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라스트 1마일’을 만들 수 있을까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여섯 개 바퀴 위에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얹어놓은 것 같은 배달로봇이 영국의 소도시 밀턴킨스를 돌아다닌다. 시속 6.4㎞의 속도로 스스로 주행하며 음식과 식료품 등을 고객에게 전달한다. 미국의 IT업체 스타십(Starship)이 이 도시에 ‘자율주행 배달로봇’ 서비스를 시작한 건 2년 전의 일이다. “처음 로봇을 본 건 집 앞이었어요. 커브 길에서 로봇이 끼어서 꼼짝도 못 하고 있었죠.” 배달로봇의 첫인상을 묻는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이곳 주민인 리스 페이지가 이렇게 말했다. “귀엽지만 쓸모없는 녀석이라고 생각했어요.”

페덱스, 스타십, 도이체 포스트(왼쪽부터)의 배송로봇들/각사 인스타그램

페덱스, 스타십, 도이체 포스트(왼쪽부터)의 배송로봇들/각사 인스타그램

지난 4월 코로나19가 확산되자 보건당국은 천식을 앓고 있는 리스 페이지에게 자가격리를 권했다. 이제 그는 스마트폰에 설치된 스타십앱을 통해 근처에 있는 마트 쿱이나 테스코에서 음식과 생필품 등을 주문한다. 코로나19 전까지만 해도 ‘쓸모없던’ 로봇이 봉쇄된 도시에서 그와 바깥세상을 이어주고 있다. 밀턴킨스에선 서비스가 시작된 이후 가장 많은 수요가 몰리고 있다. 스타십은 밀턴킨스에 배치된 배달로봇을 80대에서 100대로 늘리겠다고 했다.

우편·물류 업체들에 ‘라스트 1마일’은 게임의 ‘최종 보스’ 같은 구간이다. 자동화가 상당히 진행된 다른 구간과 달리 ‘최종 소비자에게 제품을 배송하는 마지막 단계’인 라스트 1마일은 언제나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간 라스트 1마일을 노동자의 몫에서 로봇의 몫으로 바꾸기 위한 시도가 다양하게 진행됐다. 온라인 상거래업체 아마존은 배달로봇 ‘스카우트’를 제작해 미국의 일부 도시와 대학 캠퍼스에서 운행했고, 운송업체 페덱스는 배달로봇 ‘세임데이봇’을 제작했다. 스위스의 우편공기업 스위스 포스트도 2016년 스타십의 배달로봇을 우편배달용으로 시험 사용하기도 했다. 독일의 도이체 포스트는 택배우편물을 싣고 집배원을 따라다니며 배달 보조 역할을 하는 ‘추종로봇(포스트봇)’을 개발해 독일의 바트헤르스펠트 지역에서 시험 운행했다. 하지만 배달로봇은 배달할 수 있는 크기가 제한돼 있고, 받는 사람이 부재중이거나, 운행 중 쓰러지거나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직원이 출동해야 한다. 사람들이 로봇에 반감을 갖는 것도 문제였다. 하지만 몇 년간은 더 버틸 것이라고 여겨졌던 ‘라스트 1마일’의 벽이 코로나19로 빠르게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접촉 없는’ 언택트가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됐다.

우정사업본부도 언택트 시대를 맞아 5G와 인공지능 기술 등을 활용한 로봇들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우정사업본부는 자율주행하는 이동형 우체국 차량을 개발해 등기나 택배 우편물 등을 고객이 지정한 시간에 지정한 장소에서 접수할 수 있도록 하고, 우편물 배달로봇을 만들어 대학 캠퍼스나 아파트단지에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 독일처럼 집배원의 배달을 돕는 추종로봇도 도입할 계획이다. 빠르면 올해 10월부터 시범서비스를 실시하고, 2021년 말 완료될 예정이다.

‘라스트 1마일’의 기술적 문제는 해결될 테지만, 노동의 문제는 여전히 난제다. ‘로봇이 인간을 얼마나 대체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기술’의 영역이 아니라 ‘설계’의 영역이다. 로봇을 활용하면 집배원의 업무 부담을 줄이면서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배달 로봇이 집배노동자를 완전히 대체할 수도 있다. 박종석 우정사업본부장은 “신기술이 적용된 물류 자동화와 효율화를 통해 집배원의 업무 경감 및 안전사고 예방 등 노동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지금 그 설계도를 그리는 중이다.

<이재덕 뉴콘텐츠팀 기자 duk@kyunghyang.com>

우정이야기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