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찬 ‘해 지는 바닷가에서 스털링과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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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전환점에서 만난 신곡, 가슴이 저릿

퇴근길 기차에서 라디오를 듣는다. DJ는 정은임,그리고 신해철. 오래전 세상을 떠난 그들의 옛 방송분은 팟캐스트와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학창시절에는 생방송으로 <FM 영화음악>과 <FM 음악도시>를 들었다. 매일 머리맡 빨간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던 그들의 목소리를 이제 블루투스 이어폰을 통해 듣는다. 벌써 세상이 몇번이나 바뀌었나. 그럼에도 ‘정든님’과 ‘시장님’은 여태껏 나를 위로한다.

[내 인생의 노래]조규찬 ‘해 지는 바닷가에서 스털링과 나는’

노래도 오래된 가수의 것을 듣는다. 누군가 “10대에 들었던 음악을 평생 듣는다”고 하던데 딱 그짝이다. 플레이 리스트에는 늘 조규찬의 노래가 있다. 조규찬의 ‘무지개’는 나를 단번에 러닝 바람의 소년으로 돌려놓는다. “한여름날/ 소나기를/ 흠뻑 맞은 아이들의 모습에/ 살며시 미소를 띄어 보내고/ 뒷산 위에 무지개가/ 가득히 떠오를 때면 가도 가도 잡히지 않는 무지개를 따라갔었죠” 이 대목에 이르면 우암산 골짜기에서 가재를 잡고 있는 내가 보인다. 실컷 놀다 배가 고프면 옛 적십자사 건물 앞 노점에서 친구와 둘이 떡볶이 100원어치를 사먹는다. 제법 긴 밀떡볶이를 포크로 반으로 가른 뒤 “이렇게 하면 곱빼기 아니냐”며 해맑게 웃었던 우리. 되살아난 그 시절의 기억이 일상의 고단함을 녹인다.

2009년.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 사람에 치여 자주 상처를 입었다. 사람이 무서웠고 세상이 두려웠다.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대화의 맥이 끊기는 일이 잦았다. 그때마다 나는 동굴로 들어가 추억을 파먹었다. 입을 다물다 보니 자연스레 말수가 줄었다. 과거를 안주삼아 술을 진탕 마셨다. 아프니까 가급적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흘려보내기로 했다. 효과가 있었는지 일주일치 기억이 통째로 사라지는 신기한 경험도 했다. 어제와 오늘을 버리는 대신 추억을 붙잡고 버텼다. 그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치유법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찾아오면서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터널이 끝났다. 작은 생명 하나가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아이가 함께 있는 매 순간이 귀했다. 지금을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아이가 아빠의 기사를 찾아 읽었을 때 부끄럽지 않은 기사를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모든 변화가 기적처럼 느껴졌다.

삶의 전환점에서 조규찬의 신곡을 만났다. 지난해 봄 ‘해 지는 바닷가에서 스털링과 나는’을 듣는데 가슴이 저릿했다. 처음에는 남녀 간 사랑을 다룬 노래라고 생각했다. 가사를 곱씹어 들었다.

해 지는 바닷가에서 ‘나’와 함께 있는 ‘스털링’은아티스트의 아이를 지칭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아이를 생각하며 다시 가사를 음미해 들었다. 눈물이 흘렀다. 얼마 만인가. 실로 오랜만에 ‘신곡’을 듣고 울었다. 날 울린 대목은 이 부분이다. “이제 난 저물겠지만 그 위에 너의 꿈이 피어나/ 성공한 삶은 아닐지 몰라도 남은 내 모둘 태울게/ 사랑해 모진 내 삶을 또다시 의미 있도록 해줘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 날 쓰러뜨린다 해도 널 위해 일어나겠어/ 넌 내 삶을 지켜주는 내 유일한 행복을 주는 나의 꿈”

너와 함께 거닐었지
하얗게 부서진 파도 곁에 둘이
석양에 물들어 널 바라보았지
모래성에 우리 시간이 내렸지
고마워 날 이렇게 만나서
내 삶에 들어와 줘서
서러운 시간이 모두 다
지워지도록 곁에
지금처럼 머물러줘 넌
내 삶을 지켜주는 내 유일한 꿈
내 품 안에 잠들 때면
너의 머릿결에 난 입을 맞췄지
내일은 어디로, 무얼 하려는지, 꿈을 찾을는지
조용히 물었지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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