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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삼성보호법’ 강화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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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의원들 국가핵심기술 보호 내세워 산업기술보호법 개정 나서

#언론인인 ㄱ씨는 정보공개청구로 ㄴ사의 산업기술에 관한 정보를 취득했다. 살펴보니 시장에서 큰 가치가 없는 기술인데도 최근에 큰 투자금이 들어오고 공적 지원도 이뤄지고 있다. ㄱ씨는 이를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ㄴ사의 동의 없이는 그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 최근 개정된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 때문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한 연구실에서 질화갈륨(GaN) 전력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ETRI는 지난 10월 6일 전기자동차 등에 쓰이는 질화갈륨 전력반도체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 ETRI 제공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한 연구실에서 질화갈륨(GaN) 전력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ETRI는 지난 10월 6일 전기자동차 등에 쓰이는 질화갈륨 전력반도체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 ETRI 제공

앞선 이야기는 실제가 아닌 가상의 사례이다. 산업기술보호법에도 아직 대상기관의 동의 없는 공개를 금지하는 내용은 없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를 일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18명은 지난 10월 13일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관들이 기술보호를 위한 보안전담 조직을 의무적으로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기술보호의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필요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제14조1의2호를 신설하면서 “적법한 방법으로 대상기관의 산업기술을 취득한 후 대상기관의 동의 없이 그 취득한 산업기술을 사용하거나 공개하는 행위”를 ‘산업기술 침해행위’로 추가한 것이다.

공장 작업환경 정보 비공개 우려

지난해 8월 개정돼 올해 2월 20일부터 시행된 산업기술보호법에는 국가핵심기술 관련 정보의 비공개(제9조2), 산업기술 정보의 취득 목적 외 사용 및 공개 금지 조항(제14조8)이 새로 담겼다.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기술을 운용하는 사업장에 관한 정보는 모두 비공개할 수 있고, 예외는 있으나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가 까다로워 사실상 공개 결정이 쉽지 않은 구조로 바뀌었다. 노동건강권과 환경권 보호를 위해 사업장의 안전보건 위험을 알리거나 직업병 피해 입증을 위해 정보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산업기술보호법 개정 운동을 벌인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는 집단 직업병 발병 문제로 논란이 된 삼성 반도체 공장 작업환경에 관한 자료도 이 조항 등으로 비공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개정 법안은 ‘삼성보호법’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고민정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번 개정안은 이 법의 독소조항을 치유하기보다 오히려 더 엄격한 규제를 추가한 것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사단법인 오픈넷 이사)는 “대상기관의 동의 없이 사용·공개하는 행위를 산업기술 침해행위로 보면, 공장 노동자나 지역주민의 생명·건강이 문제되는 정보를 적법하게 취득해도 공익적인 제보가 불가능해진다”면서 “국민의 표현의 자유나 알권리를 심하게 침해하게 된다”고 밝혔다. 인권단체 ‘반올림’에서 활동하며 산업기술보호법 헌법소원에 참여하는 임자운 변호사(법률사무소 지담)는 “기술을 사용·공개할 때 예외없이 회사의 동의를 받게 할 경우 (산재) 소송에서 쓰는 것도 회사의 동의를 받지 않으면 처벌받게 된다”고 말했다.

국가핵심기술은 “국내외 시장에서 차지하는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높거나 관련 산업의 성장잠재력이 높아 해외로 유출될 경우에 국가의 안전보장 및 국민경제의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기술”(산업기술보호법 제2조)을 말한다. 미국과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진 개념인데, 국가경제와 안보에 있어 자국 기업들의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할 경우 지적재산권의 양도나 라이선스, 기술 인력의 취업 또는 기술소유기업의 인수합병 등 합법적으로 기술의 소유권을 이전하는 거래라도 규제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박 교수는 지난해 개정된 법안은 물론 이번에 발의된 개정안이 이런 산업기술보호법의 원래 취지를 벗어나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방향으로 변질된 것이라고 봤다. 국가핵심기술 보호라는 명목으로 정보 자체를 국민으로부터 숨기려는 방향으로 입법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산업기술보호법은 기술과 관련된 거래가 이뤄질 때 해외기업의 기술 소유를 통제하려는 것이 주목적이지 기술에 관한 정보의 흐름을 차단하려는 게 주목적이 아니”라면서 “가치 있는 기술을 보호하는 목적이라면 영업비밀보호법으로 이미 형사처벌이 충분히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임 변호사는 “현재 개정된 산업기술보호법이 산업기술 침해행위 시 3년 이상의 유기징역, 최대 3배에 이르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정하고 있는데다 산업기술 침해가 우려된다는 이유만으로 정보·수사기관의 조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공익 활동에) 엄청난 위축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고민정 의원 “문제 조항 빼고 논의하겠다”

고민정 의원은 지난 10월 7일 국감에서 이 법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삼성전자 A 임원’ 사건을 언급하기도 했다. 당시 고 의원은 A씨가 삼성전자의 핵심기술 자료를 “이직 시 사용하기로 마음먹고 유출”했음에도 “부정한 목적이 입증되지 않아 무죄판결을 받았다”고 했다. 개정안은 ‘처벌의 공백’을 막기 위한 보완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고 의원의 발언은 사실관계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A씨는 1~3심에서 모두 무죄를 받았다. 법원이 A씨의 기술 유출 혐의를 무죄로 판결한 이유는 이직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고, 자료들은 A씨가 집에서도 컴퓨터로 열람할 수 있는 문서들이라는 점, A씨가 평소 자료를 출력해 메모하며 공부하는 습관이 있어 오래전부터 해왔던 대로 회사에서 자료를 출력해 집으로 가져갔을 뿐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임 변호사는 A 임원 사건을 삼성이 기술 인력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산업기술보호법을 활용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삼성이 자사의 기술 탈취를 정당화하는 수단(핀펫 특허 침해 사건), 나아가 자사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 문제를 은폐하는 수단으로도 악용해왔다고 지적했다. 임 변호사는 “삼성은 공장 작업환경 관련 자료를 국가핵심기술 관련 자료라는 명목으로 은폐하려 했지만 법원은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산기법 어디에도 그러한 은폐행위를 정당화할 만한 규정은 없었기 때문이다”면서 “그러자 법이 바뀌어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를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 등이 추가됐다”고 밝혔다. 임 변호사는 법 개정 소식을 ‘삼성 작업환경 보고서’ 공개 소송에서 삼성 측 변호사가 “이 보고서의 공개 논란이 최근 입법적으로 해결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처음 접했다면서 ‘삼성 작업환경 보고서’ 공개 논란이 법 개정의 직접적인 계기라고 밝혔다.

21대 국회 개원 이후 이수진 의원, 고민정 의원을 비롯해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독소조항 수정은 큰 개선이 없었다. 다만 개정안 발의에 참여한 의원들은 시민사회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향후 법안 논의 과정에서 이를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민정 의원실은 “개정안의 취지는 국가핵심기술 보호로, 기업이 노동자의 건강을 해치는 기술이나 작업환경 등을 숨기는 데에 악용하는 것은 법 개정 취지에 맞지 않다”면서 “향후 병합심사와 수정안 등으로 법 악용을 막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고 의원실은 “당사자가 받았을 피해에 공감해 의원이 직접 (A 임원에게) 사과를 전했다”고 덧붙였다. 개정안의 방향에 대해 반올림의 이상수 상임활동가는 “문제되는 조항을 모두 삭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것이 어렵다면 문제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라도 개정이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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