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숲속, 연쇄살인마와 맞서 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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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무도 없다(ALONE)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100분

장르 스릴러

감독 존 하이암스

출연 줄스 윌콕스, 마크 멘차카, 안소니힐드

개봉일 2020년 9월 9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수입/배급 판씨네마㈜

판씨네마㈜

판씨네마㈜

영화는 2011년 스웨덴에서 만들어진 <Forsvunnen>라는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저 제목의 번역어는 missing, 그러니까 실종쯤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그는 혼자 방치되었다 홀로 해결했다는 정도의 <얼론(alone)>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한마디쯤 할 줄 알았다. 최후의 대결에서 승리한 그가 밑에 깔린, 의식을 잃어가는 남자에게 개자식이라던가, 뭐 그런 욕설 한마디쯤은. 그게 할리우드 스타일인데. 피 떡칠한 얼굴로 누워 하늘을 보는 그에게 헬기 소리가 다가오고. 엔딩자막이 뜬다. 엔딩자막의 배경음은 시끄러운 풀벌레 소리. 서정이라든가 ‘자연에의 귀의’ 같은 걸 표현한 게 아니다. 결국 그의 생존 문제는 처절하게 ‘혼자’ 해결해야만 했다.

제시카는 6개월 전에 남편을 잃었다. 그의 휴대폰 속에 녹화된 남편의 모습은 밝았지만, 우울증을 앓았던 것 같다. 자기의 부모와 친구들이 있는 동네를 떠나 새 출발하려는 그는 자그마한 트레일러에 짐을 싣고 내비게이션상으로 4일 걸려야 도착하는 곳으로 떠나던 참이었다.

끝없이 이어진 1차선 도로에서 그는 불쾌한 일을 겪는다. 구형 지프 한 대가 고의로 속도를 줄여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어지간히 추월 기회를 안 주던 지프는 마침내 그가 중앙선을 넘어 추월하려 하자 갑자기 속도를 내며 앞서가는 걸 막았다. 맞은편에는 대형 트럭이 오고 있고. 간신히 사고를 피해 앞서자 이제는 뒤에 달라붙어 헤드라이트를 깜빡이며 비켜 달라고 한다. 이튿날 아침. 제시카의 차에 다가온 한 남자가 “자신을 알아보겠냐”고 묻는다. 모르겠다고 답하자 어제 지프 운전자라고 말한다. 남자는 자신이 휴대폰을 보고 있다 뒤에 차가 붙은 걸 몰랐고, 자신이 뒤로 갔을 때는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사과했다. 그런데 왠지 재수 없다. 이 남자, 피하는 게 상책이다. 여자의 직감이랄까.

시나리오상 눈에 띄는 구멍들

그 뒤에도 자꾸 조우하게 되는 이 남자. 점점 선을 넘는다. 그리고 본색을 드러낸다. 제시카의 트레일러 바퀴가 펑크 나고, 카메라는 바퀴 옆면에 바람구멍이 난 장면을 비춘다. 사냥용 칼로 길쭉하게 자른 자국이다. 잠깐. 이 정도면 이미 출발하기 전부터 제대로 운전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인데?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스쳐 지나가던 생각이다.

두 번째 볼 때 면밀하게 살펴봤다. 착각 아니다. 각본엔 구멍이 많다. 연쇄살인범으로 추정되는 이 남자가 제시카를 가둔 지하실 방문에 열쇠를 꽂아놓고 간 것 역시 그가 탈출하도록 의도한 것일까. 아무도 없는 숲속에 사냥을 나온 로버트가 갖고 있던 휴대폰은 어쩌면 상황을 조기에 종식할 수 있는 핵심무기였다. 그런데 그게 하필이면 제시카가 휘두른 지팡이 대용 나뭇가지에 산산조각이 나서 쓸 수 없었다는 설정을 누구나 쉽사리 납득할 수 있는 것일까. 대충 부자연스러운 설정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는 구멍의 수는 세어보니 5~6개 정도다. 이 정도면 꽤 큰 하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잘 만들었다. 주인공 여성이 겪는 심리적 불안과 위기에 관객들을 동참하게 만든다. 영화는 다양한 각도의 카메라 워킹으로 그의 내면의 미묘한 변화와 떨림을 잡아낸다. 연쇄살인범 남자의 캐릭터 구축도 잘된 편이다.

단순하지만 빠져드는 이야기

비 오는 날 캄캄한 숲속에서 남자는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제시카를 두고 독백을 하는 게 압권이다.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들은 겁쟁이인데, 그의 남편이 겁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시카의 마음을 후벼 판다. 보통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은 주변 친구나 가족이 알아차릴 신호를 보냈을 것이고, 제시카도 그것을 알고 있지 않냐는 것이다.

<양들의 침묵>(1991)에서 스털링을 다루는 렉터 박사처럼 그를 옭아맬 듯도 싶은데 이 무렵부터 주인공과 악당의 우열관계는 역전된다. 그날 밤 악당은 제시카를 발견하지 못했고, 아침에 눈을 뜨는 그는 남자의 차에 숨어들어 휴대폰을 훔쳐 긴급구조 통화를 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악당이 휴대폰을 차에 두고 갔다는 설정은 또다시 구멍이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대결. 차가 전복되는 사고를 두 사람이 똑같이 겪었는데 대등한 싸움을 할 뿐 아니라 최후 승자는 연쇄살인범이 아니라 희생될 뻔했던 제시카다. 이건 의식을 잃어가는 그의 판타지로 해석될 가능성은 없을까 해서 유심히 봤는데 그럴 여지는 적다.

영화는 2011년 스웨덴에서 만들어진 <Forsvunnen>이라는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저 제목의 번역어는 missing, 그러니까 실종쯤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그는 혼자 방치되었다 홀로 해결했다는 정도의 <얼론(alone)>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1시간 30여분의 표준적인 장편영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빠져들게 만드는 점은 영화의 만듦새가 나쁘지 않다는 뜻이다. 극장 관람 추천할 만한 영화다.

저예산 독립 스릴러 장르영화

2018년 제작된 영화다. 북미 개봉일은 올해 9월 18일이라 인터넷에도 영화에 대한 정보나 리뷰는 거의 없다. 엔딩크레딧을 보면 “No Person or entity associated with this film received payment or anything of value, or entered into any agreement, in connection with the depiction of tobacco products.”라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간단히 말해 영화상 나오는 흡연 장면은 담배회사의 후원이나 협찬을 받지 않았다는 뜻이다. 영화의 히로인인 제시카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2~3차례 나온다. 극 전개에 필수불가결한 요소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그의 캐릭터 구축에 필요한 장치이긴 했다.

판씨네마㈜

판씨네마㈜


실제 영화의 크레딧을 보면 목소리만 출연한 사람을 제외하면 총 5명이 나온다. 주인공과 악당 그리고 숲속에서 제시카가 조우하는 사냥꾼 노인 로버트를 제외하면 등장하는 나머지 사람들은 일종의 맥거핀에 불과하다. 따지고 들면 전형적인 저예산 독립영화 작품이다. 독립영화 계열에서 이 영화와 비슷한 이야기 얼개를 가진 영화가 있는지 생각해보면 당장 떠오르는 작품은 코엔 형제의 영화 <파고>(1996)가 있다. 이야기 구조는 조금 복잡하지만, 만삭의 임산부 보안관 마지가 미치광이 연쇄살인범들을 차분히 검거해 나간다.

편견일 수 있겠지만 최근 3~4년간 개봉된 여주인공을 내세운 한국의 저예산 독립영화들을 보면 일상이나 사랑과 같은 주제로 소재가 국한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스웨덴 영화를 리메이크했다지만 얼마든지 한국에서도 도전이나 적용이 가능한 장르다. 한국의 독립영화계도 좀 더 분발했으면 한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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