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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은 달라진 리더십을 보여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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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은 없었다. 1위와 2, 3위도 정가 예상대로였다. 60.77%. 압승이다. 그런데 컨벤션 효과, 대표 취임을 전후해 지지율이 상승하는 효과는 눈에 띄지 않는다. 비록 당대표 선거 전의 결과 발표라고 하지만 오마이뉴스 의뢰로 8월 24일부터 27일까지 실시한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이낙연 대표(24.6%)는 2위 이재명(23.3%)보다 1.3%만 앞섰다. 오차범위(95% 신뢰 수준에서 ±1.9%포인트) 내다. 업계용어로 지지율이 ‘붙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월 31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방문해 현충탑에서 참배를 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월 31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방문해 현충탑에서 참배를 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이낙연 대망론’은 총리 시절 형성됐다. 보수 야권의 파상적인 대정부 질의에 맞선 그의 싸움은 전투적이면서 동시에 품격이 있었다. 야권의 대표적인 선수들이 차례차례 그와의 싸움에서 나가떨어졌다. 그는 문재인 정부 정책의 옹호자이면서 집행자였다. ‘전투에 임하는 적극적인 자세’는 총리 퇴임 후 비례 아닌 지역구 출마 때도 계속됐다. 먼저 종로에 터 잡은 이낙연 전 총리는 당시까지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인 황교안 미래통합당 전 대표를 링에 불러들였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 사상 최초였던 전직 국무총리이자 대권주자 사이의 빅매치. 결과는 황교안의 완패였다. 이후 현재까지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인사는 없다. 독주 무대가 된 것이다.

최근의 상황은 다르다. 대권주자 이낙연이 경쟁해야 하는 사람들은 당내 인사들이다. 야권을 상대할 때의 전투적 리더십과 다른 리더십이 요구되는 것이다. 딜레마는 거기서 시작된다.

“코로나19 때문에 집권세력에 대한 지지율은 잠시 반등하기는 했지만, 전반적인 흐름은 악재만 기다리는 첩첩산중이다. 새로 당대표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은 이런 민심을 되돌리는 것이 최대 과제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국정쇄신인데, 문제는 이낙연에겐 여전히 쇄신의 동력으로 삼을 자기세력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창선 시사평론가의 말이다. 자기세력이 없기 때문에 이른바 ‘친문’으로 불리는 민주당 주류세력의 지지를 바탕으로 가야 하는데, 국정이나 당의 ‘쇄신’은 그런 당 주류 정서와 충돌한다. 때문에 이낙연 대표의 운신 폭이 좁을 수밖에 없는 역설적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는 “60.77%로 당선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대세라고 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친문’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재명 지사는 믿기 힘들기 때문에 다른 대안이 없어 일단 밀어준 셈인데, 만약 아니라고 판단하면 언제든지 떠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재판 결과에 따라 김경수 지사나 조국 전 장관 등 ‘친문이 결집할 수 있는 대안’이 아직 살아 있고, 당명을 바꾼 국민의힘(옛 미래통합당) 등 야권에서 누가 부상할지 아직 모르는 등의 변수가 결합하면 “대선판 자체가 역동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전망이다.

왜 ‘컨벤션 효과’는 안 나타났을까

‘이낙연 당 대표체제’를 보여주는 것이 당 인사다. 선거 이튿날인 8월 30일, 이 대표는 대표비서실장, 정무실장, 메시지실장을 인선한 데 이어 31일에는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박성민 당 청년대변인, 박광온 사무총장, 한정애 정책위의장을 임명했다. 인사는 메시지다. 일단 눈에 띄는 것은 GT계다. 민주당이 공개한 오영훈 비서실장의 프로필엔 ‘정치입문’이라는 항목으로 “고 김근태 의장님이 주도했던 통일시대국민회의 출범과 함께 새정치국민회의 창당발기인으로 시작했다”는 대목이 맨 처음에 적혀 있다. 대변인단에 이름을 올린 허영 의원도 GT계로 분류된다.

그동안 이른바 GT계가 밀던 대권주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었다. 외형상으로는 박 시장이 유명을 달리한 후 무게중심이 옮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가에서는 대권주자 이낙연을 오랫동안 보좌해온 GT계 인사를 지목한다. 남평오 전 총리실 민정실장이다. 남 전 실장이 당내 지지기반이 약한 이낙연과 GT계를 잇는 고리라는 것이다. 남 전 실장은 총리 퇴임 후 원외에 머무르면서 총선과 당대표 선거 캠프에서 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GT계에 친문인사로 평가되는 김영배 정무실장, 박광온 사무총장 등이 결합한 체제다. 그러나 쉽지만은 않은 상황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한 인사는 “이 대표 측이 당직 인선에 애를 많이 먹었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선뜻 당직을 맡겠다는 인사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당직자도 “지금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에게 당직을 맡길 생각이었는데, 뒤로 물러나는 사람들이 많아 원래대로라면 2선에 있었어야 할 자기 사람들을 많이 당겨 쓴 인사”라는 하마평을 남겼다.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가 9월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 등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왼쪽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 청와대 사진기자단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가 9월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 등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왼쪽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 청와대 사진기자단

“결국 이재명 지사의 무죄판결 파기 환송 후 상승세를 컨벤션 효과가 꺾지 못한 것이다.” 김현성 시사평론가의 말이다. 그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상승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인 반면에 이낙연 대표가 뚜렷한 차별성을 발휘하지 못하면 대세론은 어느 순간 물거품처럼 꺼질 수 있고, 한번 꺾이게 되었을 때 회복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지사의 무죄취지 파기환송 판결이 대선판에 던지는 의미는 도덕성과 관련해서는 이재명 지사에 대한 검증은 끝났다는 착각이다. 반면 이낙연 대표는 여전히 밝힐 게 많이 남은 것처럼 비친다. ‘도덕적 기대’의 잣대로만 봤을 때는 훌훌 털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이 지사에 비해 이 대표에 대한 기대가 아직 높은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게 리스크가 될 수 있다.” 이낙연 대표는 4선 국회의원이다. 그리고 그 기간은 정치적 격변기였다. 이합집산에선 민주당계 정당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정치는 말과 글로 하는 싸움이다. 도지사·총리 등 행정 경험을 제외하더라도 4번의 국회의원 과정 중에 수많은 글과 말을 남겨 놨다. 김 평론가의 말이다. “코로나19 정국 덕분에 당대표 선거는 과열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나온 네거티브, ‘기자재직 시절 전두환 정권 찬양기사를 썼다’는 애교 수준이다(이 대표 관계자는 “당시 군부 관계자 워딩을 스트레이트로 쓴 것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힌 것으로 왜곡한 대표적인 네거티브”라고 해명했다). 어디에 어떤 지뢰가 있을지 모른다. 아마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다.”

이낙연의 첫 당직 인사는 친문+GT계?

신철우 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위원장은 당내에서 동교동계 막내 출신인 이 대표와 함께 호남의 구 기득권이 복귀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많다고 전한다. 그는 “비리전력자나 탈당한 사람의 당 복귀 가능 시점을 3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등 당헌당규가 강화되었지만 특히 이후 연쇄적으로 이뤄질 지역 인선에서 호남 구 기득권세력의 복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당 대표 선거 과정에서 높았다”며 “특히 중요한 것은 내년 4월에 치러지게 될 서울과 부산 등 재보궐선거인데 당헌당규상 선거 1년 전 사퇴 시점 때문에 당대표로서 공천권을 행사 못 하게 될 수도 있다”고도 전망했다. 당헌당규상 당대표가 대선에 나갈 경우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3월 9일 이전에 사퇴해야 한다는 것은 이번 당대표 선거 과정에서 핵심쟁점이었다. 당대표와 같이 선출된 최고위원의 경우 이번 선거에서 당대표와 임기를 분리하도록 당헌당규가 개정되었다. 이 대표는 이번에 치러진 당대표 선거가 “평상시 치러져 왔던 당대표 선거가 아니라 코로나19 위기라는 초유의 국난 상황에 치러지는 선거”라는 점을 강조해 상대 후보들의 공격에 대응해왔다. 즉 국난극복을 위해 모든 역량을 동원해야 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당대표에 출마하게 되었다는 논리다.

그런데 코로나 대응과 관련, 이 대표가 내놓은 입장과 관련해서도 잡음이 일고 있다. 당대표 선거 과정에서 이 대표는 “머지않아 지급될 2차 재난지원금은 ‘맞춤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실업자 등 고용 취약계층과 수해 및 방역피해자 등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두텁게 지급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다. 지난 4월 재난지원금 당시 정부, 정확히 말하면 기재부가 마지막까지 버텼던 논리였던 ‘선별지원론’을 펴고 있다.

당대표가 공개적으로 선별지원을 펴는 마당에 당내에서 보편지급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설자리가 좁혀지고 있다. 지난 9월 1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홍남기 경제부총리에 대한 공개질의형식으로 보편지원의 당위성을 역설한 것도 이낙연 당대표에 대한 우회비판 내지는 견제로 정치권에서는 읽고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 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을 방문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인들과 애로사항에 대해 대화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 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을 방문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인들과 애로사항에 대해 대화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문제는 선별지급론을 고수하고 있는 이 대표가 그에 대한 논리를 뚜렷하게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9월 1일 방송인 김어준씨가 진행하는 TBS <뉴스공장>에 출연한 이 대표는 “선별지급은 보수 어젠다가 아니냐”는 진행자 질문에 “그렇지 않다. 4월에도 사실은 70%만 지급하는 것이었다”라고 답했다. 그는 “당시에도 100% 지급으로 정부를 설득하면서 마지막으로 정부에게 했던 이야기는 ‘고소득층이 그걸 받아도 기부할 거다. 그건 제2의 금 모으기 운동 같은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였는데 실제로 기부는 1%도 안 됐다”라며 “4월 1차 지급 때 비하면 데이터의 업데이트도 많이 되었고 전달체계도 많이 확충되었다”며 선별지급에 큰 무리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 대표의 주장에 대한 반발은 확산되고 있다. 시사평론가 김용민씨는 9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실제 여론조사에서도 전체지급(보편지급)은 64%의 지지를 받아 선별지급 여론을 압도하고 있다”라며 “이런 여론을 별다른 설득도 없이 무시하거나 두루뭉술하게 비판을 회피하면서 넘어가려는 자세는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런 식으로 지지자를 넘어 국민 다수의 의사를 묵살하고 관료, 보수야당, 수구언론의 반대·비판 없이 무난한 길을 택하지 않을까 우려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재난지원금 ‘선별’지급 고집하는 까닭은

4월 1차 재난지원금 지급 후 보편 대 선별 구도의 논란이 여권 내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생전 쟁점화하려 했던 전국민고용보험이 바로 재난지원금을 기본소득의 일환으로 간주하는 이재명 지사의 접근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이었다. 박원순 시장 사후 표류하고 있는 이 쟁점을 이낙연 대표가 정책적으로 이어받는 것일까. 실제 이낙연 대표의 선별 주장은 행정부 수장으로서 총리 경험이나 개인적인 독단으로만 나온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근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등이 이 대표의 ‘경제공부모임’ 멤버로 알려져 있다. 이 교수를 비롯, 모임에 참여하는 교수들 성향은 재정·공급을 중시하는 슘페터리안으로 학계에서는 평가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기반이 되었던 진보성향 ‘소득주도성장론’-포스트케인지언 경제정책과는 확연히 다른 선택이다.

선별지급 관련 박원순 서울시장의 전국민고용보험정책을 이낙연 대표가 넘겨받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양측 모두 부정적인 입장이다. 당시 관련 정책입안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최병천 전 서울시 정책보좌관은 “당 대표경선 과정이나 이후 이 대표 쪽에서 접촉은 없었다”라며 “현재까지 나온 주장으로 볼 때 정책적으로 뒷받침되었다기보다 이 대표 개인 생각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대표 관계자는 “결국 당대표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코로나19 위기라는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며,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냐에 따라 문재인 정권의 성패가 달린 것은 사실”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과 이낙연 대표의 지지율이 연동되어 있기 때문에 이 대표에 대한 지지도 정권이 맞이하게 될 레임덕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 국난이라는 특수상황이기 때문에 잘 극복해낸다면 레임덕 없는 정권으로 마무리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낙연 대표에게 딜레마가 있다면 시대적 과제를 해결해낼 수 있느냐를 둘러싼 딜레마이지 권력을 잡기 위한 딜레마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국민이 판단할 몫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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