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노동자들이 했던 일의 57%는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50년 동안 절반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졌음에도 세계는 여전히 노동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노동의 종말(End of labor)>을 ‘구글 N그램 뷰어’(1800년대 이후 발간된 전 세계 서적을 검색하는 사이트)에 입력하면 1886년 최고점을 찍은 뒤 20년 내외의 간격으로 고점을 반복하다 최근 들어 잠잠해지는 경향을 볼 수 있다. 동일한 방법으로 <자동화(automation)>를 검색하면 1963년과 1983년에 가장 높은 빈도수를 나타내다 2011년 이후부터 다시 상승하는 곡선을 그린다. 인공지능(AI)에 대한 기술적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은 2020년이 노동의 종말, 자동화가 가장 많이 언급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역사는 현재보다 오히려 150년도 더 된 과거를 자동화로 인한 ‘노동의 위기’ 시대였다고 가리키고 있는 듯하다.
자동화와 노동종말 담론은 이렇게 반복적으로 인류를 덮친다. 때론 불안과 공포를 키우고 때론 기대와 낙관을 부추긴다. 1832년 찰스 배비지가 <기계 및 제조의 경제에 관한 연구>를 출간했을 때도 그랬고, 1833년 존 아돌푸스 에츨러가 <노동 없는, 모든 사람이 닿는 파라다이스>를 세상에 내놨을 때도 그랬다. 이 책들은 대규모 혹은 완전 자동화된 공장의 출현을 예고하며 노동종말론의 씨앗을 뿌리는 데 기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왜 자동화와 노동종말 담론은 반복될까, 이런 질문을 던져봄 직하다. 독일 훔볼트 대학의 앨런 바나나프 교수는 최근 펴낸 <자동화와 일의 미래>라는 책에서 자동화 담론을 우리 시대의 증상이라고 진단한다. 딥러닝 같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GPT-3 같은 기술의 고도화가 진작되면서 자동화와 노동종말이라는 증상을 발현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오히려 원인은 특정한 경제적 조건이다. 글로벌 경제가 충분히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해 고전할 때마다 자동화론은 신기술의 과잉해석을 타고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느 연구결과를 보면 1960년대 노동자들이 했던 일의 57%는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50년 동안 절반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졌음에도 세계는 여전히 노동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당대 자동화 이론가들의 설명과 예측은 대부분의 틀린 것으로 증명이 된 셈이다. 노동종말 운운하는 2020년 자동화론자들의 예측도 앞으로 들어맞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세계경제포럼은 지난달 <미래 일자리 보고서 2020>을 펴내면서 이렇게 적었다. “인간의 업무를 기계·기술로 대체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2025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일자리 8500만개가 없어질 것이다.” 물론 창출된 신규 일자리의 수를 함께 적었지만 전형적인 자동화 담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은 2016년 당시엔 2020년의 일자리 재편을 예측하면서 총 710만개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정작 일자리를 사라지게 한 건 자동화가 아니라 코로나19가 초래한 경기침체였다.
AI로 사라질 직업에 매번 꼽혀왔던 의사라는 직종을 놓고, 한국사회는 의대생 증원을 논의해야 할 만큼 의사가 긴요한 상황이 됐다.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 앞에 주기적으로 반복된 자동화론은 오랜만에 무력함을 경험하고 있는 듯하다. 자동화 담론에 가끔은 무던해져도 될 듯하다.
<이성규 전 메디아티 미디어테크 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