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밥정(情) (The Wandering Chef)
제작연도 2019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82분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박혜령
출연 임지호, 김순규
개봉 2020년 10월 7일
등급 전체 관람가

㈜하얀소엔터테인먼트
2009년 초, 겨울의 한기가 대지를 차갑게 뒤덮고 있던 어느 날, 셰프는 지리산으로 가서 감 요리를 해야겠다고 작정한다. 막연히 꿈속에서 본 감이 있는 마을의 할머니에게 요리를 해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3년여를 그와 동행하며 카메라에 일상을 담아왔던 감독은 이번에도 길을 따라나섰다. 셰프는 그렇게 감을 찾기엔 엉뚱한 계절에 오랜 시간 지리산 일대를 거닐었다. 그리고 며칠 후 기적처럼 감이 그려져 있는 이정표를 발견한다. 아마 감이 특산물인 마을이었나 보다. 셰프는 감이 있는 집을 찾아 마을을 돌아보던 중 밭에 홀로 쪼그리고 앉아 냉이를 캐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난다. 서먹하게 말을 걸고 앉을 자리를 마련해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렇게 두 사람의 짧지만 깊은 정은 시작됐다.
처음부터 영화를 만들 계획은 아니었단다. 박혜령 감독은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제작진으로 일하던 중 출연자인 임지호 셰프를 처음 만났다. 방송이 끝난 후에도 남다른 품성에 매력을 느낀 그는 특별한 목적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셰프의 일상을 틈틈이 쫓으며 카메라에 담았다고 한다. 그렇게 10여 년 동안 차곡차곡 기록들을 쌓아가던 어느 날 감독은 뜻밖의 기회에 셰프의 어머니에 대한 짧은 고백을 듣게 되었다. 그 한마디로 감독은 지금까지 그를 대하며 느꼈던 알 수 없는 외로움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고, 비로소 이를 토대로 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두 명의 어머니와 길 위의 어머니
서자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본가로 보내져 친어머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실을 아픔으로 품고 사는 임지호 셰프는 자신에게 세 명의 어머니가 계시다고 말한다. 낳아주신 어머니, 길러주신 어머니 그리고 길 위의 어머니. 이 작품은 임지호 셰프가 길 위에서 마음을 나눴던 세 번째 어머니로 생각했던 지리산 감 마을의 김순규 할머니의 인연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두 사람의 인연은 얼추 10여 년의 시간을 관통한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만남과 인연만을 집중적으로 기록하거나 연대기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영화 속에 비약적으로 압축된 시간과 이로 인해 증발된 정보들은 관객들에게 적잖은 의문을 남길 만도 하다. 하지만 화면을 가득 채우고 넘치는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인정의 온기들은 인과의 여백을 메우고도 남는다. 여기에 영화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입이 벌어지게 만드는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은 보너스다.
당연히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아름답고 신기한 음식들도 영화 속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오가는 길에서 만난 인연들에 감사하며 셰프는 손에 잡히는 주변의 재료들로 예정에도 없던 음식을 만들어 대접한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나무와 풀은 그의 정성어린 손길이 닿으면 자연의 생명력을 머금은 특별한 요리가 되고 생면부지 짧은 인연에나마 마음을 담아 대접하는 따뜻한 한 끼가 된다.
작년부터 외국의 다수 영화제에 소개되며 알려진 영제는 ‘방랑식객’이라는 셰프의 별명에서 착안한 ‘더 원더링 셰프’(The Wandering Chef)였다. 국내 개봉을 준비하며 제목을 한국인의 정서에 맞춰 새롭게 만들고 편집도 전반적으로 다시 손봤단다. 해외판이 임지호라는 인물을 소개하는 데 좀 더 집중했다면 국내판은 셰프와 김순규 할머니와의 관계 쪽에 무게를 실었다.
한 사람이 나누는 모두의 이야기
한동안 먹을거리와 그와 관련된 여러 주변 지식은 현대인들의 꽤 인기 있는 소재로 인기를 누렸고, 그 열기는 지금도 여전해 보인다. 식재료, 요리, 요리사를 소재로 한 많은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들이 만들어졌고, 방송국은 앞다투어 관련 예능프로를 만드느라 경쟁했다.
표면적으로 <밥정> 역시 음식과 여행이라는 대중적 관심 소재를 공통으로 취하고 있지만, 엄밀히 휴먼 다큐멘터리로서의 가치가 더 크다. 한 남자가 쉽사리 놓지 못하는 삶의 회한은 성별과 나이를 떠나 각박한 현실을 사는 현대인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만한 공허와 그리움의 본질을 꿰뚫기 때문이다.
원래 봄에 개봉을 예정하고 한참 홍보를 진행하던 영화는 코로나19로 인해 일정을 미뤄야만 했다. 그렇게 반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고서 전혀 다른 계절을 맞이하며 개봉하게 되었다. 하지만 마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음식들처럼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야만 선물할 수 있는 담백하지만 깊은 의미는 변함없이 충만하다.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현실에서 잠시나마 특별한 치유와 성찰의 사색을 누릴 수 있는 따뜻한 작품이다.

㈜하얀소엔터테인먼트
언제부턴가 음식문화에 대한 열화 같은 관심과 애정으로 요리사라는 직업까지 스타 반열에 올라섰다. 대부분의 유명 요리사들이 예능프로 곳곳에 경쟁적으로 출연하고, 그들의 이름을 내걸고 운영하는 식당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자연요리 연구가로 통하지만 대중에는 ‘방랑식객’으로 더 친숙한 임지호 셰프의 행보는 다소 남다르다. 그 역시 TV에 출연했지만 그리 많은 편수가 아니고 그마저도 휴먼 다큐멘터리나 인터뷰, 강의 등이 주를 이룬다.
남다른 가정사로 어린 나이에 가출해 살기 위해 요리를 시작했지만, 역경과 방황의 시간은 그에게 음식에 대한 분명한 철학을 선물했다. ‘자연과 음식은 하나’, ‘음식은 치유’라는 것이 지론이라는 그는 “나를 키운 스승은 자연이다”라고 말한다.
요리사로서의 명성을 외국에서 더 인정받는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유엔 한국음식 축제(2003), 독일 슈투트가르트 음식 시연회(2005) 등 다수의 행사를 이끌며 한국의 맛을 세계인들에게 소개해 인정받았고, 외교통상부 장관 표창 등 다수의 수상을 통해 그 공로를 인정받기도 했다.
그는 들로 산으로 자연이 선물한 온갖 나물로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조차 망상을 잊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라 말한다. 여가시간에 그림을 그리는 그는 이미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을 정도니 아마추어는 아니다. 음식도, 그림도 특별히 배운 적은 없지만 행위 자체를 자연과 자유로 여긴다. 영화 <밥정>에 등장하는 그의 모습은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하고 소탈하다. 그래서 그가 보여주는 삶의 행보는 멀리서 지켜보는 이들에게 깊은 공감을 끌어낸다.
<최원균 무비가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