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화폐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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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취재하는 거예요?” 지역화폐 취재 중 만난 아이스크림 할인점 사장님이 물었습니다. ‘기사에 나오는 이야기들 다 지어낸 것 아니었냐’는 표정이었지요. 26세 젊은 사장님은 올해 6월 아이스크림 할인점을 열었다고 했습니다. 청년 사장님의 아이스크림 할인점은 무인 판매점입니다. 운 좋게도 물품 정리하는 타이밍에 들러 사장님을 만날 수 있었지요. 지역화폐에 대해 물었더니 사장님은 “오픈한 지 얼마 안 돼 체감 효과는 없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인근 피자집 사장님도 비슷한 답을 했습니다. 전통시장 생선가게 사장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취재 중에 만난 누구도 ‘지역화폐가 불필요하다’거나 ‘무용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사실 지역화폐는 미움받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상인들에게도, 소비자에게도 나쁠 게 없습니다. 특히 소비자 입장에서 정부가 제공하는 10% 할인 혜택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복지인 셈이지요. 지자체도 주민 호응 높은 정책을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지역화폐도 흠이 있습니다. 10% 할인 혜택은 수십만원어치 지역화폐를 한 번에 살 수 있는 구매력 있는 소비자들이 주로 누립니다. 스마트폰 다루기가 익숙지 않은 고령층에 상품권 구매와 충전은 너무 어렵습니다. 20~40대가 전체 지역화폐 이용액의 68% 이상을 차지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쓰이는 곳도 프랜차이즈 가맹점과 편의점, 규모 있는 대형마트, 학원에 편중돼 있습니다. 지역화폐 활성화를 위해 사용처 제한이 다소 느슨한 것도 사실입니다. 연매출 10억원 이상 가맹점을 허용하는 지자체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지역화폐가 골목상권을 살린다는 당초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연구 보고서도 나왔지요. 강남과 재정자립도 최하위 지역과 똑같은 지역화폐가 유통되고 있으니 지역 불균형 해소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지역화폐가 복지정책이라면 구매력 있는 계층의 혜택을 늘릴 것이 아니라 취약계층 복지에 집중하는 게 낫지 않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방분권 강화 차원에서 지역화폐는 포기하기 어려운 카드입니다. 잘 쓰면 소멸 위기에 놓인 지방에 활력을 불어넣을 처방전이 될 수도 있지요. 지역 상생과 연대를 단단하게 연결할 고리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지역화폐를 만들어야 할까요. 분명한 사실은 더 나은 지역화폐는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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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오늘을 생각한다
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지난 6월 10일 경기 수원시청 앞에서 수원시 장안구의 한 민간어린이집에서 벌어진 집단 아동학대 관련 기자회견을 했다. 비슷한 사건을 접할 때마다 가해자들의 범죄행위에 치를 떨면서, 피해 아동 보호자들이 지친 마음과 몸을 이끌고 기자회견을 하게 만드는 망가진 시스템에 분노한다. 만 2세 반 어린이 13명에게 2명의 교사가 상습 폭력을 가했다. 경찰이 확보한 35일 치 CCTV에서 350건의 학대 행위가 발견됐고, 가해 교사 2명과 원장이 상습 아동학대와 방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그러나 피해 가족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원장은 아무런 행정 처분 없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고, 가해 교사 2명은 자진 사직했기에 자격정지 등 처분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 수원시는 할 수 있는 행정 조치는 다 했다며, 재판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피해 가족들은 수원시 행태가 마치 2차 가해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아동들은 여전히 불안과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자다가 몇 번씩 잠에서 깨는 한 어린이는 “꿀향기반 선생님들이 자기를 데리러 올까봐 무섭다”고 했다. 다른 어린이는 작은 소리에도 몸을 움찔하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지난 1월 CCTV 영상을 확인하고 경찰 신고, 언론 보도가 이어졌지만 5개월 동안 가족들의 삶은 하루도 편하지 않았다. 만 2세 어린 아기들을 밀치고, 넘어뜨리고, 머리채를 끌어당기고, 냅다 던져버리는 영상을 보며 엄마·아빠들의 마음은 지옥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