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주식회사 스페셜액터스(Special Actors)
제작연도 2019
제작국 일본
상영시간 109분
장르 코미디
감독 우에다 신이치로
출연 오사와 카즈토, 코노 히로키, 후지 타쿠야 외
개봉 2020년 8월 6일
등급 전체 관람가

찬란
감독의 전작만 믿고 영화를 골랐다. 우에다 신이치로.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영화 포스터에도 감독의 이름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 포스터에 영화는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감독 신작. 2020. 08. 레디 액션!’
영화의 주인공 오노 카즈토(오사와 카즈토 분·대부분의 캐릭터가 실제 배우의 성만 바꿔치기했다)는 첫눈에 봐도 배우로서 자질은 꽝이다. 보는 오디션마다 낙방. 살고 있는 낡은 공동주택 월세는 밀려 있고, 그나마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던 철도경비원 직도 해고통보를 받은 상태다.
어느 날 역사에서 난투극이 일어난다. 연인에게 시비를 걸던 술 취한 남자가 연인의 남자친구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다. 겁에 질려 사건을 구경만 하던 카즈토는 시비를 걸던 남자가 자기 친동생 히로키(코노 히로키 분)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건 짜고 친 상황극이었다. ‘취객으로부터 여자친구를 구하는 영웅’이라는 사전각본에 따라 연기를 한 것.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감독의 신작
동생이 이끄는 대로 동생이 일하는 회사를 방문한 카즈토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 연기나 각본은 무대나 영화 필름을 찍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현실의, ‘리얼 월드’에서 의뢰인의 요구에 따라 사전에 정교하게 만들어진 상황극도 가능하다. 결혼식 하객이라든가 안 웃기는 코미디영화 시사회 객석에서 일반 관객으로 위장해 일부러 크게 웃으면서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건 비교적 쉬운 일이다. ‘딸이 불량한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하고 싶다’는 부모의 의뢰로 만들어진 각본은 미신에 속기 쉬운 딸이 어느 날 방문한 점쟁이로부터 ‘자신의 남자친구에 대해 불길한 예언을 듣는다’ 따위로 각색된다. 회사 이름은 스페셜액터스. 진짜 있음직한 사업아이템 아닌가.
어느 날 회사로 ‘사이비 종교단체에 빠진 언니가 상속받은 여관을 통째로 바치려고 하는데 그걸 막아달라’는 의뢰가 들어온다. 고난도 작업이다. 비용이 많이 든다. 동생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부모로부터 자신이 받은 상속금을 모두 걸었다.
작업 착수. 일단 신흥종교 집회에 위장 침투해 이들의 교리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부터 필요하다.
영화의 시작장면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주인공 카즈토가 배우 오디션을 보는 장면이다. 악당은 인질의 목에 칼을 겨누며 카즈토에게 총을 버릴 것을 요구한다. 아마도 대본상 카즈토가 연기를 요구받는 역은 형사였던 것 같다. 총을 버리자 악당은 가차없이 그에게 다가와 칼로 찌르고, 카즈토는 쓰러진다. 이 설정은 스페셜액터스가 사이비 종교단체 ‘무스비루’에 침투해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반복되는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은 성장한다. 어리바리하고 지지리도 못난 그의 연기력이 두 번째 현실에서 재연될 때는 이들의 위태위태한 상황극이 성공하는 요소가 된다.
전작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가 빛나는 것은 영화의 중반부, 영화 속 이야기 밖으로 나와 현실의 영화 제작 환경으로 카메라가 들어가면서부터다. 터닝포인트 이후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컷으로 좀비물을 찍겠다’는 아이디어가 성공하도록 어느덧 관객들마저 그 위업을 응원하게 만드는 힘, 그리고 영화의 완성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슬랩스틱이 어우러져 이야기가 완성된다. 그리고 그런 게 독립영화의 힘이다.
아이디어로 승부, 작가 정신이 빛나는 영화
비슷한 요소가 후속작인 이 영화에도 있다. 이 영화의 주제는 ‘연기’다. 개그콘서트가 없어지는 마당에 역대 ‘개콘’에 출연했던 코미디언들이 마지막 회에서 ‘개콘장례식장’에 조문 온다는 설정으로 웃음으로 승화시킨 것처럼 자신의 본래 직업으로만 먹고살기 힘든 배우들이 한판 소동극을 벌이고, 그에 따른 판단은 영화 속 관객들에게 맡기는 장면은 그 세계를 아는 사람들에겐 골계미를 안겨준다. 영화의 설정에서 ‘이건 너무 작위적이지 않나’라는 생각에 갸우뚱하게 하는 면이 있는데, 감독은 영화의 엔딩에서 이야기를 한 번 더 뒤집어 작위에 대한 비판을 의미 없게 만든다.
사실 전작과 이번 영화의 공통점이 있다면 작고한 프랑스 사회학자 보드리야르가 1991년 걸프전 TV 생중계를 보며 써먹은 개념인 ‘하이퍼 리얼’이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겐 실재와 가상의 구별은 의미가 없고, 때때로 가상이 실재보다 더 진짜같이 보이곤 한다.
영화와 현실세계, 연기와 진짜 희로애락의 구분이 사실상 의미가 없어진 세상을, 상업주의를 배격하는 아마추어리즘 방식으로 이야기의 재현을 고집하는 작가주의라고나 할까. 감독의 도전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2018)의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아쉽게도 영화가 개봉할 당시는 접하지 못했다. 그해 연말, 연례적으로 기획하던 ‘해외히트상품’ 기사를 준비하면서 일본 쪽 히트상품을 결산하는 ‘닛케이 트렌디’에 이 독립영화가 포함된 것을 알고 궁금해 영화를 찾아봤다.

유튜브 캡쳐
이 영화가 일본에서 히트상품이 된 까닭? 누가 봐도 저예산 독립영화이고, 소위 ‘자주영화’를 상영하는 작은 극장 한두 곳에서 제한 상영으로 개봉한 뒤 내릴 운명이었다. 그게 입소문을 타면서 250개관으로 상영관도 불어났고, 누적관객이 100만명이 넘는 역주행을 하면서 화제를 모았기 때문이다(생각해보니 한국도 그런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워낭소리>(2008)가 비슷한 길을 걸었지만 한국과 일본의 영화배급 상영관 시장은 매우 다르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너무 옆길로 새는 것 같아 이하 생략).
분명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은 봉준호에 1년 앞서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뒤를 잇는 애니메이션 영화의 거장이 될 것으로 보이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과는 다른 길을 걸을 것이다. 감독의 근황이 궁금해 찾아봤다. 코로나19 창궐에 맞춰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출연진들이 사상 초유의 원격으로 연기해 찍은 27분 43초짜리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지난 5월 1일 유튜브로 공개됐다. 제목은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리모트 대작전>이다. 한글자막도 있으니 궁금한 분들은 한번 찾아보시길.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