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기성용(31·서울)의 복귀 소식에 프로축구 K리그가 들썩인다. 지난겨울부터 K리그 복귀를 타진했던 기성용은 친정팀 FC서울 유니폼을 11년 만에 다시 입었다. 새 출발을 다짐한 그는 원래 서울에서 달고 뛰었던 등번호(17번·21번) 대신 새로운 등번호 8번도 공개했다. 구체적인 계약 조건은 공개하지 않았으나 2023년까지 3년 6개월의 장기 계약과 함께 최고 연봉을 보장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FC서울로 복귀한 기성용이 지난 7월 22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경기장에서 입단 기자회견을 마치고 자신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선보이고 있다. / 박민규 기자
기성용은 지난 7월 2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공식 입단 기자회견에서 “긴 시간이었다. K리그에 다시 서기까지 많은 노력을 했고, 이날을 기다려왔다. 드디어 오게 돼 행복하다. 기대도 많이 된다”고 말했다.
서울로 복귀 “제2의 전성기 기대”
기성용의 서울 입단은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기대하기 힘든 일이었다. 기성용이 지난 2월 K리그의 문을 두드릴 당시 서울과 입단 조건으로 마찰을 빚으면서 “나를 가지고 놀지 마라”는 날 선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기성용이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마요르카로 단기 계약을 맺고 떠나면서 서울과의 인연은 끝난 것으로 관측됐다. 기성용의 에이전시조차 “기성용이 올해 K리그 복귀하는 것은 특별한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없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기성용이 마요르카에서 데뷔전을 치른 직후 코로나19가 유럽으로 확산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기성용은 가족을 위해 마요르카와 계약 연장을 포기하고 귀국을 선택한 뒤 서울과 다시 마주 앉았다. 서울 역시 최근 강등권에 가까운 11위라는 부진한 성적에 성난 여론을 달래려면 기성용이 꼭 필요했다. 기성용은 최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Time to work KI(다시 일할 시간)’라는 게시물을 올려 서울 복귀를 암시했다.
기성용은 “코로나19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 보니 외국에 나가 다시 사는 것에도 고민이 있었다”며 “K리그 복귀를 늘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서울과 두 번째 협상에서 동기부여를 가지고 이 팀에서 뛸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기성용은 서울 유니폼을 입은 이상 흘러간 과거는 잊겠다고 했다. 그는 “이제부터 차근차근 경기에 나서면 제2의 전성기가 올 것으로 믿는다”면서 “나를 응원해준 분들에게 잘 성장해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기존 선수들과의 호흡도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 축구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기성용의 서울 복귀는 ‘단짝’ 이청용(32·울산)과 맞물려 K리그 흥행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김대길 경향신문 해설위원은 “코로나19로 한국 축구가 위축된 상황에서 흥행을 이끌 수 있는 좋은 호재”라며 “K리그에 스타가 부족했던 문제점이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기성용과 이청용은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년간 서울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기성용은 1989년 1월, 이청용은 1988년 7월생이지만 기성용이 ‘빠른 89년생’이라 둘은 동갑내기처럼 지냈다. 이청용이 2004년 먼저 서울 유니폼을 입었고, 기성용은 2006년 입단했다. 둘은 2007년부터 팀의 주축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한국 축구의 미래라는 의미로 ‘쌍용’이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이청용과 기성용은 2009년 각각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볼턴과 스코틀랜드의 명문 셀틱으로 떠나면서 유럽 생활을 시작했다.
K리그에서 11년 만에 다시 만난 두 선수가 동료가 아닌 적이라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기성용은 “어제까지 (이)청용이와 (전화로) 대화를 했다”면서 “어릴 때부터 생활하면서 추억을 쌓았고, 마무리까지 잘하자고 약속했던 친구다. (이청용과) 같은 팀에서 뛰지 않는 게 사실 안타깝다”고 말했다.
11년 만에 부활한 쌍용시대
이청용은 그래도 같은 무대에서 뛴다는 사실만으로 즐겁다. 이청용은 구단을 통해 “(기)성용이가 K리그에 돌아와서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돌아오는)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고 들었다. 얼마나 K리그에서 활약할지 기대한다. 경기장에서 만날 날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성용은 워낙 경험이 많은 선수라 특별히 조언할 것도 없다. 새 환경에 적응 기간이 필요하지만 금세 적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쌍용이 적으로 만난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두 선수의 맞대결이 하나의 스토리가 되면서 예상치 못했던 라이벌전이 만들어졌다. 팬들은 벌써 ‘쌍용더비’라 부르고 있다. 오는 8월 30일 울산과 서울의 K리그1 18라운드가 바로 그 무대다. 기성용과 이청용은 2015년 12월 29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한 차례 맞붙었다. 당시 스완지시티 소속이던 기성용과 크리스털 팰리스에서 뛰던 이청용은 모두 후반에 교체 투입돼 0-0으로 승부를 가지리 못했다.
당시를 떠올린 기성용은 “(이)청용이와는 한 번 맞대결을 벌였는데 K리그에서 다시 부딪치는 것이 저에게는 특별한 경기가 될 것”이라며 “맞대결까지 일단 제 몸 상태(발목 부상)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당연히 출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적으로) 만나면 묘할 듯하다. (이청용은) K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팀의 리더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둘이 그라운드에서 보여줄 수 있는 좋은 활약을 펼친다면 팬들도 좋아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평소 개인의 활약보다 팀의 승리를 중시하던 이청용도 기성용과 맞대결에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청용은 “같은 팀이 아닌 상대로 만나는 것에 나도 기분이 묘하다”면서 “경기를 뛰는 선수의 수준이 높아지면 경기의 질도 올라간다. 팀과 팀의 대결이지만 서로의 자존심도 걸렸다. 승리를 위해 서로 최선을 다한다면 팬들도 즐겁게 경기를 보실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쌍용더비가 K리그 순위의 균형을 바꿀 수도 있다. 압도적인 전력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울산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긴 하지만 서울이 승리를 안고 반전할 가능성도 있다. 기성용은 “울산에는 좋은 선수들이 많아 한 단계 차원이 다른 경기를 보여준다. 특히 청용이가 뛰는 경기를 보면 선수들이 즐긴다는 느낌도 들었다”며 “서울은 선수들이 조금 소극적인데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우리 선수들이 조금 더 경기에 집중했을 때 서울도 다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민국 스포츠부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