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남긴 오래된 시계를 수리해서 다시 차기 시작했다. 아날로그 시대의 수동식 태엽 시계이다. 왜 구시대의 유물에 갑자기 관심이 생겼을까? 연말이라는 시기가 사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올해는 워낙 유별난 경험을 하고 있으니 갖가지 상념이 튀어나오는 걸까? 안 그래도 시간에 대해 성찰하게 되는 시기, 지금의 시간은 블랙홀에 빠져 있다.
국내에서는 1월 20일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한바탕 전쟁으로 한 해가 통째로 날아가 버린 상황에 우리 모두 허탈감을 공유한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게 빌보드 핫100 차트 1위를 하는 방탄소년단의 노래 ‘Blue&gray’ 가사처럼 우울과 불안 속으로 사라져 가는 2020년.
하지만 올해가 가면 내년이 오고, 연말 연초에 보급과 접종이 시작되는 백신이 효과를 나타내 코로나19가 잡힌다면 새해는 또 다른 급변의 해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만도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던 부동자금의 물꼬가 바뀌었다. 동학개미의 행진이 선두에 서고, 외국인도 돌아오면서 오프라인과 다르게 코스피 지수는 연말 파티 분위기다. 연일 지수가 기록을 갈아치우고, 삼성전자 주가는 처음으로 7만원을 넘어섰다.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압박정책과 코로나19로 인해 발 묶인 돈줄이 증시를 달구는 현상은 이해되는 대목이지만 여기까지일까? 이것이 다일까?
아니다. 과도적 혼란기에는 더 앞을 바라봐야 한다. 퓨처! 하지만 이런 복잡계 시대에 미래 예측은 위험한 법. 큰 줄기의 준거를 찾아보자. 우리는 올해 11월 한달, 미국의 선거제도를 과몰입해서 본 바 있다. 중요한 것은 이 게임 속에 숨은 경제적 함의이다. 트럼프가 결집하고자 했던 러스트벨트의 유권자들, 결국 획득에 실패한 선거인단 확보 전략은 과거를 향한 메시지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20세기 제조강국,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에 세계가 열광하던 시절의 신기루를 환상처럼 보여주고 싶어했다.
반면에 바이든 민주당 후보 캠프는 미래경제로 차별화 전략을 폈다. 케네디 대통령에 감화돼 정치에 뛰어들었다는 바이든. 케네디는 우주개발의 비전을 제시했다. 그다음 케네디 역을 맡은 클린턴 대통령은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와 같은 세대로 디지털 경제를 연착륙시켰다. 이제 바이든은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암호화폐 시대의 경제체제를 정비할 것이다.
물론 고령의 바이든이 직접 주도하는 것은 아니다. 재무장관에 내정된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은 암호화폐 불신론자다. 하지만 장애요인이 아닌 완급조절 브레이크 역할을 맡을 것이다. 바이든 인수위 금융정책 책임자를 맡은 게리 겐슬러 전 상품선물거래위원회 의장과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 출신 인사의 참여에 주목하라. 미국과 유럽의 경제계 거물들이 암호화폐의 글로벌 자산화를 논의하는 이때 한국은행도 연구보고서를 하나 발표했다. 디지털화폐는 현금에 비해 조세회피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디지털화폐에 이자가 붙어야 한다는 것이다. 묘하게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미국 정권 교체와 더불어 코로나19 먹구름을 뚫고 비트코인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최영일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 이사·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