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가 아파트 자치를 엉망으로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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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늬 기자

이하늬 기자

‘아파트 민주주의’ 취재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기사 기획을 설명하자 “우리 아파트에서도…”라고 응해온 사람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디 아파트나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합니다. 아파트는 동마다 대표를 선출하고 이들 중 한 명이 입주자대표회의(입대회) 회장을 맡습니다. 아파트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를 모두 총괄합니다. 입대회를 감독하고 조사할 수 있는 감사도 있습니다. 관리사무소는 입대회에서 결정된 사항을 집행하는 역할을 합니다. 일종의 입법과 행정의 분리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엉망입니다. 동 대표 선거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혹은 7시까지 진행되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전자투표를 하는 곳도 있지만 대개 투표소를 방문하는 방식으로 선거를 진행합니다. 직장인은 참여하기 힘들게 되어 있습니다. 동 대표 선거만이 아닙니다. ‘주민 투표’를 통해 진행한다는 사업 대부분이 이런 식입니다.

직장인이 참관하기 어려운 시간에 회의를 개최하는데도 회의록은 제대로 남기지 않습니다. 제가 거주하는 아파트 입대회 회의록을 본 적이 있습니다. 몇억원대의 수의계약이 결정된 회의였는데, 회의록은 달랑 한 장. 날짜, 회의 안건, 회의 결과 정도만 기록돼 있었습니다. 구청에 물었더니 대부분의 입대회 회의록이 비슷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입주민들이 관리사무소나 감사를 찾아가도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와 관리사무소 업체를 정하는 게 입대회거든요. 입대회에 대한 감독이나 견제가 전혀 이뤄질 수 없는 구조입니다. 이 정도 알게 되면 대부분의 입주민은 포기합니다. 무엇부터 문제를 제기해야 할지 감이 안 와서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습니다.

거대 악에 맞서는 건 어느 부분에서는 쉽습니다. 명분도 있고 주변의 지지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파트 문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돈 몇 푼 더 내고 말지’,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냉소적인 반응과 마주하기 십상입니다. 바로 그 냉소가 아파트 자치를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바빠서, 귀찮아서, 돈 몇 푼이나 한다고….

기사 마지막에 “모두가 조금씩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썼습니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그것 외에 답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번 취재를 계기로 저부터 그 관심을 실천하려고 합니다. 갈 길이 멀지만 우선 그 냉소부터 거두겠습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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