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의 황망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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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망했습니다. 기자 역시 ‘박변’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박원순 서울시장과 인연이라면 인연이 꽤 깊습니다. 2000년대 초반 어느 여름날 일요일, 서울 안국동 종로경찰서 맞은편 건물 2층에 있던 참여연대에서 ‘메리야스’ 차림으로 사무실을 지키던 그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기억도 있습니다. 소위 ‘지라시’로 돌던 ‘공소장 전문’이라는 출처 불명의 문건에 묘사된 그의 행위나 그가 보냈다는 텔레그램 문자는 상상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주변 사람들 사이에 그는 ‘일중독’으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같이 일했던 사람 중 지독한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참여연대 문화사업 부문 간사였던 탁현민 대통령 의전비서관은 그가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 출마를 결심한 직후 정동에서 열린 북콘서트의 사회를 보며 농담치곤 ‘저래도 되나’ 싶을 만큼 강하게 디스했습니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된 날, 광화문에서 기자와 자리를 함께한 전직 참여연대 간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장 불쌍한 사람들은 박 시장의 가족”이라며 박 시장의 선택에 화를 내던 이 인사는 술이 몇 순배 돌고 나자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결국 “절대 장례식장엔 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이 인사와 한밤중에 서울대병원 빈소를 방문했습니다.

실종과 자살 유력이라는 전언을 듣던 날 이후 일어날 후폭풍. 가늠이 안 됐습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기사에서 마무리를 박원순이 남긴 ‘유산’이 아니라 ‘숙제’라고 했지만 ‘공적 삶에 대한 끝없는 헌신’으로만 기록되던 이의 마지막에 드러난 다른 얼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는 여전히 개인적으로는 난망한 일로 남을 것 같습니다.

7월 22일 열린 피해자 지원단체의 2차 기자회견은 유튜브를 통해 봤습니다. 유튜브 영상에 실시간으로 달린 댓글은 대부분 피해자 지원단체와 피해자를 비난하는 목소리였습니다. 피해자가 ‘피해자다움’의 자격에 합당한 인물인가 의구심을 던지는 주장들입니다. 사실 그건 그동안 이런 사건에서 전형적으로 되풀이돼온 공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비난입니다. 가치에 앞서 사실을 추구해야 하는 언론이 취해야 할 입장은 무엇인가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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