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절로 무릎 꿇고 싶은 기도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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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호암마을은 산책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 진다. 어두운 방 너머로 쏟아진 햇살이 스테인드글라스를 지나며 빛의 스펙트럼을 빚어내고 있다.

고창 호암마을은 산책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 진다. 어두운 방 너머로 쏟아진 햇살이 스테인드글라스를 지나며 빛의 스펙트럼을 빚어내고 있다.

경건함. 전북 고창의 호암마을 초입부터 분위기가 남다르다. 이곳은 원래 한센병 환자의 공동체였던 마을이다. 한센병 환자 세 가족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공동체를 이뤘다. 그 뒤로 한센병이라는, 겪어보지 않은 이는 짐작도 못 할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이 모이면서 마을이 됐다.

이 모든 게 가능했던 건 무엇보다 신앙의 힘이었다. 마을의 중심인 고창성당 동혜공소는 한센병 환자의 무너지는 일상을 일으켜 세우는 척추였다. 이 성당을 지키는 인물은 파란 눈의 수녀다. 올해 78세의 강칼라 수녀는 무려 52년째 이 마을의 성당을 지키고 소외된 자들의 손을 기꺼이 잡아주고 있다.

길 끝에 자리한 허름한 흙집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내부는 오로지 기도만을 위한 공간이다. 공터 한쪽은 대나무숲이다. 그 안쪽에 숨어 있는 기도의 공간이 또 있다. 이곳은 피정의 공간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두운 방 너머로 햇빛이 쏟아지며 스테인드글라스의 아름다운 채광이 떨어졌다. 절로 무릎을 꿇고 싶어지는 공간이다. 다른 어떤 마을에서도 느끼기 어려운, 평화로운 기운이 마음에 깃들어오는 것 같은 기분이다.

<글·사진 정태겸 글 쓰고 사진 찍으며 여행하는 몽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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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