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 che sapete che cosa e amor,
Donne, vedete, s’io l’ho nel cor,
Donne, vedete, s’io l’ho nel cor.
Quello ch’io provo, vi ridiro,
E per me nuovo capir nol so.
Sento un affetto pien di desir,
Ch’ora e diletto, ch’ora e martir.
Gelo e poi sento l’alma avvampar,
E in un momento torno a gelar.
Ricerco un bene fuori di me,
Non so chi il tiene, non so cos’e.
Sospiro e gemo senza voler,
Palpito e tremo senza saper,
Non trovo pace notte ne di,
Ma pur mi piace languir cosi.
Voi, che sapete che cosa e amor
Donne, vedete, s’io l’ho nel cor,
소설도, 직장도 하는 일마다 이상하게 자꾸 꼬이던 시절이었다. 누구나 아는 번듯한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나는 뭘 하고 사는 건가 싶었다. 마음은 갈수록 답답해졌다. 그렇게 몇달을 지내다 보니 나는 뭐라도 잠깐 평소와는 다른 멋진 일을 해서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을 가라고 권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워낙에 바쁘던 시절이라 며칠 시간을 내기란 어려웠다. 어찌저찌 하루 이틀 시간을 쪼갠다고 해도 근사한 곳에 가볼 만한 돈을 모을 여력도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예술의전당 앞을 지나가게 되었고, 오페라 공연이 있다는 포스터를 보았다. 예술의전당이라니! 이름부터가 그럴듯하게 들렸다. 작가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무명이자, 작은 회사의 기술 담당 직원으로 1년 내내 허덕이던 나 같은 사람은 감히 함부로 갈 수조차 없는 곳 같은 공기가 감도는 듯했다. 그곳에서 한다는 공연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었다. 오페라 중에서는 익숙한 편인 제목이었다. 영화 같은 곳에서 잠깐씩 나오는 것을 본 기억도 났다. 저곳에서 가서, 저 예술의전당이라는 곳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저 공연을 본다면, 그 시간 동안에는 어디 좋은 곳에 여행을 갔다 온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나는 2009년 봄에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할 <피가로의 결혼> 표를 샀다. 그 무렵은 연애도 망하던 시절이어서 같이 보러갈 사람도 마땅히 없었다. 그런데 그래도 누구인가와는 같이 보러가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은 있어서 누구에게 가자고 할지도 모르면서 일단 표 두 장을 샀다. 무턱대고 산 표라서 알지도 못했는데, 나중에 살펴보니 소프라노 신영옥 선생이 출연하는 공연이었다.
공연 2주쯤 전, 한 모임에서 아주 멋진 사람을 보게 되었다. 다행히 말을 주고받고 만날 기회가 마침 좀 더 생겼다. 나는 용기를 내 그 사람에게 오페라 표가 두 장 있는데 같이 보러가지 않겠냐고 말했다. 일이 잘 풀려서 어떻게 된다거나, 무슨 계기로 삼아야겠다는 생각보다 젊은 시절에 저런 사람과 함께 좋은 노래를 듣고 아름다운 연기를 보는 즐거운 봄날 저녁을 같이 보낸다면, 그것만으로도 인생에 두고두고 기억날 몇 시간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그날 공연을 보러갔다.
오페라의 막이 오르고 십몇분쯤 지나서 몇번쯤 들어본 익숙한 노래가 나올 때, 나는 세상 온갖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뜻대로 풀리는 것이 없는데 지금 이 시간만큼은 정말로 기대했던 것과 똑같구나 생각했다. 나는 그 시간과 공간을 잊지 않기 위해 괜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같이 온 사람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보았다. 나중에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노래를 모두 뒤지면서 찾아보니, 그때 그 노래를 ‘Voi che sapete’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젊은이가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는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한참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내 생활은 비슷하다. 생계를 잇기 위해 회사에 열심히 다니고 있고, 아직도 꾸준히 글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대단한 베스트셀러를 낸 적은 없다.
그래도 이 노래가 떠오르자 나는 바로 글을 써내려갈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때 그곳에서 같은 노래 속에 있었던 그 사람이 지금은 내 아내가 되어 즐겁게 인생을 헤쳐가는 동료이자 우리 아이의 어머니로 7년째 같이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곽재식 화학자·SF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