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통과에 걸리는 평균 기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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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빛의 속도’로 처리… 의원 발의 법안 1년 6개월~2년 걸려

지난 7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된 주택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과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21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통과된 법안이다. 가장 먼저 통과되기도 했지만 가장 빠른 속도로 통과됐다.

7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하는 내용의 주택임대차보호법이 통과되고 있다./연합뉴스

7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하는 내용의 주택임대차보호법이 통과되고 있다./연합뉴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당초 정부안으로 7월 27일 소관 상임위인 법사위에 상정돼 제안설명과 검토보고, 대체토론이 이뤄졌다. 이틀 뒤인 29일 찬반토론 끝에 법사위원장안으로 통과됐다. 정부안은 다른 임대차 법안 6건(6월 5∼22일 발의)과 함께 대안반영으로 폐기되고, 법사위원장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법안은 다음날인 7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정부는 7월 31일 이 법을 공포하고 시행했다.

20대 국회 가결률은 13.2% 불과

첫 상정에서 본회의 통과까지 사흘이 걸렸다. 공포·시행까지는 나흘이 소요됐다.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은 법사위에서 법안 통과에 반대하면서 표결에 불참했고, 본회의 표결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부동산 가격 파동에 대한 정부·여당의 다급함과 단호한 의지가 한꺼번에 드러난 것으로 해석된다.

주택임대차보호법안은 원래 정부안으로 지난 6월 26일 발의됐다. 이 법안은 6월 29일 법사위에 회부됐다. 정부안 발의에서 본회의 통과에서 공포·시행까지는 약 한 달간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과 함께 7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주택임대차보호법과 똑같은 수순을 밟았다.

두 법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되던 7월 30일,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은 모두 2500여건(정부 발의법안 포함)에 달했다. 이중 두 법안만 먼저 신속하게 처리됐을 뿐이다. 모든 법안이 빠른 속도로 통과되는 것이 아니다. 두 법안은 매우 특별한 예에 속한다. 의원 발의안 중 대부분의 법안은 통과되지 못한 채 폐기된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모두 2만4141건(정부안, 위원장안 포함)이 발의됐으나 1만5125건이 폐기됐다. 폐기율이 약 62.6%에 이른다. 3195건만(수정 포함)이 가결돼 가결률은 13.2%에 불과하다. 대안 반영이 5563건, 수정안 반영이 41건에 불과했다.

순수하게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가결률이 훨씬 떨어졌다. 의원 발의법안은 총 2만1594건 중 원안 가결이 569건, 수정 가결이 868건에 불과했다. 원안 가결과 수정 가결을 합쳐 가결률은 6.7%에 불과하다. 1만4769건이 폐기됐다. 폐기율은 68.3%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16년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19대 국회(2012년 5월∼2016년 5월)에서 1개 법안당 평균 처리 기간 517일이었다. 16대 국회는 272.9일, 17대는 413.9일, 18대는 485.9일이었다. 갈수록 법안 처리 기간이 길어진 것이다.

법안 통과에 걸리는 평균 기간은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도입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은 법안 통과가 얼마나 힘들고 오래 걸리는지를 잘 보여준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6년 12월 19일 사회적 참사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나흘 뒤인 12월 23일 소관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에서 상임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 요건을 갖춰 패스트트랙에 지정됐다. 이 법안은 최단 기일인 330일(상임위 180일, 법사위 90일, 본회의 부의 후 60일)이 지난 2017년 11월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됐다.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국회 의원실 관계자들은 “의원 발의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데에는 평균 1년 6개월에서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통합당의 A씨는 “아주 빨라야 6개월 만에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A씨는 “단, 여·야 의원이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상임위 법안소위에서 여·야 의원들을 잘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21대 국회 개원 후 상임위의 법안소위가 구성되지 않는 상황에서 통과됐다. 민주당은 시급한 사안인 만큼 상임위에서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통합당은 우선 법안소위부터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소속의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법안을 표결에 부쳐 상임위에서 통과시켰다. 통합당의 원내 관계자 B씨는 “법안소위의 심사 없이 이렇게 통과하는 법안은 처음 본다”면서 “이 법안 처리가 전례가 된 만큼 앞으로 국회에서 다른 법안들이 어떻게 처리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패스트트랙 지정돼도 330일나 걸려

법안소위에서는 여야 의원 만장일치가 관례가 돼 있어 한 명의 소위 위원이 반대하게 되면 이 법안은 다음 회기로 넘어가게 된다. 민주당의 C씨는 “말로는 다음 회기로 넘어간다지만 법안소위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되지 않을 경우 그 법안은 4년 내내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한두 달 뒤 열리는 다음 회기의 법안소위에서는 또 다른 법안들이 통과를 기다리기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전 회기에서 처리하지 못한 법은 통과하기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전해철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9월(20대 국회) 법안소위에서 재적위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는 경우에는 해당 안건을 표결에 부쳐야 한다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해당 상임위 법안소위가 법안 처리의 발목을 잡지만, 체계·자구 심사권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법사위의 제2법안소위 역시 빠른 법안 처리를 막는 곳이다. 이번에 통과된 임대차 관련법은 소관 상임위가 법사위인 만큼 단 한 번의 통과로 시간이 줄어들었다.

최근 20대 국회에서 빠르게 통과된 법안으로는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있다. 올해 1월 말 코로나19 확산 위기가 닥치자, 2월 말 국회에서 신속하게 통과됐다. 감염병 위기 시 정보공개 범위, 절차 등을 구체화해 명시한 개정안이었다. 1월 말부터 2월 20일까지 여러 건의 의원 발의안이 제출됐고, 2월 20일 보건복지위에서 위원장 안으로 여·야가 합의에 이르렀다. 2월 20일 가결돼 26일 법사위에서 체계·자구 심사를 거쳐 수정 가결됐다. 같은 날 본회의에서는 기동민 의원 수정안으로 가결돼 정부에서는 3월 4일 공포됐다. 상임위 상정에서 본회의 통과까지 6일, 공포까지는 13일이 걸렸다.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처럼 신속하게 처리된 예다. 다만 여·야가 합의해 표결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법안 처리 속도에 못지않게 감염병 개정안처럼 어떤 법안이냐는 점을 잘 살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연대는 8월 3일 긴급좌담회 자료집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제정된 지 약 40년, 최소 계약 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확대된 지 31년 만인 지난 7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임대료인상률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을 골자로 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됐다”고 밝혔다.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국회에서는 나흘 만에 통과됐지만 임차인들에게는 31년 만에 계약 기간이 늘어난 법안이 됐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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