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녀를 사랑했던 것은 구조대원이었을까
제목 에브리타임 아이 다이(Every Time I Die)
제작연도 2019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98분
장르 스릴러
감독 로비 마이클
출연 드류 폰테이로, 마크 멘차카, 미셸 마세도 외
개봉 10월 개봉 예정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수입/배급 ㈜모쿠슈라픽쳐스

㈜모쿠슈라픽쳐스
신체를 집으로 은유하고 실제 주인은 영혼이다, 라는 믿음은 서구·기독교 문명에만 고유한 것일까. 꼭 그렇진 않은 것 같다. 달라이 라마가 입적하면 다시 어린아이로 환생한다고 믿는 티베트 불교의 교리가 대표적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굳건히 신봉되어온 ‘믿음’이다. ‘죽음 이후의 삶(Life after death)’이라는 형용모순은 인도 출신 의사 디팩 초프라가 주창한 이래 제도권에 근접한 권위를 얻고 있다. 물론 과학은 공식적으로 환생이나 내세, 심지어 임사체험조차 환각의 범주를 넘어선 실재 현상으로 보고 있지 않다.
샘에게 일어난 일은 그런 의미에서 판타지다. 전장에서 돌아온 타일러는 자신의 아내 미아가 긴급구조대원으로 일하는 처제의 남편 직장동료인 샘과 바람이 난 것을 알아차린다. 따져 묻던 그는 호숫가에서 샘을 죽인다. 우발적 살인이다. 음, 바람피웠다고 죽을 일까지는 아니지. 시간이 경과한 후 눈을 떠보니 사랑하던 미아의 언니 포피의 얼굴이 들어온다. 몇시간 전에 나는 죽었는데 이 상황은 도대체 뭐지? 살펴보니 팔목엔 자신에게 없던 문신이 있다. 거울을 보니 자신의 얼굴이 아니다. 직장동료 재이의 몸속으로 샘의 영혼이 들어간 것이다. 샘은 미아와 포피에게 피해야 하는 상황임을 알린다. 샘을 우발적으로 죽인 타일러는 그 사실을 은폐하고자 또 다른 사건을 벌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미 알리바이를 만들어뒀건만 재이는 마치 살인현장을 본 것처럼 말한다. 타일러의 두 번째 범죄. 재이를 죽이고 자아분열증에 사로잡힌 것을 괴로워하다가 권총으로 자살한 것으로 위장하다가 다시 눈을 뜨는 주인공. 이번에는 누구의 몸속으로 들어간 것일까.
죽었지만 다시 빙의되어 살아나는
영화 제목이 <내가 죽을 때마다(Every Time I Die)>인 이유다. 참신하다기보다 TV시리즈 <환상특급(Twilight Zone)>의 긴 버전을 보는 느낌이다. 영화를 전반적으로 지배하는 분위기는 음산하고, 우울하고 착 가라앉은 괴로움이다. 미아, 그러니까 전장에 파견된 군인을 둔 유부녀와 샘의 사랑은 애당초 이뤄지기 힘들었다. 샘은 어린 시절 실랑이를 하다가 물에 빠진 동생을 결국 구하지 못했다는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사랑하던 여인이 자신을 떠나 전 남편에게 돌아가면서 그 트라우마의 방아쇠(트리거)가 당겨졌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병원 응급실에서 동생의 죽음을 지켜보는 괴로운 꿈과 함께 자신의 부모가 지우려 했던 동생에 대한 기억은 낡은 사진들을 모아놓은 양철상자로 그의 앞에 나타난다. 버려도 버려도 상자는 그의 곁으로 돌아온다.
영화는 스릴러 장르 형식을 띠지만 특유의 싸늘한 공포와는 거리가 멀다. 띄엄띄엄 플래시백의 형태로 제시하는 그 어린 시절 사건 후 샘은 동생의 인형에 집착하거나 동생 옷을 입는 등의 행태를 보인다. 부모들은 그를 정신과 의사에게 데리고 갔고, 의사는 동생이 자기 때문에 죽었다는 죄책감 때문이라며 “자신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면 앞으로는 정상을 찾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동생 죽음의 죄책감 때문에 빙의한 걸까
그런데 샘이 죽은 뒤, 재이에게 빙의(憑依)되어 있는 샘은 진짜다. 타일러도 눈치를 채고, 나중에는 그의 연인이었던 미아조차 믿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가정은 맨 처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자신을 사라라고 주장했던 어린 시절 샘의 주장은 정말 죄책감 때문에 생긴 잘못된 믿음일까. 영화의 절정 부분에서 ‘사라에게 있었던 일’이 묘사된다. 죽어가는 샘이 목격하듯, 죽음 직후에 하늘 구석엔 먹구름이 끼고 가운데는 흰빛이 자리 잡는다. 심정지된 사라의 가슴에 의료진이 전기 충격기를 가져다 대자 그쪽으로 빨려가던 ‘사라’가 다시 내려와 천장에 머무른다. “언제나 너를 지켜줄게”라는 오빠의 약속을 기억한 사라의 영혼은 천장을 둥실둥실 흘러가 오빠에게 간다. 그게 첫 시작 장면에 묘사된 어린 시절 오빠가 겪었던 ‘동생이 오빠가 부르는 환청’이었다. 사라가 그때부터 오빠에 빙의되어 있었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갔을 것이다.
샘의 동료 재이의 얼굴이 왠지 익숙하다 싶었는데, 바로 전에 리뷰한 <아무도 없다(Alone, 2020)>의 연쇄살인마역을 맡은 배우 마크 멘차카다. 1975년생 배우로 이제 40대 중반의 중견배우인데 지금까지는 주로 TV시리즈에 출연해 그리 알려지진 않은 것 같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샘인데, 영화의 크레딧 순서에서는 제일 먼저 마크 멘차카가 나와 있다. 흥미롭게 보기는 했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장편영화 분량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를 본 느낌이다.

경향 자료 사진
F44.8. 질병 및 관련 건강 문제의 국제통계분류(ICD) 10차 개정판상 이 질병분류번호다. 흔히 DID로 줄여 읽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 더 대중적인 언어로는 ‘다중인격’을 지칭하는 병의 분류번호다. 다중인격 장애 환자는 영화나 애니메이션과 같은 현대 대중문화에서는 꽤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캐릭터지만 실제 학계에 보고된 발병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지난 2014년 사망한 빌리 밀리건의 사례가 유명하다. 1977년 오하이오대학 주변에서 성폭행 용의자로 체포된 뒤 심문과정에서 자기 안에 각기 다른 24명의 인격체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극영화 <23 아이덴티티>(2017)의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이다.
이 정신 질환 분류를 인정하기에 가장 큰 딜레마는 당사자가 다른 인격이 자신 안에 있고, 어떤 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원래의 자신이 아닌 다른 인격체라는 주장을 과연 수용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그래서 의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실제 미국정신의학회의 표준 분류체계인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의 1994년 제4판 이전에는 해리성 장애로서 다중인격을 인정하지 않았다(2013년에 나온 5판 이후에는 ‘빙의’나 ‘귀신들림’까지 광범위하게 정신장애의 일종으로 인정하고 있다).
빌리 밀리건 케이스를 매스컴이나 학계가 주목한 것은 실제 그런 주장을 범행을 일으킨 당사자와 변호인이 했고, 결국 그 주장이 받아들여져 최초로 무죄를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그의 삶을 다룬 책 <빌리 밀리건- 스물네 개의 인격을 가진 사나이>가 한국에서도 번역 출판되었는데, 막상 출소 후의 삶에 대해서는 그렇게 알려진 것이 없는 모양이다. 빌리 밀리건은 59세에 암으로 사망했다. 생전에 자신의 삶을 다룬 단편영화를 만들겠다고 주위에 공언했지만, 실제 영화화까지 이뤄지진 않은 것 같다. 워낙 말 그대로 드라마틱한 이야기라, 앞서 샤말란식의 극화가 아닌 실제 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도 나옴직도 한데 아직은 안 만들어진 것 같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