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책임지거나 사과하지 않는 부동산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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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밑그림을 그린 인사입니다. 부동산을 바라보는 김 전 실장의 시각은 2011년 출간된 그의 저서 <부동산은 끝났다>에 담겨 있습니다. 김 실장이 책에서 제시한 이상적인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내 집이 아니어도 편히 살 수 있는 주거환경’입니다. 쉽게 말해 자가 소유 주택을 고집할 게 아니라 임대주택 거주율을 높이자는 겁니다. 김 전 실장은 ‘내 집이 최선이고 공공임대주택은 차선이며 민간 임대는 최악’이라는 구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김 전 실장의 구상은 2017년 부동산 정책에서 구현됩니다. 정부는 다주택자들에게 재산세와 양도세 감면, 종부세 면제 혜택을 줄 테니 임대사업자로 등록할 것을 권합니다. 정부의 권고대로 다주택자들은 대거 임대사업자 등록에 나섭니다. 2016년 말 20만 명에 불과하던 임대사업자는 52만여 명으로 증가했고, 등록한 임대주택은 159만 호로 두 배로 늘었습니다.

그런데 임대사업자 독려는 결과적으로 정부의 자충수가 됐습니다. 임대사업자가 부동산값 폭등을 부른 원흉으로 꼽힙니다. 물론 김 전 실장이 이런 부작용을 알면서 무리수를 두었을 리 없습니다. 그의 정책 실험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변수들로 인해 실패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정책 실패는 의도치 않는 결과입니다.

그럼에도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시장에서 나타나는 이상 징후에 대해 정부는 수차례나 ‘문제없다’라고 답했습니다. 보유세 강화와 같은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시민사회·학계의 조언도 듣지 않았습니다. 총선을 앞두고는 여당 후보들이 나서 종부세 완화를 운운하며 투기 심리를 자극했습니다. 오히려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는 시민단체와 날을 세워 공방을 벌였습니다. 임대사업자 혜택 소급 적용을 두고는 자꾸만 말이 바뀝니다. 지지율이 하락하자 지켜내겠다던 그린벨트도 해제한다고 합니다. 이제는 정부의 부동산 철학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모두가 부동산으로 인해 우울하고 혼란스럽습니다. 그런데 왜 누구도 이 사달이 난 것에 대해 책임지거나 사과하지 않는 걸까요.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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