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 득점왕 제이미 바디 ‘신데렐라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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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rdy’s on Fire. Your defence is terrified(바디가 불붙었어. 너희 수비수는 무서워 떨고 있지).”

레스터시티 팬들은 몇 년 전부터 홈경기를 할 때면 한 선수를 위해 이런 응원가를 부르곤 한다.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만 뛸 수 있다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하부리그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있는 이 선수의 이름은 제이미 바디(33)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레스터시티 제이미 바디(왼쪽) / AP연합뉴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레스터시티 제이미 바디(왼쪽) / AP연합뉴스

바디는 지난 7월 27일 끝난 2019~2020시즌 EPL에서 23골을 터뜨려 피에르-에므리크 오바메양(아스널), 대니 잉스(사우샘프턴·이상 22골)를 한 골차로 제치고 득점왕에 올랐다. 1987년 1월 11일생(만 33세 6개월)인 바디는 2009~2010시즌 디디에 드로그바(당시 첼시·29골)의 32세를 넘어 EPL 최고령 득점왕 기록을 다시 썼다. 레스터시티 최초의 득점왕, 해리 케인(토트넘)에 이어 2000년대 두 번째로 나온 잉글랜드 출신 EPL 득점왕이라는 기록도 따라왔다.

바디의 축구 인생은 2002년 지역 연고팀인 셰필드 웬즈데이의 유소년 선수로 입단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처음엔 순탄치 않았다. 바디는 셰필드 시절 청각장애를 가진 친구가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뒤 상대방을 폭행하는 사고를 저질렀고, 이 일로 6개월간 전자발찌를 차야 하는 신세가 됐다. 이에 바디는 통금시간인 오후 6시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전반전만 뛰고 집에 가는 웃지 못할 일도 겪었다.

주경야독의 끝을 보여주다

팀에서 사고뭉치로 찍힌 바디는 결국 1년 만에 셰필드를 떠났다. 그리고 8부 리그의 스톡스브리지 파크 스틸즈에 입단하며 축구선수의 삶을 이어나갔다. 당시 바디의 주급은 30파운드(약 4만6000원). 5만원이 채 안 되는 돈을 받고 선수로 뛴 바디는 생계를 위해 낮에는 치료용 부목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오후에 공을 찼다.

힘들게 축구선수 생활을 이어갔지만, 바디의 재능은 곧 눈에 띄었다. 바디는 2007년 스톡스브리지의 1군 선수로 올라서 2009~2010시즌까지 3시즌 동안 107경기에서 67골을 터뜨리며 팀의 에이스로 떠올랐다. 이후 바디는 승승장구했다. 2010년 6월 당시 7부 리그의 핼리팩스 FC로 이적한 바디는 2010~2011시즌 41경기에 출전해 29골을 넣었고, 이듬해 5부리그인 플리트우드 타운으로 옮겨 그 시즌에 31골을 터뜨리고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하부리그에서 승승장구하는 바디를 많은 사람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2년 5월, 당시 2부리그 격인 잉글랜드 챔피언십 소속의 레스터시티가 바디를 데려갔다. 플리트우드 타운으로 이적할 때 15만파운드(약 2억3000만원)였던 바디의 이적료는 레스티시티로 이적할 때 6배가 넘는 100만파운드(약 15억원)로 껑충 뛰었다.

레스터시티에서 뛰기 시작한 2012~ 2013시즌, 바디는 적응에 무척 애를 먹으며 리그에서 4골을 넣는 데 그쳤다. 100만파운드나 들여 데려온 선수가 부진을 거듭하자 팬들의 비난은 거세졌고, 바디는 야유에 시달려야 했다. 견디다 못한 바디는 팀을 떠날 생각에 이적을 요청했다. 하지만 당시 감독이었던 나이젤 피어슨을 포함한 코칭스태프의 만류로 떠날 생각을 접고 팀에 남았다.

레스터시티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13~2014시즌에 데이비드 뉴젠트(프레스턴 노스 엔드)와 투톱을 이뤄 리그에서 16골을 넣는 대활약을 펼쳤고, 레스터시티는 이에 힘입어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 EPL에 복귀했다.

한계를 극복한 선수

2014~2015시즌 3라운드 아스널전에서 교체 투입돼 꿈에 그리던 EPL 데뷔전을 치른 바디는 5라운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에서 마침내 자신의 진가를 온 세상에 알렸다. 이 경기에서 바디는 1골·3도움을 올리는 원맨쇼를 펼치며 팀의 5-3 역전승을 이끌었다. 비록 이후 장기간 침묵을 지키며 5골이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했지만, 이는 다음 시즌 대폭발을 위한 적응기였다.

2015~2016시즌 바디는 새 사령탑인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 아래서 화려하게 피어났다. 선덜랜드와의 개막전부터 골을 터뜨리며 산뜻하게 출발했다. 그리고 4라운드 본머스전부터 14라운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까지 EPL 11경기 연속골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이 시즌 바디는 리그 36경기에서 24골을 넣어 3위에 올랐고, EPL 최우수선수에도 뽑혔다. 또 2015년 5월 생애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그는 2016년 3월 독일과 A매치 평가전에서 자신의 A매치 첫 골을 기록하는 기쁨도 맛봤다. 바디는 이 시즌을 기점으로 이번 시즌까지 5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이어오고 있다.

다른 톱클래스 공격수들과 테크닉과 피지컬을 비교했을 때, 바디의 기량은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다. 축구 지능이 생각보다 뛰어나지 않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대중에 알려진 바디는 거만한 이미지다. 경기 전 신체 활성화와 집중력 향상을 위해 카페인 등을 항상 섭취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는데 이를 두고 주위에서 많은 지적이 들어오자 ‘금지약물도 아닌데 무슨 상관인가’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바디는 자신을 혹독하게 다그친다. 그는 훈련량이 많기로 소문난 선수인데 이는 돈이 없어 축구를 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라니에리 감독은 훈련량이 많다는 이유로 바디의 훈련을 금지하기도 했다.

바디의 장점은 순간 최고 속도 35㎞를 상회하는 폭발적인 스피드다. 이 스피드를 이용한 상대 수비라인 무너뜨리기에 큰 장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수비라인을 바짝 끌어올리는 강팀을 상대로 오히려 더 잘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라인을 내리고 잔뜩 웅크리는 팀에게는 다소 약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슛 타이밍이나 동작도 약간 어설퍼 보이는데, 그럼에도 많은 골을 넣어 천부적인 골감각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엄청난 활동량으로 상대 수비진에게 끊임없이 압박을 가해 상대가 원활한 빌드업을 하지 못하게 하고, 때로 공을 뺏어 역습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바디가 처음 축구를 시작했을 때 30파운드였던 주급은 현재 14만파운드(약 2억원)로 4000배 이상 상승했다. 바디가 써내려가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현재진행형이다.

<윤은용 스포츠부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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