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카 교수 반대 집회 참석 인도 여학생 “드라마 촬영인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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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묘앞역 한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얼굴을 보니 맞다. 사진과 동영상 속 인도 여학생. 지난 11월 하순, 이 코너에서 “인도계 학생은 왜 ‘위안부 문제 부인’ 집회에 참석했을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11월 9일 세종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강제연행은 없었다”며 최근 이 문제에 대한 책을 낸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를 규탄하는 우파 성향 단체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과 국사교과서연구소 등이 주최한 행사였다.

호사카 유지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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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당시 사진을 보면 인도계로 보이는 한 외국인 여성이 집회에 참여했다. 이 여성은 어떤 경위로 참여하게 된 걸까. 주최 측은 “우리가 동원한 것이 아니라 해당 여성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라며, “자신은 세종대 재학 중인 인도인 유학생이며, 자신도 호사카 교수가 싫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적어도 내가 가르친 학생 중에 인도인 유학생은 없었다”며 주최 측의 주장은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마침내 그 여학생의 신원이 밝혀졌다. 교정을 걷고 있던 그 학생이 위안부 문제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고 있던 정무형 감독의 눈에 우연히 띄게 된 것이 계기였다. 이 학생은 자신의 집회 참여가 인터넷에서 이슈가 됐던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세종대 대학원에 다니는 학생인 건 맞다. 기자와 함께 만난 정 감독은 “한국말은 간단한 인사말 정도만 가능한 초보적인 수준”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진실의 시간. 왜 집회에 참여했을까. 다음은 그의 영어답변이다. “지나가고 있는데 저를 부르는 거예요. 학교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고. 저는 드라마 같은 것을 찍는 줄 알았습니다.” ‘호사카 유지’ 교수를 싫다고 말했나. “호… 누구요? 저는 그 사람이 누군지 전혀 모르는데요.” 그는 자신이 머무는 동안 집회 취지를 설명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어떻게 된 걸까. 행사를 주최한 김병헌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대표에게 다시 물었다. “지금 생각하니 호사카 교수가 싫다고 하진 않았고, ‘그 교수가 싫다’고 한 것 같네요. 기억을 더듬어보니.” 한국말로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해당 학생은 강하게 부인하는 대목인데. “…어찌 됐든 우리도 해프닝성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그 학생은 이 이슈에 대해 전혀 몰랐고, 양측 다 해프닝이었다고 하니 그 부분은 여기서 일단 매듭짓자.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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