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로야구 KBO리그에선 느닷없이 ‘은퇴투어’가 뜨거운 화제에 올랐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예고한 LG의 간판스타 박용택(41)의 투어 문제를 놓고 한바탕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가 박용택의 ‘은퇴투어’를 제안하고 소속팀 LG가 추진하려 했지만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그가 투어를 할 만한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부상으로 한동안 2군에 머물던 박용택은 결국 8월 11일 1군 복귀 기자회견에서 “은퇴투어는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안 하는 게 맞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LG 트윈스 박용택 선수 / 이석우 기자
은퇴투어가 뭐길래
은퇴투어는 마지막 시즌을 보내는 선수가 각 상대팀의 마지막 원정경기 일정마다 축하를 받는 행사다. 현역 선수로 그가 걸어온 발자취를 기념하는 선물을 주거나 식전행사를 열어준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선 2012년 애틀랜타의 강타자 치퍼 존스를 시작으로 마리아노 리베라(2013년)와 데릭 지터(2014년·이상 뉴욕 양키스), 데이비드 오티스(2016년 보스턴) 등이 성대한 축하를 받았다. 선수생활 후반에 금지약물 복용을 시인하면서 제대로 체면을 구겼던 오티스가 “(은퇴투어로) 이렇게 바쁠 줄 알았다면 은퇴 선언을 하지 말 것을 그랬다”고 농담 섞인 투정을 할 정도였다.
국내에선 2017년 ‘라이언 킹’ 이승엽이 최초의 은퇴투어 주인공이 됐다. 이승엽이 소속팀 삼성을 제외한 9개 구단과 시즌 마지막 원정경기를 치를 때마다 어떤 선물을 받는지가 관심이 될 정도였다. 한화는 보문산 분재를, 롯데는 순금 10돈을 들여 ‘홈런 잠자리채’를 마련했다. 두산은 달항아리 도자기에 이승엽의 좌우명을 새겨 전달했다. 그렇게 그는 영광스럽게 퇴장했다. 그해 유니폼을 벗은 이호준 NC 코치도 KBO리그 차원으로 준비한 행사는 아니었지만, 꽃다발을 받으면서 미니 은퇴투어를 가졌다.
KBO리그 역대 최다 안타(8월 13일 기준 2478개) 보유자인 박용택이 은퇴투어의 다음 후보로 떠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박용택은 2002년 1군에 데뷔한 이래 줄곧 LG 유니폼만 입은 프랜차이즈 스타다. 그는 단순히 오래 뛴 것을 넘어 2008년(96경기)과 2019년(64경기)을 제외하면 모두 100경기 이상 꾸준히 출전했고, 그만큼 풍성한 기록을 쌓으면서 KBO리그의 역사가 됐다.
그러나 박용택 은퇴투어가 본격적으로 추진되자 여론이 크게 엇갈렸다. 환영하는 팬들이 많았지만 반대하는 목소리도 컸다. ‘이승엽급의 슈퍼스타는 아니다’, ‘LG의 영웅일 뿐 KBO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는 아니다’, ‘2009년 타격왕 사건을 잊었느냐’ 등의 이유였다. 은퇴투어 찬반을 놓고 포털사이트에서 투표까지 진행됐는데 아쉽게도 찬성보다 반대가 더 많았다. 박용택이 스스로 은퇴투어를 포기한 배경이기도 하다.
야구계에선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팬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스토리는 기록이 아닌 추억에서 나오는 터. 그 추억은 은퇴하는 선수들의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풍성해진다. 성민규 롯데 단장은 “LG는 물론이고, 상대팀의 레전드라도 존중해야 한다. 레전드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박용택 같은 선수가 팬들의 반대로 은퇴투어를 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그 어떤 선수가 다음 타자로 나설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국내 다른 종목들이 적극적으로 은퇴투어를 준비 중인 것과 비교된다.
축구의 첫 은퇴투어가 나올까?
프로농구 KBL에서는 몇 차례 은퇴투어가 열렸다. 현역 시절 국보센터로 불렸던 서장훈이 2013년 KT에서 은퇴하면서 약식으로 은퇴투어의 영광을 누렸다. 당시 서장훈은 KGC인삼공사전에서 꽃다발을 처음 받았는데, 이후 그가 뛰었던 친정팀들(전자랜드·SK)의 배려로 팬들과 잊지 못할 추억을 나눴다. 이후 김주성 DB 코치가 2018년 KBL에서 공식적으로 준비한 은퇴투어의 주인공이 됐다. 올해에는 현대모비스에서 은퇴한 양동근이 당연히 은퇴투어의 주자로 선정됐지만,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악재로 시즌이 중단돼 그대로 코트를 떠나야 했다. 농구팬들 사이에선 양동근의 업적을 고려해 은퇴투어가 어렵다면 은퇴 경기라도 치러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프로축구 K리그도 조심스럽게 은퇴투어를 염두에 두고 있다. 축구는 상대적으로 경기 숫자가 적은 종목의 특성상 은퇴투어의 사례가 없었다. K리그나 축구대표팀에서 큰 업적을 남긴 선수들이 올스타전이나 A매치(국가대항전) 하프타임에 은퇴식을 치르는 게 최고의 예우였다. 차두리 오산고 감독이 2015년 뉴질랜드와의 평가전에서 6만여 관중의 박수 속에 아버지인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에게 안긴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승엽처럼 적지에서 박수받으며 떠나는 선수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살아 있는 축구의 전설인 이동국(41·전북)이 유력한 후보다.
이동국은 전북에서만 K리그 우승컵을 7번이나 들어 올렸을 뿐만 아니라 개인 성적도 출중하다. 통산 득점 1위(215골)와 도움 2위(75개)로 날마다 K리그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이동국이 태극마크를 달고 큰 무대에서 다소 약했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센추리클럽(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에 가입할 정도로 공로도 컸다. 이동국이 최근 본격적으로 지도자 교육을 받기 시작한 점을 감안한다면 은퇴투어가 공론화될 필요성이 있다.
프로축구연맹은 이동국이 언젠가 은퇴를 선언한다면 은퇴투어를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입장이다. 프로축구연맹의 한 관계자는 “야구처럼 축구도 은퇴투어를 진행할 수 있고, 이동국 같은 선수라면 얼마든지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은퇴했다가 최근 수원FC 선수로 복귀를 선언한 조원희도 “K리그에서 은퇴투어가 진행된다면 이동국 선배 말고 그 누가 대상이 될 수 있느냐”며 “개인의 영광을 떠나 축구팬들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이 부분을 곱씹을 때가 됐다”고 전했다.
<황민국 스포츠부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