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시각으로 환생한 중국 설화 여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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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뮬란(Mulan)

제작연도 2020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115분

장르 액션, 드라마

감독 니키 카로

출연 유역비, 이연걸, 공리, 견자단, 제이슨 스콧 리

개봉 2020년 9월 17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마녀 시아니앙(공리 분)의 마법과 잔혹함을 앞세운 북방 오랑캐 수장 보리 칸(제이슨 스콧 리 분)의 군대가 침략해오자 황제(이연걸 분)는 전국에 징집령을 내려 집마다 장성한 남자 한 명씩 참전하라고 한다.

집안의 유일한 남자로서 몸이 불편한 아버지(트지 마 분)의 출전을 보고만 있을 수 없던 장녀 뮬란(유역비 분)은 아버지를 대신해 몰래 전장으로 향한다.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숨기고 오합지졸과 다름없는 남성들 속에서 무술과 체력을 단련하는 뮬란은 타고난 재능과 기지로 점차 늠름한 병사로 성장해간다.

잘 알려진 대로 작품의 모티브가 된 인물은 화목란(花木蘭)이다. 중국 설화와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여성으로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알려져 있다.

2015년경부터 본격화된 디즈니의 자사 애니메이션 실사화(Live-Action Remake) 사업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행보는 기존 인지도를 통해 흥행성을 선점할 수 있고, 활력을 잃은 과거 콘텐츠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으며, 기존에 확보한 기술력의 적극 활용할 수 있다는 다수의 장점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결과는 계산만큼 긍정적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기획된 <뮬란>의 실사화는 매우 전략적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일단 원작이 소위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부활기로 구분되는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말까지의 ‘디즈니 르네상스’ 흥행작 계열 안에 속해 있어 상업적으로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완성도 면에서는 상당히 떨어지는 작품이었다. 당시 많은 지탄을 받았던 역사, 지역적 고증에 대한 부실은 차치하더라도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와 산만한 이야기 전개는 이 작품이 받은 대중적 호의에 많은 의문을 남긴다. 이는 당시 디즈니 흥행작들의 평가지표라 해도 과언이 아닌 주제가의 인지도만 놓고 봐도 어느 정도 가늠이 가능하다.

빈약한 원작의 전략적 환생

이런 원작만화의 빈약함은 역설적이게도 제작사가 현시점에 굳이 <뮬란>을 실사화해야만 했던 다른 요소를 부각시킨다. 동양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나 남성우월주의가 만연하던 시대에 펼쳐진 남장여인의 활약상은 소위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으로 지칭되는 현재진행형의 치열한 논쟁이 요구하는 화두를 어느 정도 충족시킨다. 무엇보다 나날이 비중이 커져만 가는 거대소비시장인 중국을 직접 겨냥한 상업적 포석도 컸을 것이다.

하지만 원대한 계획은 크게 뒤틀렸다. 뮤지컬 애니메이션인 원작의 가벼운 분위기와 유머를 적절히 걷어내고 대신 무협영화의 활력을 더해보자는 기획은 충분히 읽힌다. 그러나 그 결합이 새로운 쾌감보다는 어정쩡한 불균질로 다가온다. 도식적인 전개와 설정 안에 배우들의 열정 역시 빛을 잃는데, 디즈니 실사화 때마다 매번 지적돼온 ‘매력을 상실한 악역’에 대한 비난 또한 여전히 제기될 듯 보인다. 등급이 12세 이상 관람가다. 실제로 어린이의 눈높이에는 건조하고 가족이 함께 즐기기엔 식상하다.

팬데믹에 맞물린 정치적 악재

설상가상으로 외적인 요소들도 악재가 되었다. 원래 3월 전 세계 개봉을 목표로 대규모 홍보 물량을 투입했지만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빛이 바랬다. 하염없이 개봉이 연기되는 와중에 결국 지난 8월에는 주연배우 유역비가 공개적으로 홍콩 민주화 시위에 참여한 시민을 과잉 진압한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는 정치적 발언을 공개해 보이콧 운동에 불을 붙였다.

이달 초에는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신장웨이우얼자치구 투루판시의 공안 당국과 중국 공산당 신장 선전부 등에 특별 감사 표시를 삽입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논란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영화의 촬영 장소 중 하나인 이곳은 위구르족(자치구 내 소수민족)을 비롯해 100만명이 넘는 사람이 강제 수용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디즈니 본사는 결국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자체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인 ‘디즈니 플러스’ 채널을 통해 영화를 공개하기로 했다. 디즈니 플러스 서비스가 되지 않는 일부 지역에서는 극장 개봉이 진행되는데 한국도 그중의 하나다. 심지어 IMAX, ScreenX, 4DX, 돌비 시네마 등 4가지 특별 포맷으로 상영된다.

디즈니의 시행착오가 뮬란의 고향 땅을 엉뚱하게 자극한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올봄 중국에서는 뮬란을 소재로 또 다른 실사영화 <뮬란>(木?之巾?英豪)이 개봉했고, 애니메이션 <쿵푸 뮬란>도 조만간 개봉할 예정이다.

먹지 실사로 되살아나는 애니메이션

과거 문방용품 중에 ‘먹지’가 있었다. 문서나 그림을 최대한 똑같이 베껴내야 할 때 원본 아래 먹지를 받치고 따라 그리면 먹지 밑 깨끗한 종이에 그대로 그려지는 원리다. 하지만 아무리 정교하고 세심하게 따라 그려간다 해도 꼭 어긋나는 부분이 생기고, 결과가 꽤 양호하다 해도 원본 이상을 얻어낼 확률은 0%다. 최근 디즈니가 연이어 내놓고 있는 애니메이션 원작의 실사화 영화들을 볼 때면 매번 먹지 복사가 떠오른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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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달마시안>(1996),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 <말레피센트>(2014) 등 이전부터도 디즈니는 자신에게 명성을 안겼던 유명 원작만화의 실사화 작업을 소극적으로 진행해왔다. 하지만 이런 실사화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겠다는 야심 찬 발표 이후 공식적으로 내놓은 첫 작품은 <신데렐라>(2015)다. 이후 <정글북>(2016), <미녀와 야수>(2017), <덤보>(2019), <알라딘>(2019), <라이온 킹> (2019) 그리고 이번 <뮬란>까지 30·40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제목들이 줄줄이 소환되었다. <인어공주>, <피노키오> 등의 작품들도 제작 진행 중이다.

새롭게 공개된 작품들은 원작의 비중이 제각각이고 새로운 해석의 관점도 천차만별이라 이렇다 할 일관성을 뽑아내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어정쩡한 눈치 보기도 기획 단계부터 구설에 오르는 상황이 빈번해지고 있어 과연 이런 기획이 아직 유효한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애초부터 뒤따를 수밖에 없는 ‘우려먹기’란 비난을 상쇄할 만한 완성도에 대한 부담 역시 더 커졌음은 당연하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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