나의 시골로 간다. 자신의 어머니가 영어를 가르치던 유조프카로. 그리고 거기서 그는 ‘거대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는 사회주의를 동경하던 조지 오웰이 현실사회주의에 환멸을 느끼고 <동물농장>을 쓰게 된 데 가레스 존스의 증언이 직접적으로 역할을 한 것으로 다룬다. 소련의 허상에 대한 그의 폭로 강연에 참여한 조지 오웰은 연설이 끝나고 그에게 다가가 “그러나 무상병원과 무상학교도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 영화는 시작장면에 꿀꿀거리는 돼지축사와 가레스 존스가 품속에 간직하고 있던 어머니 사진 속 배경 농장을 보여준다. 이 영화가 오웰의 <동물농장>의 현실판이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1960~1970년대 한국의 장르영화는 계층 상승 또는 추락의 환유로 계단을 즐겨 사용했다(김기영 감독의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이 영화에서도 인상적인 계단 신이 있는데, 존스가 우크라이나에서 체포된 뒤 추방될 때 계단에서 월터 듀란티 뉴욕타임스 특파원과 조우하는 장면이다. 그들은 진실과 명분에 관한 짧은 설전을 하는데, 아마 반쯤은 사회주의자였을 듀란티는 존스의 사실추구가 맹목이라고 비판한다. 존스는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고, 듀란티는 지팡이에 의존해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진실 대신 명분을 택한 듀란티가 얻은 것은 개인 영달이다.

명분과 진실 중 무엇을 선택할까

영화 시작장면에서 가레스 존스는 클럽에 모인 청중 앞에서 국제정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그는 수상을 역임한 자유당 당수 로이드 조지의 외교자문역이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대공황을 맞이한 히틀러의 선택은 전쟁이 될 것이며, 독일제국은 소련도 침공할 것이라고 한다. 청중은 그의 주장을 허황된 잠꼬대쯤으로 취급한다. 결국 “가레스 존스의 선견지명이 옳았다”로 정리되지만, 아마 보다 복잡한 맥락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궁금한 것은 70여년에 걸친 체제대결이 끝난 지금, 이 영화가 어떤 맥락에서 보여질 것이냐는 것이다. 1980년대 ‘다큐멘터리 실화극’ <동토의 왕국>을 봤던 우리처럼, 그리고 당시 전두환 정권의 의도처럼 그렇고 그런 반공체제비판 영화 한편으로 보게 되는 걸까. 사실 <동물농장>이 한국사회에서 읽힌 맥락도 마찬가지였다. 사회주의자이자 극사실주의 저널리스트였던 조지 오웰의 다른 얼굴은 한참 뒤에야 발견되었다. 아마 탐사기자 가레스 존스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레스 존스의 실제 삶과 죽음

경향자료

경향자료


올해 1월, 영국 웨일스 지방 매체 ‘웨일스온라인’에는 이런 뉴스가 실렸다. “가레스 존스(사진)를 다룬 할리우드영화가 실제의 행적과 일치하지 않은 과장을 담아 존스의 유족들이 화가 났다.” 매체 보도에 따르면 유족들이 “사실과 달리 선정적으로 조작했다”고 주장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존스가 우크라이나 기근의 참상을 목격하고 증언을 남긴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에서처럼 죽은 어린아이의 살점을 먹고 구토했다거나 한 일은 없으며―이 대목이 유족들을 가장 흥분시킨 것 같다. 매체가 전한 바에 따르면 유족들은 영화에 대해 “그들은 존스를 기근의 목격자가 아니라 희생자로 만들어버렸다”며 화를 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존스는 오웰을 직접 만난 적 없으며, ▲스탈린 인터뷰를 시도한 적이 없고, ▲소련기행을 하는 동안 사랑에 빠진 적이 없다는 점에서 영화는 가레스 존스의 삶을 선정적으로 과장했다고 주장했다. 뭐, 영화사가 내놓은 응답은 “극화를 위해서 허용 가능한 수준의 허구가 덧붙여졌다” 정도의 성명이었고.

그런데 “스탈린 인터뷰를 시도했다”는 것은 진실을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돌진하는 이 위대한 탐사기자를 묘사하는 데는 적격인 것 같은데, 그래도 막무가내까진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의 일기장이나 취재기록 인터뷰를 모아놓은 사이트(garethjones.org)가 있다. 이 사이트에 게시된 기사에 따르면 그는 소련 외무상 리트비노프를 인터뷰했다. 1933년 봄 소련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가레스 존스는 1935년 이번에는 일본군정 치하의 내몽골 취재를 나섰다가 소련 밀정인 가이드에게 암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른 살 생일 전날이다. 지난 2012년 BBC에서 가레스 존스의 죽음과 관련한 탐사 다큐멘터리도 방영되었는데, 그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 역시 논쟁적인 주제로 남아 있는 모양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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