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문경 윤필암의 만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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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겸의 풍경](2)문경 윤필암의 만추

윤필암은 문경에서도 동북쪽인 산북면의 사불산 안쪽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차를 몰고 사과밭을 지나 안쪽으로 훌쩍 더 들어가서야 비로소 비탈진 산마루에 암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고려 후기인 1380년, 당대의 고승이었던 나옹 화상이 입적했다. 그가 입적한 이후 나온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지은 사찰이 지금의 윤필암이다. 그런데 암자의 이름이 독특하다. 절의 창건 경과를 기록한 기문은 당시 최고의 문장가인 목은 이색이 썼다. 목은 선생은 기문을 넘겨주면서 이에 대한 원고료를 받지 않았다. 대신 이 암자에 붙은 이름이 윤필암이다. ‘윤필’이란 원고료라는 뜻이다.

윤필암에 올랐다면 잊지 말고 사불암까지 보고 오길 권한다. 사불암은 커다란 바위의 이름이다. 바위의 네 면에 마애불이 조각돼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진평왕 9년(587)에 네 면이 비단으로 싸인 커다란 바위가 산꼭대기에 떨어졌다고 적고 있다. 이 바위의 네 면에 부처님이 새겨져 있었고, 진흥왕이 직접 이곳까지 찾아오기까지 했다.

사불암을 향해 다소 가파른 오솔길을 오르면, 문경이 숨겨둔 비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드높은 가을 하늘과 구름 사이로 떨어지는 햇빛이 울긋불긋한 대지를 밝히는 장관. 만추는 짧아서 더 아름답다.

<글·사진 정태겸 글 쓰고 사진 찍으며 여행하는 몽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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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찬은 중국 후한 말 북방민족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정도로 위세를 떨쳤던 화북의 군벌이다. 오늘날 베이징 근처 유주를 근거지로 세력을 키웠던 공손찬은 백마의종이라는 막강한 기병대를 중심으로 황건적과 만리장성 넘어 이민족들을 토벌하며 군세를 넓혀갔다.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갖췄으나 성품이 포악했던 공손찬은 폭정을 일삼으며 민심을 크게 잃는다. 왕찬이 기록한 <한말영웅기(漢末英雄記)>에 의하면 공손찬은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는 이유로 부하를 죽이는가 하면 유능한 관료들을 쫓아내고 점쟁이를 측근에 등용하는 등 막장 행각을 벌였다. 하루는 백성들 사이에서 덕망 높았던 관리 유우를 저자에 세워놓고 ‘네가 천자가 될 인물이라면 비가 내릴 것이다’라고 말한 뒤 비가 내리지 않자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다. 분개한 수만의 유주 백성들은 유우의 아들과 합세해 공손찬을 공격했고, 라이벌 원소와 이민족들까지 연합해 공격하니 공손찬은 고립무원에 처한다. 사방이 포위된 공손찬은 기주 역현에 거대한 요새를 짓고 농성에 들어가니 이 요새가 역경성이다. 자신의 남은 전력을 요새 건설에 쏟아부은 공손찬은 “300만석의 양곡을 다 먹고 나면 천하정세가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향락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