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에 깃든 악령, 퇴치를 위한 사투
제목 엑소시즘: 잠들지 못하는 시간 (Awoken)
제작국 오스트레일리아
제작연도 2019년
감독 다니엘 제이 필립스
출연 사라 웨스트, 벤슨 잭 안소니, 에릭 톰슨 외
장르 공포, 스릴러
상영시간 1시간 28분
개봉 2020년 5월 4일
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씨네마블랙
코로나19 창궐 국면을 겪으면서 새삼 깨닫는 건, 인류가 자연을 정복했다는 건 착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각종 재난영화나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 시나리오를 통해 충분히 대비되어 있다는 것 또한 오만이다. 뜻대로 되는 일이란 없게 마련이다.
칼라는 의대생이다. 그가 의대에 진학한 이유는 결국 언젠가는 발병하고야 말 가족력을 치료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동생 블레이크는 가족력이 발병했다.
이들이 유전으로 물려받은 병은 ‘치명적 가족성 불면증(Fatal familial insomnia)’이다. FFI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이 병은 불치병이다. 즉 현재까지 치료할 방법이나 치료제가 없다. 실제 존재하는 병이다. 찾아보니 여기저기 병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발병한 모든 환자는 10개월 이내에 사망한다. PrNP라는 유전자의 돌연변이 때문에 생기는 병인데, 뇌의 특정 부위를 파괴하는 프리온 단백질이 문제다. 프리온 단백질? 우리에게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사태 때 인간광우병을 야기하는 걸로 익숙하게 들었던 그 물질이다.
동생을 치료하는 것이 목표이기도 했지만, 그가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까닭은 부모의 비참한 죽음 때문이기도 하다. 어머니 사라에게 이 병이 발병했고, 전도유망한 정신과 의사였던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내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아버지의 친구였던 로버트 교수는 동생 블레이크가 발병하자 그에게 특별한 치료를 제안한다. 대학 건물의 지하층에는 아무도 모르는 버려진 장소가 있는데, 거기에 수면 관련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집중치료실을 마련해뒀다는 것이다. 그의 부모도 거기서 치료를 한 전력이 있다며. 지하층 병실로 옮긴 블레이크를 돌보던 칼라는 책장 뒤의 공간에서 감춰진 VHS 비디오테이프와 카메라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비디오테이프엔 자신의 어머니를 치료하기 위해 분투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찍혀 있다. 자신의 부모에게 일어난 사건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VHS 테이프에 기록된 ‘진실’은
영화의 원제는 ‘Awoken’이다. 말하자면 ‘깨어 있는’, ‘잠 못 드는’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호주에서 만들어진 독립공포영화다. 플롯에 구멍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이런 의문이 든다.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한 칼라는 왜 그 테이프들을 한꺼번에 몰아봐 진실을 일찍 깨닫지 못했는가. 천국의 존재를 믿는 동생과 달리 부모의 죽음은 칼라에겐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를 불러왔다. 선과 악, 내지는 초월적 존재를 부인하는 칼라도, 막상 자신의 동생을 살리기 위해 동원하는 것은 신부가 남긴 일기장에 기록된 주문을 읽는 것이다. 그런데 그 주문이라는 게 익숙한 <성경> 구절이다. 영화에서는 구체적으로 출처를 언급하지 않지만 ‘시편’ 23장 1절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도다”와 같은 구절 말이다.
지난해 호주에서 개봉했지만, 독립공포영화여서인지 해외사이트에서도 리뷰나 정보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몇 개 안 되는 리뷰지만, 대부분 “영화가 상당히 오싹(creepy)하다”는 평과 함께 “잠자기는 글렀다”는 식의 감상평이 올라와 있다. 공포영화니 칭찬이다. 리뷰들에 따르면 영화에서 언급하는 수면 관련 질병들은 위의 FFI와 마찬가지로 다 실재하는 병인 모양이다. 신부의 일기에 그려진 삽화를 보면, 이 수면병 환자들에게 깃드는 악령, ‘이디무(iddimu)’는 수면과 각성 사이에 존재하는 악령이라고 하는데 질병과 달리 이디무를 검색하면 나오는 건 나이지리아 어딘가의 지명뿐이다.
후속작 기대되는 호주산 독립공포영화
감독의 공식 홈페이지가 있어 찾아 들어가 보니 1985년 호주에서 태어난 감독은 그동안 주로 수백 편의 CF를 찍은 CF감독 출신인 모양이다. 여러 단편이 있고, 장편영화는 지난해 찍은 이 영화가 현재까지는 유일하다. 보통 CF감독 출신 작품들을 보면 CF가 흔히 그러하듯 스토리텔링보다 트랜디한 순간순간의 장면연출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아 전체적인 내러티브는 산만해진다던가,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는 문제가 많다. 그러나 적어도 이 영화는 앞서 언급한 플롯상의 구멍 한두 개가 눈에 띌 뿐, 오랫동안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까를 두고 고민하고 거듭 개작한 흔적이 느껴진다. 아직 30대 중반이니 앞으로 더 대성할 가능성, 없지 않다. 이웃나라 뉴질랜드에서 직장을 다니다 주말에 동네 친구들과 B급 공포영화를 찍던 피터 잭슨도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이제는 세계가 알아주는 감독으로 거듭나지 않았나. 차기작을 기대해본다.

영화 <나이트메어>(1984) 포스터 / 경향자료사진
꿈속에 등장하는 악령, 하면 떠오르는 것은 <나이트메어> 시리즈(1984~2010)의 프레디 크루거다. 빨간색과 짙은 초록색의 줄무늬 스웨터를 입고 주로 보일러실에서 나타나는데, 화상으로 얽어 있는 얼굴의 반은 챙이 달린 모자로 가리고 있다.
프레디 크루거를 만나지 않기 위해 각 시리즈의 주인공들은 쏟아져 오는 잠을 참지만 자신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면 여지없이 이 몽마(incubus)가 나타나 사지를 난자한다. 문제는 그게 꿈속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프레디의 공격이 실제로 해를 입힌다는 것. 꿈속에서 살해를 당한 사람은 진짜로 죽는다.
프레디가 꿈속의 괴물이 된 ‘사연’은 끔찍한 집단 따돌림이다. 정신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수녀가 사고로 감금되는데, 정신병자들이 그를 윤간해 아버지 없이 태어난 사생아가 프레디 크루거다.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왕따와 손가락질을 받고 성장한 프레디 크루거는 성인이 된 뒤에도 동네 주민들에게 멸시와 버림을 받는다. 결국 동네 사람들은 그를 보일러실에 가둬둔 채 태워 죽인다. 그리고 꿈속의 악마로 부활.
실제 프레디 크루거라는 캐릭터는 1편을 감독한 웨스 크레이븐(나중에 <스크림> 시리즈로 유명해진!)이 어린 시절 우연히 창 너머 목격한 노숙자의 차림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프레디 크루거라는 이름은 (아마도 어린 시절 그를 괴롭혔을) 친구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배우 로버트 잉글런드가 첫 편부터 거의 마지막 편까지 이 프레디 크루거를 연기했다. 그의 배우 경력에서 프레디 크루거라는 배역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사실상 ‘프레디 크루거는 곧 로버트 잉글런드’로 통했다. 좀 나이가 있는 사람들에겐 1980년대 초 한국에서 방영한 TV시리즈 <브이(V)>의 착한 랩틸리언(파충류 외계인) 역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긴 배우다. 2010년 제작된 <나이트메어>(1984) 리메이크에서는 재키 얼 헐리가 프레디 크루거 역을 맡아 시리즈의 팬들을 아쉽게 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