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소비자와 적극적 관계 맺기 ‘요가복의 샤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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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평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룰루레몬(lululemon) 플래그십스토어를 방문했다. 손님은 대부분 20대부터 60대까지의 여성들이었다. 하나같이 즐거운 표정으로 선반을 탐색하고 있었고, 매장 안쪽 탈의실 앞에선 두 명의 여성이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여러 원단으로 제작된 하의를 입어 보며 비교 분석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켜보던 직원은 원단에 대해 설명하면서 손님의 체형에 가장 잘 맞는 옷이라고 엄지를 세워 보였다.

경기 성남시에 있는 룰루레몬 매장의 모습/룰루레몬 홈페이지

경기 성남시에 있는 룰루레몬 매장의 모습/룰루레몬 홈페이지

손님은 게스트, 직원은 에듀케이터

매장 입구에선 한 직원이 세 명의 여성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날 저녁 지하에서 열리는 요가 수업에 참여하러 온 그들은 부쩍 더워진 날씨 때문에 땀 배출이 잘 되는 소재의 의류를 보고 싶다고 했다. 룰루레몬에서는 손님을 게스트로, 직원은 에듀케이터로 부른다. 에듀케이터들은 단순히 쇼핑 도우미 역할을 자처하는 것이 아니라 게스트들에게 제품에 대해 알려주고 가장 잘 어울릴 만한 옷을 골라준다. 실제로 필자가 선물할 요가복을 사려고 들렀을 때는 선물 받을 사람의 체형을 물어보더니 가장 비슷한 체형의 에듀케이터가 대신 옷을 입어가며 사이즈를 비교해 주었다.

언뜻 보면 그저 평범한 가게일 뿐이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면 달라진다. 친한 친구들과 사교모임을 하는 커뮤니티 같다. 손님들은 쇼핑이 주목적이 아니고 직원들은 판매가 주목적이 아니었다. 그들 모두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데 더욱 신경을 쓰고 있는 듯 보였다. 사실 대다수가 이미 룰루레몬의 타이츠와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누가 직원인지 손님인지 구분하기도 힘들었다.

룰루레몬은 21세기 가장 ‘핫’한 프리미엄 기능성 스포츠웨어 브랜드다. 1998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설립된 룰루레몬은 2000년 요가용품을 판매하는 첫 가게를 연 뒤 2019년에는 전 세계 486개 지점에서 연매출 39억8000만 달러(약 4조7879억원)를 벌어들일 정도로 급성장했다. 요가 바지를 10만원이 훌쩍 뛰어넘는 가격에 팔고 있는데도 날개 돋친 듯 팔린다. 이 때문에 ‘요가복 업계의 샤넬’이란 별명도 생겼다. 이런 룰루레몬의 인기 비결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룰루레몬은 소비자들에게 요가복을 판매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요가를 배우면서 내면을 채우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고, 이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격려한다. 룰루레몬의 쇼핑백에는 ‘매일 한 가지씩 새로운 것에 도전하라’, ‘도전이라는 단어가 의지를 바꾸고 마법을 일으킨다’ 같은 그들의 비전 선언문이 적혀 있다. 이런 노력에 대해 소비자들은 제품 구매로 화답했다. 2017년 룰루레몬은 단위 면적당 매출액이 다섯 번째로 높은 기업으로 선정되었다.

사실 이런 의도만으로 룰루레몬이 고객의 충성심을 얻은 것은 아니다. 매장에서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전략적인 방법도 빼놓을 수 없다. 룰루레몬은 매달 다양한 강좌를 개설한다. 요가뿐 아니라 현대무용·퍼포먼스 트레이닝·러닝·하이킹·필라테스 등의 강좌도 포함된다. 매장을 체험공간으로 활용해 무료로 진행한다. 그리고 이들은 새로운 매장을 열기 1년 전부터 무료강좌를 진행할 ‘커뮤니티 대사’를 임명한다. 대사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무료강좌를 진행하는 대신 각종 할인 혜택을 받고 룰루레몬 웹사이트와 매장 등에서 자신들의 강습 프로그램을 홍보할 수 있는 권한을 받는다.

룰루레몬의 이러한 마케팅을 보면서 ‘고객관계관리(CRM) 마케팅’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룰루레몬은 일반적으로 고객 충성도를 높이려 쓰이는 다수의 프로모션이나 이벤트를 진행하지 않고, 광고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제품 태그나 포장을 뜯으면 교환·환불이 안 되는 엄격한 정책을 유지한다. 인기 상품은 제한적으로 생산하면서 신제품 교체 주기를 짧게 유지해 재고가 있을 때 반드시 사야 한다는 불안감을 조성시키기도 한다. 할인 행사는 거의 하지 않지만 재고가 많이 남는 비인기 제품만 할인해 판매한다. 언뜻 봐선 불친절하고 오만해 보이는 면도 있는 브랜드인 셈이다.

시대를 앞서간 고객에 대한 접근법

또 2013년에는 불량 요가복 리콜 사태로 6000만 달러에 이르는 손해를 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부 소비자는 매장에서 요가복을 입고 몸을 구부렸을 때 속이 비치는지 살펴보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러나 룰루레몬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기능성 스포츠웨어의 신흥강자로 거듭나고 있다. 소비자들이 여전히 룰루레몬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룰루레몬이 기업 시작부터 표방한 경영 원칙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어서 에듀케이터들은 매장을 방문한 손님을 두 팔 벌려 환영한다. 반갑게 다가오는 이들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한편 룰루레몬의 이러한 성공 비결은 시대의 변화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시대가 바뀌며 소비자들이 제품을 사는 경로 역시 달라진 것이다. 필립 코틀러가 제시한 ‘5A(인지·호감·질문·행동·옹호) 이론’은 앞서 나왔던 이론들처럼 기업의 적극적인 광고·홍보 활동이 소비자 행동을 유도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기업의 관점 대신 소비자들이 서로 적극적으로 관계 속에서 묻고 답하며 제품을 스스로 이해하는 소비자 중심의 관점을 제시했다. 요컨대 최근의 소비자는 비록 기업의 광고에 수동적으로 노출되었더라도 스스로 그 메시지를 처리하면서 호감과 거부감을 표현하는 능동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이 나온 배경에 시장을 움직이는 힘이 기업에서 소비자로 이양되어온 변화가 있다. 오늘날의 소비자는 더 이상 기업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 있지 않고 소비자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이나 가까운 주변 사람들의 입소문, 독립적인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개인적인 기호를 드러낸다. 게다가 그저 필요하니까 제품을 사는 대신 자신의 삶과 가치관을 나타내는 척도이자 아이템으로 삼기 위해 소비한다. 다양한 아이템을 써서 자신의 센스를 돋보이게끔 하는, 일종의 편집권을 행사하는 셈이다.

그래서 요즘은 수많은 기업이 소비자와 동등한 친구 자격에서 대화하기 위해 매력을 높이는 데 신경을 쓴다. 구매 이후에도 이어지는 사용 경험을 개선하려는 참여 프로그램을 확대하거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다양한 캠페인을 전개하는 식이다. 그런데 룰루레몬은 시대를 앞서서 창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러한 접근법을 고수해왔다. 물론 그 덕에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선 것이겠지만, 룰루레몬 역시 성공신화를 이어가려면 언제나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음가짐을 지녀야 할 것이다.

<김도환 브랜드 디렉터·㈜도빗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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