탬파베이 파격적 ‘혁신’은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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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깨뜨려라, 단 집까지 불태우지는 말고’에서 드러나는 탬파베이의 혁신 철학은 수많은 도전과 성과를 낳았다. 내야 시프트, 오프너, 강한 1번이 그랬듯 외야 4인 시프트가 자연스럽게 여겨질 날이 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최지만이 뛰고 있는 메이저리그 탬파베이 레이스는 ‘혁신’의 팀이다. 최근 수년간 ‘파격적 실험’으로 야구라는 종목을 바꾸고 있다.

탬파베이 레이스 선수들이 지난 10월 13일(현지시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3차전을 앞두고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탬파베이 레이스 선수들이 지난 10월 13일(현지시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3차전을 앞두고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에릭 니앤더 탬파베이 단장은 디애슬레틱과의 인터뷰에서 스튜어트 스턴버그 구단주의 말을 인용했다. “창문을 깨뜨려라, 단 집까지 불태우지는 말고” 탬파베이의 혁신을 상징하는 말이다.

탬파베이는 1998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함께 메이저리그 29번째, 30번째 구단으로 창단했다. 애리조나가 창단 초기 적극적인 투자로 2001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것과 달리 탬파베이는 매년 꼴찌에 머물렀다. 창단 뒤 10시즌 동안 한 번 빼고 모두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꼴찌였다. 첫 구단주 빈스 나이몰리는 돈이 벌리지 않자, 지갑을 더 닫았다. 투자가 없으니 성적이 더 나빠졌다. 결국 구단을 팔았다.

월스트리트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 구단을 인수했다. 야구보다 주식 투자에 더 능했다. 숫자를 잘 다뤘고, 자산의 가치 변동에 예민했다. 어떻게 하면 승리할 수 있을지를 숫자로 다졌다. 스턴버그 구단주와 함께 단장으로 일했던 앤드루 프리드먼은 지금 LA 다저스의 야구부문 사장이다.

선발투수 오프너와 타선 오프너

탬파베이는 창단 11년째인 2008년, 월드시리즈에 오르는 기적을 만들었다. 운이 좋아 만든 성적이 아니라 가설을 세우고, 계산을 통해 증명한 뒤 이를 현실에 적용하는 과감한 도전 덕분이었다. 2000년대 초반 오클랜드의 야구가 ‘머니볼’이었다면, 2010년대 탬파베이의 야구는 ‘데이터볼’이라 불릴 만했다.

탬파베이의 첫 번째 혁신은 시프트였다. 전통적 위치를 무시하고 수비수들을 상대 타자의 타구 방향에 따라 옮겼다. 야구장을 잘게 쪼개고, 각 영역에 따른 타구 확률을 계산했다. 2008년에는 월드시리즈에 올랐다. 당시 무시당했던 시프트는 이제 대부분의 팀이 사용한다.

2018년, 탬파베이는 10년 만에 또 하나의 파격적 혁신을 들고 나왔다. 선발투수가 5이닝을 던지는 ‘전통’을 깨뜨리고, 마무리를 맨 먼저 내보내는 이상한 야구를 했다. 수준급 선발 3명을 빼고 나머지 이틀은 선발이 1~2이닝만 막았다. 어차피 27개의 아웃카운트를 잡는 거라면 맨 뒤 3~6개 못지않게, 맨 앞에 3~6개를 잡는 것도 중요하다는 계산이었다. 탬파베이는 2018년 90승 72패를 거두면서 가을야구 문턱까지 올랐다.

“이게 선발 투수냐”, “야구를 우습게 만들지 말라”는 비난이 일었다. 에인절스의 잭 코자트는 “야구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프너’라고 이름 붙은 탬파베이의 혁신은 2년이 채 되지 않아 바다 건너 KBO리그에서도 종종 쓰는 전략이 됐다.

2019년에는 또 다른 혁신을 들고 나왔다. 선발투수 오프너가 아니라 이번에는 타선의 오프너다. 전통적인 타선은 출루율이 높은 1~2번 타자에 장타력을 갖춘 3~4번 타자로 꾸려진다. 1~2번이 출루하면 3~5번 타자가 홈으로 불러들이는 식이다. 4번 타자는 팀에서 가장 강한 타자가 선다.

히가시오카 타석 탬파베이 외야 4인 시프트 / 트위터 캡처

히가시오카 타석 탬파베이 외야 4인 시프트 / 트위터 캡처

메이저리그는 최근 3~5번이 할 일을 2~4번으로 당기는 추세다. 강한 타자를 2번에 세워 한 번이라도 더 타석에 들어서게 한다. 이른바 ‘강한 2번론’이다. 탬파베이는 한 발 더 나갔다. 굳이 2번을 강하게 할 게 아니라 아예 가장 잘 치는 타자를 1번에 세웠다. 1번 타자가 안타 치고 도루할 게 아니라 아예 홈런을 쳐 버리면 승리 확률이 높다는 계산이었다. 주로 4번으로 나서는 최지만도 종종 1번 타자로 나섰다. 2019년 메이저리그 전체 1번 타자 평균 OPS는 0.780이었는데, 탬파베이 1번 타자 평균 OPS는 무려 0.860이었다. 2번 타자의 0.886에 조금 뒤지지만, 가장 강한 타자를 1~2번에 세웠다. 탬파베이는 2019년 가을야구에 올랐다.

2020년에도 탬파베이의 ‘혁신’은 계속됐다. 이번에는 ‘외야 4인 시프트’였다. 120년이 넘도록 야구는 내야수 4명, 외야수 3명으로 이뤄진 수비 포지션이 ‘정석’이었다. 가끔 내야수 1명이 외야로 나가거나 외야수 1명이 내야로 들어오기도 했지만 아주 예외적인 결정이었다. 내야 5인 시프트의 경우 끝내기 상황에나 한 번씩 쓰였다. 변칙 실험을 좋아하는 조 매든 에인절스 감독도 컵스 시절 외야 4인 시프트를 쓸 때 ‘만약에 대비한 실험’이라고 설명했다.

수비 포지션 틀 깬 ‘외야 4인 시프트’

탬파베이는 보다 적극적이었다. 탬파베이는 뉴욕 양키스와의 디비전시리즈 3차전, 8-2로 앞선 7회 말 양키스 포수 카일 히가시오카 타석 때 ‘외야 4인 시프트’를 썼다. 케빈 캐쉬 탬파베이 감독은 2루수 브랜든 라우를 우익수가 있던 자리로 옮겼고, 나머지 외야수들을 외야의 왼쪽에 몰아세웠다. 좌익수는 제자리, 우익수는 중견수 자리, 중견수 케빈 키어마이어는 좌익수와 중견수 사이지만, 조금 앞쪽에 배치했다. 히가시오카의 평소 타구 방향을 계산했고, 이에 따라 확률 높은 곳에 외야수 4명을 세웠다. 당연히 2루수 자리는 비었다. 1루수 최지만은 1루 가까운 곳에 위치했다.

볼카운트 2-2에서 히가시오카는 타구속도 94.5마일(약 152km)짜리 강한 타구를 날렸다. 정상적인 수비 위치였다면 좌중간을 갈랐을 2루타성 타구였지만 그 자리에는 이미 중견수 키어마이어가 옮겨 있었고, 쉽게 뜬공 처리했다.

포스트시즌에 대비한 특별 전략이 아니라 탬파베이가 정규시즌 내내 자주 써 왔던 전략이었다. MLB.com에 따르면 탬파베이는 60경기만 치른 2020시즌 중 외야 4인 시프트를 60차례 사용했다. 평균 1경기에 한 번꼴이다. 포스트시즌에도 이를 자주 썼다. 탬파베이는 다저스와의 월드시리즈 때 코디 벨린저, 맥스 먼시, 윌 스미스, 무키 베츠, 저스틴 터너 타석 때 외야 4인 시프트를 사용했다.

단지 타자들의 성향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탬파베이 투수 스타일과 맞춤형으로 돌아간다. 투수가 땅볼보다는 뜬공을 많이 내주는 유형이고, 타자가 뜬공을 많이 생산해내는 스윙을 가졌을 때 선택적으로 적용한다. 뜬공과 뜬공이 만났을 때 뜬공 확률이 높고, 이때 외야로 날아간 타구를 처리할 수 있다면 장타를 덜 허용할 수 있다. 어쩌다 내야 타구가 나오고 빈자리를 향했을 때 나오는 ‘단타’는 포기한다는 뜻이다. 캐쉬 감독은 외야 4인 시프트를 두고 ‘2루타 방지 수비’라고 했다.

“창문을 깨뜨려라, 단, 집까지 불태우지는 말고”에서 드러나는 탬파베이의 혁신 철학은 수많은 도전과 성과를 낳았다. 내야 시프트, 오프너, 강한 1번이 그랬듯 외야 4인 시프트가 자연스럽게 여겨질 날이 머지않았을지도 모른다.

<이용균 스포츠부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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