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초반부터 기본소득 이슈가 달아오르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에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 역사상 처음으로 나라가 주는 돈으로 가족이 고기 회식도 하고, 소소한 ‘탕진잼’을 누리는 행복감을 체험하면서 그리 터무니없는 정책만은 아니라는 구체적 상상을 하게 되었다. 여론조사 결과 기본소득에 대한 찬성이 반대보다 높게 나오기도 했다.(6월 5일 리얼미터 조사, 찬성 48.6% 반대 42.8%,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
문제는 재원이다. 나라가 국민에게 뭐라도 주는 건 당연히 좋은 일이다. 재원이 있고, 형평에 맞고, 부작용보다는 순기능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충족된다면 말이다. 모든 국민에게 매달 지속적으로 기본소득을 주려면 얼마나 들까. 18세 이상 국민에게 다달이 일인당 50만원쯤 주려면 연간 300조원 정도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2020년 국가예산이 512조원이니 나라 연간 예산의 58% 정도 되는 돈이 추가로 마련되어야 한다.
그 방편으로 논의해볼 만한 것으로 국토보유세·탄소세·데이터세·로봇세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 가운데 한 예로 로봇세를 보자. 이미 2017년 빌 게이츠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 이사장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로봇에는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그런데 이보다 먼저 2016년 유럽의회는 로봇세를 통과시킨 바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로봇에게 ‘인격’을 부여하기도 했다. 타계한 명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한 2000년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이 연상되는가?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개념은 별로 공상과학적인 것도 아니다.
지금은 너무 당연시되는 법인세란 무엇인가? 사람이 모인 집단인 조직, 즉 기업에 법적으로 인격(법인격이라고 한다)을 부여하여 세금을 내는 주체로 인정한 것이다. 이미 지지난 세기에 <자본론>을 쓴 마르크스는 산업혁명을 관찰하면서 ‘동력을 가지고 기계를 만드는 기계’가 인간노동을 단순화시키고 전락시켜 잉여가치를 착취당하게 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정치권에서 기본소득을 차기 대권의 핵심 이슈로 띄우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이 논제는 이미 지난 미국 대선 경선에서 민주당 주자로 나섰던 앤드루 양이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는 이를 보편적 기본소득 UBI(Universal Basic Income) 사상이라고 칭했다. 그리고 비트코인으로 지급하는 것이 좋겠다고,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모바일 투표를 하자는 제안도 내놓았다. 18세 이상 미국국민 모두에게 월 1000달러씩 주는데 구글·페이스북·아마존·애플 등 신흥 ICT 기업들로부터 재원을 걷겠다고 했다.
우리나라를 포함, 세계의 진보정당들이 전통적으로 주장해온 기본소득 개념에 이제 인공지능과 로봇, 신기술에 일자리를 빼앗기는 노동자를 위한 선순환의 제도가 논의되어야 하는 시점에 왔다. 이 논의는 포퓰리즘이 아니다. 우리의 미래다.
<최영일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 이사·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