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을 만날 때 우선 ‘릴렉스’하는 여유를
듣기만 해도 방아쇠를 당긴 듯 저절로 기분 좋아지는 노래가 있다. 대놓고 “좋아 좋아 기분이 좋아”라는 소절로 시작하는 한대수의 ‘고무신’이나 퀸의 ‘You and I’ 같은 노래가 내게는 그렇다. 그런데 이 노래만큼 들으면 ‘뽕 맞은 듯’ 찌릿한 쾌감을 전해주는 노래도 없어 고심 끝에 이 노래를 골랐다. 이박사가 2001년 발매한 정규 2집에 실린 ‘울트라 릴렉스’다.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가 별다른 데 있는 건 아니다. 노래가 신나고 이박사의 목소리는 천상계를 오가며 고막을 흥분시킨다. 테크노 뽕짝이라는 전무후무한 장르를 개척하며 20년도 더 이전에 ‘원조 한류스타’ 자리에 오른 음악인답게 노래를 쥐락펴락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온 나라가 외환위기로 우울했던 시기에 박사의 추임새는 그래도 잘 될 수 있을 것이란 낙관을 갖게 했다.
이박사를 너무나도 좋아한 나머지 한때 그의 목소리까지 닮고 싶어했던 난 이 앨범이 발매된 해 군에 입대했다. 신나게 놀아 젖히기만 하던 시절이 끝난 것이다. 전역을 하면 인생이 펼 것이라 생각했던 건 오산이었다. 누구나 그렇듯 나이가 들면서 짊어지는 책임은 늘어났고 타향살이하며 마음 둘 곳 없을 때 이 노래를 들었다. 대학에 한발 걸쳐둔 기간은 오래됐지만 먹고 살려고 이일 저일 해봐도 마냥 비정규직뿐이어서 정규직 일자리 하나가 간절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기억이 난다. 학생식당에서 밥 먹고 나와서 햇볕 쬐면서 친구에게 들려주곤 했다.
그렇다고 그때가 너무 어렵고 힘들어 눈물겨운 시절로 기억하는 건 아니다. 반대로 인생이 만만하지 않다고 느낀지도 꽤 지나서 ‘그래, 이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 다시 어려운 처지에 놓여도 그저 망연자실하진 않겠지’ 하는 생각이 들던 때였다. 어쩌면 이 노래가 그런 용기를 심어줬을지도 모르겠다. 도통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아리송한 가사가 오히려 웃음을 이끌어냈고, 곡조가 절정으로 치달을수록 웃음 폭탄을 맞은 뇌 속엔 도파민이 뿜어져 나와 황홀경으로 데려갔다. 곡의 마지막에 “됐다!” 하는 박사님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원곡은 일본의 한 애니메이션 주제가인데 작사·작곡을 한 이시노 타큐가 이박사와 일본에서 음반작업을 함께한 인연이 있다. 나중에서야 이 곡이 번안곡임을 알게 된 뒤 원래의 가사를 찾아보니 정체불명의 한국어 가사가 사실은 원곡 가사 내용대로 번역했기 때문에 나왔다는 점도 알 수 있었다. 나름의 의역 때문에 원래 가사의 맥락을 알 수 없게 된 데다 이박사 특유의 정서와 겹쳐져 당시 유행하던 표현대로 ‘엽기적인’ 가사가 나온 것이다.
선불교의 화두 같기도 한 가사를 읊조리며 이박사의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과거의 그 시절 자신도 만나고 어느 미래 해탈한 듯 웃는 이도 만난다. 그리고 대단치 않지만 나에게는 든든하고 소중한 깨달음 하나가 남는다. 역경을 마주할 때가 되면 그때가 언제든 우선 ‘릴렉스’하는 여유를 찾으라고. 긴장해 움츠린 어깨를 펴고 눈을 들어 긴 숨을 가다듬으면 슬며시 웃음도 나온다. 마치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시장에 가서 큰 대야 가득 꿈틀대는 미꾸라지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때처럼.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여유부려 훌렁훌렁 언제나
눈앞에 비빔밥
늘렁늘렁늘렁늘렁 도깨비들
물리치고 이겨요 야
나는 나는 울트라 릴렉스
완벽하고 기분 좋아 딜럭스
백전백승이야 딜럭스
뛰어나와 노래해요 귀여운 곰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