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근한 턱수염과 덥수룩한 외모는 친근한 동네 형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 안에는 승리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선수단을 완벽하게 장악하는 카리스마가 담겨 있다. ‘비틀스의 도시’ 리버풀에 온 지 올해로 5년째. 비틀스 못지않게 리버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된 이 사람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리버풀의 위르겐 클롭 감독(53)이다.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 /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6월 26일 2위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가 첼시에 1-2로 패하면서 리버풀은 남은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1990년 이후 30년 만이자, EPL이 출범한 1992년 이후 첫 우승이다.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리버풀의 지독한 저주를 깬 주인공은 다름 아닌 클롭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주름잡기 이전, 영국 축구를 상징하는 팀은 리버풀이었다. 1892년 창단해 12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리버풀은 한때 영국 축구계를 지배했다. 빌 생클리, 밥 페이즐리, 케니 달글리시, 스티븐 제라드 등 리버풀 하면 떠오르는 역사적인 인물들이 많다.
리버풀에 30년 만에 우승컵 안겨
1989~1990시즌 통산 18번째 리그 우승을 끝으로, 리버풀은 변방으로 밀려났다. 1992년 EPL이 출범한 뒤로는 더욱 그렇다. 영국 축구는 막강한 재력을 자랑하는 맨시티나 맨유, 첼시 같은 팀들이 더 주목받고 있다.
2010년대에도 리버풀의 위상은 회복되지 않았다. 2012~2013시즌 리버풀은 리그 7위였다. 제라드의 마지막 시즌인 2013~2014시즌에는 2위로 마쳤으나 그다음 시즌에는 다시 6위로 떨어졌다.
클롭은 리버풀에 ‘갑자기’ 나타난 구세주는 아니었다. 사실 그 전부터 그는 유럽 전역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선수로는 눈에 띄는 성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감독으로서는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마인츠05와 도르트문트의 사령탑을 맡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며 주목을 받았다. 도르트문트 감독을 맡은 2010~2011, 2011~2012시즌에는 분데스리가 2연패를 달성하며 바이에른 뮌헨이 지배하던 분데스리가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게겐 프레싱’으로 대표되는, 최전방부터 강렬한 압박을 통해 볼을 뺏은 뒤 신속한 역습으로 전환하는 클롭의 축구 스타일을 두고 팬들은 격렬한 ‘헤비메탈’ 음악에 비유하기도 했다.
2014~2015시즌을 끝으로 도르트문트 감독에서 물러난 클롭은 긴 휴식을 원했다. 그러나 세상은 비범한 그의 재능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빅클럽들이 클롭에게 달려들었는데, 클롭은 제안을 전부 거절했다. 딱 한 팀, 리버풀의 제안만큼은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평소 리버풀에 상당한 관심을 보여왔던 클롭은 짧은 휴식을 뒤로하고 2015년 리버풀 감독으로 부임했다. 클롭은 제안을 수락한 이유에 대해 “(제의를 해온) 부자 구단들은 축구가 아닌 상업적인 면에 더 많은 신경을 쓰는 것 같다. 리버풀은 달랐다”고 했다.
클롭의 리버풀 감독 부임은 역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가진다. 영국과 독일은 역사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다. 축구 종주국을 자부하는 영국은 자국 리그에 독일인 감독이 오는 것을 싫어한다. 클롭은 2014년 2월부터 12월까지 풀럼 감독을 지냈던 펠릭스 마가트에 이어 역대 2번째로 EPL팀을 지휘하는 독일인 감독이 됐다. 이방인은 도전자가 됐다.
부임 첫 시즌인 2015~2016시즌 리버풀은 리그 8위에 그쳤다. 그다음 두 시즌은 내리 4위였다. 발전은 하고 있었지만, 그 속도가 더뎠다. 타팀 팬들, 영국 언론은 클롭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선수 못지않은 열정적인 골 세리머니
클롭은 흔들리지 않았다. 온갖 조롱과 비난들은 자신이 앞장서서 맞았다. 이런 지휘관을 본 선수들의 신뢰와 사기는 가면 갈수록 높아졌다. 지난 시즌, 클롭은 그동안 수모에 가깝게 받았던 조롱과 비난을 단숨에 잠재웠다. 리버풀은 30승 7무 1패, 승점 97점이라는 무시무시한 성적으로 리그 2위에 올랐다. 1위 맨시티와 승점 차는 단 1점. 우승했어도 이상하지 않은 성적이었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는 토트넘을 꺾고 14년 만에 빅 이어(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시즌 후 UEFA 슈퍼컵과 클럽월드컵 우승까지 거머쥐며 트로피에 목말라 있던 리버풀에 기쁨을 선사했다. 이번 시즌, 리버풀 팬들이 오랜 기간 기다렸던 리그 우승 트로피를 가져왔다.
클롭은 평소 경기 중엔 다혈질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다가도, 골이 들어가면 마치 어린아이처럼 기쁨을 주체 못 하고 벤치 주변을 뛰어다닌다. 판정이 이상하면 심판에게 거칠게 항의하는 장면도 종종 보인다. 그러나 경기를 준비하는 자세는 차갑다. 도르트문트 감독 시절 고안해낸 게겐 프레싱이 전술의 토대지만, 리버풀 감독으로 부임한 뒤에는 상대에 맞춰 부분적인 변화도 가져가는 유연함도 생겼다. 리버풀 감독 부임 후의 클롭은 사자왕 리처드의 용맹함과 나폴레옹의 유연한 전략적 사고를 두루 갖춘 진정한 명장이 됐다.
그는 경기에 지더라도 절대 선수 탓을 안 하는 덕장이기도 하다. 2부 리그를 전전하는 선수였던 그는 선수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릴 줄 안다. ‘감독에게 비판을 들을 수는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 비판을 들으면 안 된다’는 것이 클롭의 철칙이다. 그렇다고 선수들이 풀어지게 놔두는 것도 아니다. 대표적인 일화가 바로 로키 발보아 언급이다. 클롭은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사기와 동기부여를 불어넣기 위해 종종 영화 <로키>를 언급한다. 리버풀을 주인공 로키 발보아에 비유하고 상대를 이반 드라고 같은 강한 악역으로 표현한다. 리버풀을 도전자의 입장으로 몰고 상대를 챔피언에 비유하며 그만큼 노력해야 이길 수 있다는 뜻을 쉼 없이 전달한다. 심리 파악의 대가인 그는 방심이라는 단어를 제일 싫어한다.
클롭은 지난해 12월 리버풀과 2024년까지 재계약을 체결했다. 평소 클롭은 리버풀이 자신의 마지막 클럽이었으면 한다는 뜻을 드러냈다. 2015년 리버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클롭은 자신을 ‘노멀 원(Normal One)’이라고 평가했다. 특별하지 않고 평범한 것을 좋아하는 그의 성격이 잘 묻어나 있다. 하지만 리버풀 팬들은 이미 그가 리버풀의 ‘그레이트 원(Great One)’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윤은용 스포츠부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