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공상과학 시나리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전쟁’은 어언 만 8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지난 1월 후반 우리 땅에 상륙해 기나긴 업-다운의 물결을 그리고 있지만, 지치지 않고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는 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코로나19라는 적. 하지만 ‘코로나 블루’라고도 불리는 우리의 우울감, 피로감, 박탈감은 과연 바이러스 때문만일까 반문해본다. 신종 바이러스의 공습을 받지 않았을 때, 즉 코로나19 이전에도 우리는 갈등하고 고민하고 힘들고 괴로웠다. 그런데 바이러스라는 고통의 요인이 하나 늘었을 뿐이다. 좋다. 이 바이러스가 제거된다면 그래도 다소 숨통이 트이겠지. 마치 영화 속 좀비 바이러스처럼 이 녀석은 우리 곁에 잠복해 있다가 우리를 콱 물어 감염시키니까 말이야. 그래서 여름의 끝자락에서 납량특집 삼아 공상과학 영화에서 제시하는 미지의 적과 조우했을 때 등장하는 대표적인 시나리오 세 가지를 정리해본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첫째는 영화 <오메가 맨>(1971) 버전이다. 감염으로 변이가 된 신인류만 살아남고, 구인류는 멸종한다. 이 인상적인 작품은 2007년 <나는 전설이다>로 리메이크되었다. 종말적 분위기가 짙게 깔려 결말이 매우 우울하다.

둘째는 명랑 애니메이션인 <월-E>(2008) 버전. 오염돼 폐허가 된 지구에는 재래식 쓰레기 처리 로봇 월-E와 바퀴벌레 한 마리만 덩그러니 남고, 인간들은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는 거대 우주선 ‘엑시엄’을 타고 우주 공간을 여행한다. 이 이야기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전설의 패러디이다. 지구에서 식물이 출현하면 이 첨단 방주는 지구로 즉시 복귀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세 번째는 아카데미 4관왕(<기생충>)에 빛나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2013)를 꼽고 싶지만, 이 주제는 앞의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버전의 혼합물이다. 그래서 세 번째는 20세기 말 세계를 열광시켰던 <매트릭스> 시리즈 버전으로, 정보기술로 짜인 가상공간 속에 새로운 세계를 건설해 나가는 사이버 펑크스타일의 시나리오이다.

그런데 가끔 세계보건기구(WHO)나 세계적인 과학자가 코로나바이러스는 박멸되지 않을 것이기에 우리는 앞으로 이들과 공존하는 삶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얘기할 때 네 번째 버전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것은 <조의 아파트>(1996) 버전인데 좀 께름칙하다. 시골에서 뉴욕으로 온 조가 이미 방구석을 점령하고 있던 수천마리의 바퀴벌레와 동거하며 공생공존하는 친구가 되어간다는 찝찝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요약하면 우리가 바이러스에게 지는 건 안 된다. “우리는 자랑스런 인간이다!”(크라잉넛의 노래 ‘룩셈부르크’에 나오는 뭉클한 가사) 그렇다고 방주를 타고 우주로 나가려니 기술의 한계와 비용의 압박이 크다. 그리고 지금도 아슬아슬하게 공존하고 있는 셈인데 우리 인간이 바이러스와 친구를 먹을 순 없는 법. 그래서 세 번째 버전인 인간의 강점, 정보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 기술을 총동원해 우리끼리 소통하고 관계하며 물리적 접촉은 최대한 차단, 교류는 강화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지 않겠는가.

원칙은 지난 2월 말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용어를 지침 삼아온 이래 바뀌지 않았다. 마스크 쓰고, 자주 손 씻고, 접촉을 차단하는 것. 접촉을 피하되 접속은 늘려도 좋다는 것. 다시 기억하자. 명심하자. 그리고 버티자. 여름은 가고, 가을이 오고 있다.

<최영일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 이사·시사평론가>

IT칼럼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