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정치와 탐욕의 칵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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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내내 책을 읽었다. 어차피 비대면 시대, 여느 때 명절의 왁자지껄 분위기도 피해야 하고, 공연도 영화도 전시도 피해야 하고, 인간 간 접촉을 최소화해야 하는 시대, 다시금 안방극장인 TV가 각광을 받고, 반세기 넘게 노래한 가황 나훈아가 새삼 돌풍을 일으키며 미디어와 메시지의 위정자가 된 시대 아닌가.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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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모처럼 문학 장르 속에 푹 잠겨 이런저런 소설을 읽고 또 읽었다. 기억에 남는 작품은 프랑스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의 <오르부아르>와 <화재의 색>이다. 이 두 작품은 독립된 장편이면서도 등장인물과 배경에서 연작이기도 하다. 제1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의 프랑스 사회의 어둡고 추악한 이면을 풍자와 해학을 섞어 다루는데 어찌나 지금의 우리 사회와 잘 접목이 되는지 기가 찼다. 정치의 비루함과 과학의 오남용이 화학적 결합을 한 전쟁이 가져온 참상 속에서 뒷구멍으로 이권을 챙기는 악인들과 이들 때문에 절망에 빠진 순진한 사람들이 다시 복수의 칼을 갈며 악인이 되어 가는 악순환의 구렁텅이를 흥미진진하게 그려 나갔다. 20세기 초 아직은 근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가상의 사회상 속에서 연상 된 21세기 초 현실에는 트럼프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대선을 한 달 앞두고, 현역 프리미엄도 못 누리며 앞선 도전자를 추적하다가 코로나19에 확진된 고령의 사나이, 아니 미국 대통령. 그는 본래 특이한 캐릭터에 온갖 기행을 일삼아온 인물이지만 신종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보인 행동은 하필 대선행보와 맞물리며 최악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컨디션이 좋다면서 중증환자가 맞는 램데시비르와 덱소메타손을 투약받았다. 승인받지 않은 임상실험 중에 있는 항체물질과 완치자 혈장을 섞은 칵테일 요법도 받았다. 감염 확진 시기도 하루 늦게 발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어 있다. 입원 중에 병원을 나와 비밀경호국 요원 둘을 태운 차량으로 병원 주변을 카퍼레이드했다. 스스로 운전한 드라이브스루 시위도 아니고 말이다. 그리고는 자신은 20년 전보다 건강하다며 퇴원해버렸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방역이 뚫린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 내외의 앞뒤로 줄확진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조 바이든 후보를 따라잡아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행보가 바이러스 슈퍼전파 행렬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백악관이 미국판 사랑제일교회가 된 셈이다. 아니 아메리카퍼스트처치라고 해야 할까. 추리소설 마니아인 나는 예상해본다. 몇 년 후 워싱턴포스트의 노기자 보브 우드워드는 2020 미국 대선과정에서 백악관에서 벌어진 감염 네트워크를 책으로 쓸 것이다. 어느 스릴러 소설보다 흥미로울 것이다. 제목도 ‘공포’, ‘격노’에 이어서 ‘추악’이 되지 않을까 점쳐본다. ‘엽기’가 될 수도 있고. 70·80년대 미국 사회학 분야에서는 개인 간 성접촉에 의한 에이즈 바이러스의 사회전파 연결망을 분석하면서 소셜 네트워크 이론, 즉 사회연결망 이론과 분석기법이 발전했다. 미국 대통령과 측근의 감염 연결망 이면에는 권력과 이권에 대한 욕망이 얽혀 있으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안타까운 대목은 사스, 신종플루, 에볼라 바이러스로부터 세계 최강의 우수한 연구 및 방역 시스템을 구축한 미국이 한 명의 리더십이 어긋난 까닭에 붕괴되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리더가, 즉 트럼프가 과학의 시대에 과학과 과학자를 전혀 믿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에 의해 괴멸된 자국의 우수한 방역 시스템의 교훈은 중세 흑사병의 창궐 이후 가장 어리석은 장면으로 역사에 남으리라.

<최영일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 이사·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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