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필암은 문경에서도 동북쪽인 산북면의 사불산 안쪽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차를 몰고 사과밭을 지나 안쪽으로 훌쩍 더 들어가서야 비로소 비탈진 산마루에 암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고려 후기인 1380년, 당대의 고승이었던 나옹 화상이 입적했다. 그가 입적한 이후 나온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지은 사찰이 지금의 윤필암이다. 그런데 암자의 이름이 독특하다. 절의 창건 경과를 기록한 기문은 당시 최고의 문장가인 목은 이색이 썼다. 목은 선생은 기문을 넘겨주면서 이에 대한 원고료를 받지 않았다. 대신 이 암자에 붙은 이름이 윤필암이다. ‘윤필’이란 원고료라는 뜻이다.
윤필암에 올랐다면 잊지 말고 사불암까지 보고 오길 권한다. 사불암은 커다란 바위의 이름이다. 바위의 네 면에 마애불이 조각돼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진평왕 9년(587)에 네 면이 비단으로 싸인 커다란 바위가 산꼭대기에 떨어졌다고 적고 있다. 이 바위의 네 면에 부처님이 새겨져 있었고, 진흥왕이 직접 이곳까지 찾아오기까지 했다.
사불암을 향해 다소 가파른 오솔길을 오르면, 문경이 숨겨둔 비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드높은 가을 하늘과 구름 사이로 떨어지는 햇빛이 울긋불긋한 대지를 밝히는 장관. 만추는 짧아서 더 아름답다.
<글·사진 정태겸 글 쓰고 사진 찍으며 여행하는 몽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