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시즌 메이저리그 개막이 결정됐다. 시즌 개막 여부를 두고 양쪽이 모두 협상 결렬을 선언한 가운데 결국 일종의 강제조정이 이뤄졌다.
시즌이 열리기는 하지만, 경기 수가 60경기밖에 되지 않는다. 전통주의자 입장에서 보면 ‘이게 무슨 야구냐’ 싶은 수준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시즌을 치르려다 보니 이상한 규칙과 규정들이 더해졌다. 지금까지의 야구와는 완전히 다른 야구, 앨리스도 울고 갈 ‘이상한 나라의 야구’다.

미국 메이저리그(MLB) 텍사스 레인저스의 새 홈구장 글로브 라이프 필드 전경 / USA투데이연합뉴스
지난 7월 7일 2020시즌 일정이 발표됐다. 오는 7월 24일 열리는 개막전은 뉴욕 양키스와 워싱턴, LA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의 대결이다. 나머지 팀들은 25일 일제히 개막 경기를 치른다. 코로나19 때문에 선수들의 이동을 제한했고, 경기를 펼치는 상대팀의 범위를 최소화했다. 동부·중부·서부 등 같은 지구의 팀끼리만 경기를 치른다. 같은 내셔널리그라도 서부의 다저스가 동부의 뉴욕 메츠와 경기를 치르는 일이 없다. 다른 리그 팀과의 경기도 같은 지구끼리만 붙는다.
김광현이 뛰는 세인트루이스는 이른바 ‘개꿀 일정’을 받았다. 세인트루이스를 담당하는 <디어슬레틱>의 마크 색슨은 일정 발표 직후 트위터를 통해 “세인트루이스가 전체 60경기 중 9경기를 디트로이트·캔자스시티와 치른다”고 전했다. 전체 일정의 15%에 해당한다.
전체 60경기 상대 팀따라 희비 교차
아메리칸리그의 두 팀은 리그 최약체 수준이다. 디트로이트와 캔자스시티는 지난해 합해서 217패를 당했다. 디트로이트는 47승 114패, 캔자스시티는 59승 103패 팀이다. 두 팀 모두 탱킹 및 리빌딩 중이어서 지난겨울에도 전력보강이 뚜렷하지 않았다.
반면 시애틀은 불리한 일정표를 받아들었다. 같은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의 휴스턴·오클랜드가 강한데다 LA 에인절스와 텍사스는 겨울에 탄탄한 전력보강을 했다. 자주 붙어야 하는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에는 다저스가 버티고 있다. MLB.com은 ‘이번 일정에서 가장 불리한 팀이 시애틀’이라고 전했다.
60경기짜리 시즌은 또 다른 이상한 문제도 일으킨다. 이번 시즌은 7월 24일 시작해 9월 28일이면 모두 끝난다.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부상이다. 6주짜리 햄스트링이나 복사근 부상을 당하면 사실상 시즌 아웃이나 다름없다.
야구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인 ‘기록’도 이상한 나라의 기록으로 바뀐다. 162경기 대비 경기 수가 37% 수준이기 때문에 개인 타이틀 1위 기록이 낯설어진다. 지난해 홈런왕은 뉴욕 메츠의 신인 피트 알론소로 53홈런을 때렸다. 37%를 계산하면 20홈런만 때려도 홈런왕에 도전해 볼 만한 숫자가 된다. MLB.com은 60경기 시즌에 과연 로널드 아쿠냐 주니어(애틀랜타)가 20(홈런)-20(도루) 기록을 세울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고 전했다. 144경기 시즌으로 따지면 50-50이나 다름없는 대기록이다.
경기 수가 줄어드니까 타율과 같은 비율 기록에서 ‘아웃라이어’가 기대된다. ESPN에 따르면 개막 뒤 60경기로 끊었을 때 4할을 기록했던 마지막 타자는 2008년 치퍼 존스(애틀랜타)였다. 이후 한 번도 없었고, 최근 10년간 60경기 기준 가장 타율이 높았던 타자는 LA 다저스의 코디 벨린저가 지난해 기록한 0.376이다. 4할 타자는 여전히 쉽지 않지만, 경기 수가 줄어들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확률의 세계에서 ‘큰 수의 법칙’은 아주 힘이 세서 작은 수로 바뀌었을 때 ‘이변’이 벌어지기도 한다.
6승 또는 7승이면 다승왕 가능
투수들의 기록도 이상해진다. 토론토 에이스 류현진의 등판 기회는 많아야 12번이다. 60경기 동안 로테이션을 한 번도 거르지 않아야 한다. 투수의 승리 기록은 혼자 잘 던진다고 되는 게 아니다. 타자들이 잘 치고 수비가 뒷받침돼야 한다. ESPN의 데이비드 쇤필드는 리그 다승왕이 되기 위해 필요한 승수를 6승 또는 7승으로 계산했다. 60경기 시즌, 감독들은 보다 빠른 투수 교체를 할 가능성이 높고, 선발투수가 승리를 따낼 확률은 더욱 줄어든다. 어쩌면 류현진이 7승 1패, 평균자책 1.35로 다승왕과 평균자책을 모두 따낼지도 모른다.
류현진은 지난해 다저스에서 뛸 때 60경기 동안 평균자책이 1.35였다. 어쩌면 뉴욕 메츠의 에이스이면서 불운의 아이콘인 제이콥 디그롬이 더욱 이상한 기록을 세울지도 모른다. 온라인에서는 ‘디그롬이 1승 3패, 평균자책 0.86으로 3년 연속 사이영상을 따낼 것’이라는 농담이 떠돈다.
다저스는 지난해 100승을 넘게 올리고도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60경기 시즌에는 가을야구를 위해 몇 승이나 필요할까. ESPN은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한 필요 승수로 약 33승을 점쳤다. 33승 27패일 경우 승률 0.550이다. 순위 싸움이 치열해진다면 31승 29패로도 가을야구에 오를 수 있을지 모른다. 31승의 가을야구는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다.
60경기 미니시즌, 경기 규칙도 많이 바뀌었다.
내셔널리그에도 지명타자가 도입된다. 타석에 나설 것에 대비해 김광현은 팀 동료 최정의 방망이를 받아왔는데 쓸 일이 없어졌다. 내셔널리그의 지명타자는 사상 최초의 일이다. 연장 승부치기도 도입된다. 연장전 대신 승부치기로 승부를 가린다. 기존 아마추어 룰과는 조금 달라서 9회까지 동점일 경우 10회 공격 때는 무사 2루 상태에서 경기를 시작한다. 10회 공격이 6번 타자부터 시작이라면 5번 타자가 2루에 나가는 식이다. 물론 교체를 통해 대주자를 쓸 수 있다. 무사 2루 시작 상황이 투수의 평균자책점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기록 유지를 위해 2루 주자는 ‘실책’으로 출루한 것으로 계산한다. 2루 주자가 홈을 밟을 경우 ‘비자책’이 된다. 원래 도입하기로 예정된 ‘최소 3타자 상대 룰’은 그대로 시행된다. 선발이든, 불펜이든 마운드에 올라오면 최소 3타자를 상대하거나 이닝을 끝내야 교체가 가능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의 가장 극적인 규칙 변화는 ‘몸싸움 금지’다. 메이저리그는 불문율을 바탕으로, 벤치 클리어링이 비교적 잦고 거친 리그다. 존중하지 않으면 주먹으로 갚는 게 합의된 규칙이다. 최소한 이번 시즌 몸싸움은 엄격하게 금지된다. 감독이 심판에게 항의할 때도 2m 거리 두기를 지켜야 한다.
<이용균 스포츠부 기자 nod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