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란 이유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단속해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50년 전 전태일의 외침은 ‘5인 미만’ 사업장 앞에서 힘을 잃는다. 근로기준법에서 노동자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핵심 조항들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기준이 5인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상시 고용 중인 노동자 수가 5인도 채 안 되는 사업장은 규모뿐 아니라 노동환경도 영세할 수밖에 없다. 이런 곳에서 일하는 이들이 여전히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이도록 법으로 보장하는 현실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호텔에서 근무하던 A씨(53)는 다섯 달 동안 일하면서 한 번도 연차를 낸 적이 없다. 24시간 맞교대, 하루를 온종일 일하고 하루를 쉬는 강도 높은 근무형태였지만 그에 따른 보상도 없었다. 연장·야간·휴일수당을 받을 수 없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업장에는 아예 노동시간에 대한 제한 자체가 없다. A씨와 동료들에게는 사업주가 연차휴가 역시 지급할 의무가 없다. A씨는 5개월째 일하던 중 한 달 더 근속해 6개월을 채우면 연차 하루만 보장해 달라고 사업주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해고통보였다.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고 규정한 근로기준법 제23조도 A씨에겐 적용되지 않았다. 그 역시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같은 일 하는데도 보호 받지 못해
“정부는 5인 미만과 이상을 구분하지만,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라고 일을 덜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A씨는 같은 일을 하는데도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는 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 그도 처음에는 부당한 노동조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야겠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근로계약 때부터 자신들이 5인 미만 사업장임을 강조한 탓에 A씨 역시 사업주의 주장이 법적으로 타당할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상한 낌새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상시 고용 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이라고 했는데, 같은 일을 하는 직원들이 모인 카톡방 인원은 15명이 넘었다. 같은 이름의 호텔을 5개 지점마다 서류상으로만 별개의 사업장으로 등록해둔 것일 뿐 직원들에 대한 업무지시는 한 곳에서 내리기 때문에 사실상 한 사업장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5인 미만 사업장만이 피해갈 수 있는 근로기준법을 노린 조치였다. 당연히 이 호텔 직원들은 지점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어느 한 지점의 객실이 가득 차면 다른 지점 직원이 바쁜 지점으로 옮겨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은 심지어 근로계약서에도 명시된 내용이었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에게도 동등한 근로기준법 적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권리찾기유니온’은 A씨와 A씨가 일한 ㅈ호텔의 사례를 두고 대표적인 ‘가짜(위장) 5인 미만 사업장’이라고 지칭한다. 5인 미만이라는 근로기준법 예외 자격만 갖추면 노동자들을 상대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기 때문에 사업주로서는 멀쩡한 5인 이상 사업장도 5인 미만으로 위장할 유인이 많다. 한 사업장을 서류상으로만 2개 이상으로 쪼개는 유형이나, 실제 5인 이상 근무하지만 5인 미만의 직원들만 등록하고 나머지 직원들에게는 4대 보험 등을 미등록하는 유형이 대표적이다.
반면 가장 열악한 이들 사업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처지의 노동자들 사정은 더욱 비참해진다. 법에 따라 휴업수당을 받을 수 없으니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 수급도 불가능하다. 4대 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게 강요받은 탓에 강제로 해고를 당한 뒤에도 실업급여조차 받지 못한다. 법이 보장하는 방식으로 소득 증빙을 할 수도 없어 특수고용지원금 역시 수급대상에서 제외된다. 평소에 권리가 취약했던 이들이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 같은 재난 상황에서 누구보다 먼저 생계 위기로 내몰리게 되는 실정이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진전 없어
고용노동부의 ‘사업체노동실태현황’ 자료를 보면 2018년 기준 5인 미만 사업장 소속 노동자들은 221만명을 넘는다. 전체 노동자의 14%에 이를 정도로 비중이 작지 않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5인 미만으로 위장한 사업장과 그곳에서의 실태에 대한 집계·조사자료는 전무하다. 5인 미만 전체 사업장 가운데 어느 정도 비율로 진짜와 가짜가 섞여 있는지는 파악조차 불가능한 현실이다.
정진우 권리찾기유니온 사무총장은 “명확한 통계는 없지만 사실상 5인 미만 사업장의 대부분이 편법으로 위장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흔히 5인 미만 영세 사업장 종사자로 인식되는 자영업자와 가족·무급종사자 등은 별도로 집계되고 있고, 5인 미만으로 등록한 사업장의 사회보험 가입실적 등 관련 통계로 유추할 때 진짜보다 가짜가 훨씬 더 많다는 결론이 나왔다는 것이다. 정 사무총장은 “진짜와 가짜를 가리기 위한 실태조사조차 없는 형편이어서 정부에 요구하고는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아예 근로기준법 적용에 예외를 두지 않도록 법을 개정해야 해결될 문제”라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에서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지 않도록 하는 개정안은 이른바 ‘전태일 3법’에 포함돼 국회 입법청원을 거쳐 발의가 진행된 상태다. 하지만 법 개정을 위한 사회적 논의는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 나오는 ‘영세 자영업자 보호’ 논리가 여전히 남아 있는 탓도 크다. 이에 대해 정 사무총장은 “영세 자영업자를 위한 지원은 별도의 방식으로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전태일 열사가 부르짖은 근로기준법이 아직도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지 않는 문제는 그 자체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는 당장 근로기준법 예외 단서조항을 삭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위장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철저한 규제만이라도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5인 미만인 양 위장 운영을 하더라도 아예 사업주에 대한 별도의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에 위법·편법을 거리낌없이 저지를 수 있는 상황이 조장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사업장 고용 규모를 축소 위장했다는 사실 역시 노동자가 증거를 수집해 제출하지 않으면 감독기관에서 인정받기조차 어려운 문제도 있다. ‘5인 미만’이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마저 ‘가짜’에게 빼앗긴 현실을 개탄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세정 노무사 인권활동모임 ‘노동자의 벗’ 운영팀장은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는 이름까지 개명당하며 착취를 당하지만 결국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집으로 돌아간다”며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도 잃어버린 노동권을 찾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