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어묵에 대한 ‘생각의 틀’을 바꾼 차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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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묵은 보통 흰살생선 등을 뼈째 잘게 으깬 뒤 약간의 밀가루를 넣고 묵처럼 뭉쳐 익힌 음식을 지칭한다. 대개 튀기거나 삶아서 익힌다. 국내에선 요리를 가리키기도 하고, 그 요리에 쓰이는 재료를 가리키기도 한다. 조선 숙종 45년인 1719년에 궁중 잔치에 관해 기록한 <진연의궤> ‘생선숙편’ 등에서 오늘날의 어묵과 유사한 찬품을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역사가 짧지는 않다. 더 오랜 기원을 쫓다 보면 중국에서 기원전 3세기에 진시황이 먹던 어환(魚丸)의 기록이 있고, 나라마다 오래전부터 어묵과 유사한 형태의 음식은 존재해 왔다.

베이커리 형태로 꾸민 삼진어묵 매장 내부의 모습 / 삼진어묵 홈페이지

베이커리 형태로 꾸민 삼진어묵 매장 내부의 모습 / 삼진어묵 홈페이지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어묵이 처음 개발된 곳은 일본이기도 해서 본격적으로 한국에 어묵이 보급된 시기를 일제 강점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일본의 어묵 ‘가마보코’는 15세기 무렵 물고기 살을 으깬 뒤 대나무 꼬치 끝에 꽂아 숯불로 구운 형태가 기원이다. 그 모양이 부들의 열매이삭과 비슷한데, 창(矛)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본에서 어묵 제조법 배워온 창업주

그렇다면 국내에서 어묵공장이 처음으로 들어선 곳은 어디일까? 바로 부산이다. 부산어묵의 역사는 1910년 개장한 전국 최초 공설시장인 부산 중구 부평동시장에 자리 잡았던 동광식품과 함께 시작했다. 이후 동광식품에서 어묵 제조법을 배운 이들이 하나둘 가게 문을 열면서 부산 일대에 본격적으로 어묵공장들이 들어서게 된다.

그런데 일찌감치 ‘어묵의 성지’로 자리 잡은 부산 출신 어묵 브랜드 중 현재 가장 유명한 브랜드는 이들 ‘원조’ 어묵공장들이 아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삼진어묵’이 있기 때문이다. 2012년 40억원이던 삼진어묵의 연매출은 2013년 오래된 본사 공장을 개조해 1층에 어묵 베이커리를 개설한 이후 82억원으로 두 배 이상 뛰었다. 2014년 9월 부산역에 개설한 지점은 전국의 철도역에 입점한 940여 개 매장 중 부동의 1위였던 대전 성심당을 제치고 매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2018년 920억원, 지난해 980억원에 이르기까지 경이적으로 매출을 늘려온 삼진어묵의 인기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1950년 일본에서 어묵 제조법을 배워온 고 박재덕 창업주는 부산 영도구 봉래시장에서 어묵공장을 시작했다. 판잣집을 빌려 개조한 공장을 운영하다가 3년 뒤 ‘삼진식품’이라는 간판을 정식으로 달았다. 이후 1986년 2대 박종수 전 대표가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부산에 뿌리를 내린 삼진어묵은 2011년 3대인 박용준 대표가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어묵 브랜드로 성장했다. 미국 뉴욕에서 회계사 준비를 하다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병으로 한국에 돌아온 박용준 대표는 이제 해외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삼진어묵이 차별화시킨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로 어묵에 대한 관점과 인식을 차별화했다. 한때는 삼진어묵도 ‘부산어묵’ 상표로 어묵을 판매하면서 어묵을 상징하는 도시의 이미지에만 기댄 제조사에 불과했다. 그러나 삼진어묵은 부산어묵 브랜드를 버리는 한편 어묵을 비위생적으로 만든다는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는 데도 앞장섰다. 새로 설립한 공장엔 HACCP 인증에 가장 적합한 설비를 갖추고 자동화를 실현했다. 비위생적인 생산 환경에서 저품질의 생선과 다량의 밀가루, 각종 합성첨가물을 넣어 만든 어묵과 품질에서 차별성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면서 소비자에게 대형마트나 슈퍼마켓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어묵 제품과 달리 ‘삼진어묵=부산에서 만든 진짜 어묵’이라는 인식을 심었다.

두 번째 차별화한 대상은 바로 경쟁사였다. 이들은 어묵에 ‘베이커리’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그래서 이들이 경쟁하는 상대는 어묵을 판매하는 회사가 아니라 빵과 과자, 각종 디저트를 파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베이커리가 되었다. 베이커리에서 빵을 구워내듯 이들 또한 어묵 베이커리에서 매일 어묵을 튀겨낸다. 그러면서 어묵의 모양도 다양하게 하고 새로운 상품도 연이어 출시했다. 들어가는 원재료 또한 한정적이었던 단점을 극복하고 콩·단호박·고구마·연근·파프리카·치즈 등 다양한 재료를 섞어 만든 80여 종의 어묵을 출시했다. 이들의 최고 히트 상품인 어묵 고로케는 한때 하루 4만 개 넘게 팔려나갔다.

다양한 재료 섞어 만든 80여 종 제품들

이 두 가지의 차별화를 통해 삼진어묵은 새로운 니치 마켓을 열었다. 삼진어묵이 주목받기 시작하던 2013년 어묵 제조업체는 대기업을 포함해 60여 곳이 있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점유율이 전체의 70%가 넘고, 이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의 작은 기업이 도전적인 변화를 시도할 엄두를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삼진어묵은 관점을 바꾸고 경쟁상대를 바꾸는 한편, 어묵을 디저트처럼 즐기는 패턴을 소비자에게 제안함으로써 다른 길을 만든 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삼진어묵의 차별화는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에 급급하지 않고 자신의 강점을 더욱 돋보이게끔 노력하는 모습에 있다. ‘생각의 틀’을 바꾸는 것이 차별화의 본질이라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대부분의 업체는 새로운 상품이나 인테리어 등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영역부터 차별화를 위한 구상을 시작한다. 여기에 가격까지 차별화의 주요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저마다 내놓은 차별화 방안이 시장에 모이면 결과적으로 모두가 획일화되어 버리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다양성은 사라지고 각자의 개성도 잠식되고 만다. 결국 치열한 경쟁만 남아 그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게 만든다.

물론 삼진어묵에도 위기는 있었다. 특히 2017년 한 백화점 매장에서 변질된 어묵을 수돗물에 씻어 팔았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곤욕을 치른 일이 대표적이다. 어묵은 변질이 쉬운 제품이라 HACCP 의무적용품목 중 하나다. 또 매장에서 낱개로 판매하는 경우 이미 튀겨진 완제품일지라도 반드시 다시 튀겨 판매해야 하는 등 식품위생법의 적용도 까다롭다. 이러한 문제는 회사는 성장하는데 옛날 악습은 그대로 남아 생긴 결과였다. 이후 이들은 시스템을 전부 매뉴얼화하고 매장마다 CCTV를 설치하는 등 위생환경 개선에 집중했다. 또한 당시 해당 제품을 구입한 모든 소비자를 대상으로 보상 절차를 진행했다.

삼진어묵을 성공한 브랜드의 사례로 보기엔 다소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 67년이라는 긴 역사를 바탕으로 가파른 매출 상승, 해외 시장 진출 등 순항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다른 유명 브랜드에 비해 눈에 띄는 점이 있을까 의문을 품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삼진어묵은 ‘차별화’의 의미를 깊이 고민한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단순히 기능과 의미를 부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생각의 틀을 짠 뒤 그것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버릴 수 있는 것을 버리면서 자신이 집중해야 할 것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당장의 기록적인 매출 신장 결과만 봐도, 그것이 브랜드 지표의 모든 것이 될 순 없지만 어쨌든 많은 소비자가 찾는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김도환 브랜드 디렉터·㈜도빗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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