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퍼머스-SNS시대의 ‘보니와 클라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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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퍼머스(Infamous)

제작연도 2020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100분

장르 범죄 외

감독 조슈아 콜드웰

출연 벨라 손, 제이크 맨리, 마리사 코글란 외

개봉 2020년 11월 11일

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시네프리뷰]인퍼머스-SNS시대의 ‘보니와 클라이드’

공중에 흩날리는 피 묻은 돈. 100달러 지폐다. 덧없음의 환유다. 기둥 뒤에 숨은 여자, 아마도 이 사회에서 마지막이 될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올린다. 감옥에선 SNS를 할 수 없으니까. 손에 쥔 스마트폰엔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있다. 이어지는 독백. “나는 운명을 믿었어. 우주의 섭리에 따라 움직인다고 믿었지. 내가 궁금한 건… 이게 내 운명일까. 이렇게 되려고 나는 지금까지 애써 온 것일까.” SWAT팀이 들어오고 그는 얌전히 연행된다.

이건 미국 플로리다주 어느 시골에 살던 소녀의 이야기다. 지긋지긋한 시골을 떠나 대도시, 구체적으로 할리우드에 가는 것이 그의 꿈이다. 대부분의 경우, 꿈★은 이뤄지지 않는다. 관심을 갈구하지만, 그의 독백처럼 ‘촌구석에 사는 애’에게 누가 관심을 보일까. 그의 인스타그램 구독자는 100여명에 불과하다. 어느 날 파티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그는 작은 유명세를 얻는다. 한 친구가 그가 자신의 남친에게 꼬리쳤다며 ‘선빵’을 날린다. 친구들은 이 구경거리를 휴대폰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 뭐, 그래도 좋다. 악명도 일종의 유명세 아닌가. 그때부터 그의 ‘노빠꾸’ 인생이 시작된다.

비루한 삶은 그나 남자친구나 마찬가지다. 가출을 결심하고 짐을 싸 나오던 날, 남자친구는 자기 아버지와 몸싸움을 벌였다. 와중에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아버지는 죽었다. 보호자와 동거를 조건으로 가석방 상태였던 남친은 다시 교도소에 끌려가는 것이 두렵다. 퇴로는 없다. 진짜 떠나는 거다. 그러려면 당장 돈이 필요하다. 두 남녀는 권총을 들고 가게에 난입, 강도행각을 벌인다.

비루한 삶에서 ‘노빠꾸’ 인생으로

대공황시대 ‘보니와 클라이드’의 행각은 그들이 남긴 사진과 보니 파커가 지은 시 등이 당시 황색언론의 주목을 받아 유명해졌지만, 지금은 21세기다. 총을 제외하고 이들이 자신을 알릴 수단은? 딩동댕. 휴대폰과 SNS다. 인스타그램 가계정을 판 주인공 소녀는 자신들의 강도행각을 실황 중계한다. 구독자 수가 폭발한다. 처음엔 돈만 터는 게 목적이었는데, 우발적으로 경찰을 죽이니 살인도 서슴지 않게 됐다. ‘보니와 클라이드’ 이외에도 ‘서덜랜드 킬러’라는 별명도 얻었다. 남자는 이 무모한 도주가 머지않아 끝날 것을 직감하고 있다. 아주 불행한 형태로. 그들도 보니와 클라이드처럼 경찰 총에 맞아 벌집이 되는 걸까.

지난 6월 북미에서 먼저 개봉했다. 인터넷에서 외국 리뷰를 보면 안 좋은 평들이 많다. 여주인공 에이리얼 서머스 역을 맡은 배우(벨라 손)의 연기에 대해서도 조롱하는 평들이 눈에 띈다. 그 정도까진 아닌데. 이 여배우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데뷔 10년차 배우다. 최근에는 미국판 <복면가왕>에도 출연한 모양이다. 뭐, 대중스타라면 감수해야 할 일.

인상적인 것은 이 커플이 경찰포위망을 뚫고 탈출할 때 도움을 받았던 흑인 여성이다. 권총으로 위협해 차에 타고 가는데 이 여성은 “겨눌 필요 없다”라며 자신이 그의 인스타그램 구독자라고 고백한다. 그가 이들의 행각을 팔로잉하게 된 것은 ‘탈출구 없는 자기 삶’에 대한 반면교사였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구할 수 있는 직장은 텔레마케터였고, 사회생활 시작부터 대출학자금의 노예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강도행각의 여정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따라가는 건, 마치 먹방 유튜버가 음식을 먹는 것을 보며 대리만족하는 심리와 유사하다고나 할까.

마침내 얻은 ‘관종’으로서 명성

앞서 영화의 서두에서 그가 읊조리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우리는 안다. 2007~2008년쯤 한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시크릿>의 주장이다.

<시크릿>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우주에 대고 자신의 소원을 빌어라. 그러면 이뤄질 것이다. 이게 선풍적 인기를 끈 건 그렇게 했더니 ‘진짜로’ 원하는 것을 이뤘다는 사람들이 나오면서다. 아마도 소박한 소원이었거나, 아무 말 대잔치 점쟁이가 우연한 기회로 유명세를 끌게 되는 확증편향 같은 거라고나 할까. 즉 ‘아마도 더 많을’ 이뤄지지 않은 소원은 자연스레 잊히게 마련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가 마지막에 남긴 메시지 역시 어떻게 보면 단순한, 소박한 믿음일 텐데 그의 구독자들에게는 꽤 멋있어 보였나 보다. 아니면 그의 상상이었거나. 아무튼 연행되어 끌려나온 그 앞엔 수많은 팬이 운집해 그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퍼머스(infamous), 악인의 탄생이다. 끌려가는 그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윙크한다. SNS시대의 보니와 클라이드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여러 건의 1급 살인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그 앞을 기다리고 있는 건 꼼짝없는 사형선고겠지만. 뭐 어쩔 건가. 니쉴람,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숨이 끊어지며 했다는 말이 딱이다. SNS시대의 순교자로서 관종의 삶은, 이미 다 이루었는데.

보니와 클라이드의 진짜 최후는

경향자료

경향자료


아서 펜 감독의 영화(<우리에겐 내일이 없다>(1967))에서 그들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묘사는 사실적이다. 영화 같은 엔딩이지만 실제 그랬다. 훔친 포드 V8을 몰고 가던 보니와 클라이드는 범행 공범 헨리 메스빈의 아버지를 만난다. 사실 그건 추격대의 유인책이었다. 메스빈의 아버지는 차량 밑으로 숨었고, 숲속에 매복(앰부시가 비유적인 표현인 줄 알았는데 실제 사건기록을 보니 진짜 숲속에 숨어 있었다)한 경찰 추격단은 보니와 클라이드가 피할 틈도 없이 기관단총, 산탄총을 난사했다. 검시기록을 보면 배로 클라이드는 17발, 보니 파커는 26발의 총을 맞았다. 워낙 만신창이가 된 시체라 장의사들이 염을 할 때 무척 애를 먹었다는 후일담 기록이 인터넷에 올라 있다.

2인조 악당쯤으로 기록되고 있지만 실제 이들은 부부가 아니다. 보니는 남편이 있으며, 실제 죽는 순간까지 결혼반지를 끼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언론 인터뷰를 보면 보니의 남편은 자신의 곁을 떠난 부인을 좋게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다. 두 사람의 행각은 보니가 결혼한 다음해부터 시작되었다. 이 커플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도피처에 남겨뒀던 사진기에서 발견된 장난스러운 사진들 덕분이다.(박스 사진) 여기에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보니가 여러 편의 시 같은 걸 남겨둔 것도 일조했다. 악인들의 이야기엔 묘한 매력이 있다는 걸 당시 황색언론은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이들의 살인과 도피행각 일거수일투족이 연일 신문 지상의 톱뉴스를 장식했다. 실제 이들이 사살된 뒤 치러진 장례식엔 약 2만명의 구경꾼이 운집했다고 한다. 사실 거길 찾아가도 특별히 더 볼 수 있는 구경거리는 없었을 텐데도 말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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