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가 또다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번엔 ‘링크 0.9’였다. 뇌-기계 인터페이스 플랫폼의 일종인 링크 0.9는 뇌의 기능을 증강시키기 위해 두뇌에 삽입하는 임플란트형 칩이다. 1000여개의 미세한 전극을 뇌에 직접 연결함으로써 단기적으로는 마비, 시청각 장애를 해결해낼 수 있다. 앞서 개발된 뇌-기계 인터페이스 플랫폼들보다 크기가 작고 기능 통합적이며, 상품성이 빼어나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무선 인덕션 코일로 충전하는 ‘링크 0.9’의 충전기, 뇌 이식을 위해 개발된 전용 로봇 ‘V2’ 등은 기존 연구팀에서 제안하지 않았던 다소 혁신적인 기계들에 해당한다.
그러나 난관은 여럿 존재한다. 유사 기술을 개발해온 과학자 집단들이 ‘링크 0.9’의 발표에 못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이유도 이와 관련이 깊다. 약속과 달리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 계획을 명확히 밝히지 않은데다 두개골 내부에 삽입되는 머리카락 1/10 두께의 미세전극선에 대한 ‘부식 방지’ 특질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링크 0.9’는 그것의 기술적 진보 수준보다 그의 포부에서 비롯된 사회적·철학적 논쟁에 더 주목을 끌고 있다. 일론 머스크가 뉴럴링크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선천적·후천적 질병의 치료에 있지 않다. ‘미래형 보편 인구 장치’를 개발해 인간의 지능을 증강함으로써 인공지능의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인공지능의 지능폭발로 존재적 위협에 놓이게 될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스페이스X로 지구라는 공간에 갇혀버린 인류를 해방하겠다는 구상과도 맥이 닿는다. 날로 지능이 고도화하고 있는 인공지능이라는 기계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두뇌를 증폭시키는 것만이 몇 안 되는 해결책이라고 그는 굳게 믿고 있다.
그의 포부와 이 같은 믿음은 트랜스휴머니즘, 포스트휴머니즘이라는 철학적 흐름과 교차한다. 인간과 기계는 구분될 수 있는가, 구분될 필요가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이 개념 안에 포함돼 있다. 인간을 지배하는 기계, 기계를 지배하는 인간이라는 도식적인 이분법이나 사고와도 거리를 두는 담론들이다. 인간과 동물·생명, 기계가 인간 중심성이 해체된 공간에서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 모색을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링크 0.9’는 다시금 이러한 담론을 일상의 토론 주제로 끌어들였다. ‘링크 0.9’ 혹은 이후 버전으로 증강된 두뇌를 갖춘 인간은 인간인가 기계인가라는 유(類)의 철학적 질문을 끄집어내고 있다. 선천적 장애를 기술로 해결함으로써 장애에 대한 불평등과 차별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치·사회적 논의도 동시에 불러내고 있다. 23mm짜리 작은 칩 하나가 인류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고정적인 인식을 해체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일론 머스크의 진정한 기여는 어쩌면 그가 마케팅 차원에서 선보이는 매력적인 혁신 기술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류가 긴 시간 지탱해온 낡은 인식틀을 과감하게 부숴버리는 특유의 화법, 옳든 그르든 일단 내던지며 입증해내는 그의 도전적인 태도, 이것들이 그가 선보인 최고의 발명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이성규 전 메디아티 미디어테크 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