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범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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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고 외롭다, 그러니 다시 시작해야 한다

산다는 건 참 고단한 일이지
지치고 지쳐서 걸을 수 없으니
어디쯤인지 무엇을 찾는지
헤매고 헤매다 어딜 가려는지

꿈은 버리고, 두 발은 딱 붙이고
세상과 어울려 살아가면 되는데
가끔씩 그리운 내 진짜 인생이
아프고 아파서 참을 수가 없는 나
살아야지 삶이 다 그렇지
춥고 아프고 위태로운 거지

꿈은 버리고, 두 발은 딱 붙이고
세상과 어울려 살아가면 되는데
날개 못 펴고 접어진 내 인생이
서럽고 서러워 자꾸 화가 나는 나
살아야지 삶이 다 그렇지
작고 외롭고 흔들리는 거지

[내 인생의 노래]임재범 ‘살아야지’

누구나 그렇듯이 사람은 평생 노래를 들으면서 살고, 노래를 부르면서 산다. 한 번쯤 노래방에 가서 목청껏 노래를 불러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박자나 음정, 그런 것 다 틀려도 내 흥에 겨워서, 아니면 내 설움에 취해서 불러대던 노래가 한둘쯤은 있지 않을까? 어느 분이 코로나19 때문에 노래방에 못 가니 한국인들 노래 실력이 줄 거라고 걱정하는 소리를 듣고 맞장구를 쳤다. 요즘은 노래 부르고 싶을 때 어디서 노래를 부를까?

내 인생에서 첫 감옥은 스물여섯 살 때였다. 지금과는 너무도 달랐던 감옥, 걸핏하면 보안과 지하실에 끌려가 두들겨 맞고 수갑이 채이고 포승줄에 묶여서 독방에 던져지고는 했다. 꽁꽁 묶인 채 한겨울 밤을 지내는 그 밤에 부른 노래가 있다. ‘녹두꽃’, 안치환이나 김광석이 음반으로 내놓기 전부터 우리는 구전으로 그 노래를 배웠다.

“빈 손 가득히 움켜쥔 햇살에 살아/ 벽에도 쇠창살에도 노을로 붉게 살아/ 타네 불타네 깊은 밤 넋속의 깊고 깊은/ 상처에 살아 모질수록 매질 아래/ 날이 갈수록 흡뜨는 거역의 눈동자에/ 핏발로 살아 열쇠 소리 사라져….”

감옥에 갇혀 본 사람은 안다. 쇠창살 사이로 들어오는 한 줌의 햇빛의 고마움을, 모진 매질을 당하고 던져진 그 독방, 그리고 철커덕하며 잠기는 열쇠 소리의 무거움을. 그 독방에서 이젠 나 혼자서 고통을 곱씹으며 이겨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이 노래를 중얼거리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대회를 주도했던 일로 다섯 번째 감옥에 갔을 때는 징벌을 먹거나 매질을 당하는 감옥은 아니었다. 방에는 난방이 들어오고, 수세식 변기가 있었고, 화장실과 거실 사이에는 미닫이문이 있었다. 하지만 1.5평의 독방은 사무치게 세상이, 사람이 그립게 한다.

그때 15인치 아날로그 TV로 <복면가왕>이란 프로그램을 봤다. 가면을 쓰고 정체를 가린 채 부르는 노래 프로그램이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여성 가수가 절절하게 부르던 노래에 나는 몸이 굳어버렸다.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래 그래” 소곤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부르던 그 노래를 들던 나는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가수는 거미였고, 나는 지금도 자이언티의 원곡보다 거미가 부른 ‘양화대교’를 더 좋아한다.

지난해부터는 가장 많이 듣는 노래가 임재범의 ‘살아야지’다. 깊은 절망 끝 체념 속에서도 “살아야지/ 삶이 다 그렇지/ 춥고 아프고/ 위태로운 거지”라고 노래하고, “살아야지/ 삶이 다 그렇지/ 작고 외롭고/ 흔들리는 거지” 하면서 다시 살아내야 하는 인생인 것이다. 지독한 배신감, 분노에 휩싸였던 그 시간을 우황청심환을 먹으면서 그리고 이 노래를 부르면서 이겨냈다. 묵직한 중저음의 임재범은 가난했고, 고독했던 자신의 인생을 이 노래에 모두 담아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래 환갑 가까이 인권운동의 길만을 달려온 나도 아프고 외롭다. 그러니 체념 위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인생은 뭐 그런 거 아닐까. 그런데 임재범은 왜 노래를 부르지 않는 거지? 그가 다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

<박래군(인권재단 사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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