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프로야구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뜻하지 않은 병마에 쓰러져 팬들을 안타깝게 한 선수들이 적지 않다.
해태 김상진은 22세의 젊은 나이에 위암으로 숨을 거뒀다. KIA 이두환도 2011년 대퇴골두육종 진단을 받아 2012년 세상을 떠났다. 롯데 임수혁은 2000년 4월 18일 잠실 LG전에서 2루에 서 있다가 의식 불명으로 갑자기 쓰러져 10년 가까이 투병 생활을 했지만 하늘로 떠나고 말았다. 이밖에 은퇴 후 병마와 싸우다 세상을 떠난 장효조·최동원·유두열 등이 야구팬들의 기억 속에 아련히 남아 있다.

암을 극복한 한국프로야구(KBO) 선수들. 왼쪽부터 정현욱 삼성 라이온즈 투수코치, 정현석 한화 이글스 육성군 타격코치, 원종현 NC 다이노스 투수 / 김기남 기자
그런 가운데 병마를 이겨내고 그라운드로 돌아와 환영받은 선수들이 있다. 정현욱 삼성 코치(당시 LG), 정현석 한화 코치(당시 한화) NC 원종현, 롯데 김상호 등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병마에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섰고, 현재도 그라운드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국민 노예’ 정현욱의 위암 극복기 2016년 3월 26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 두산의 시범경기에서 그 누구보다 씩씩하게 마운드에 오른 선수가 있었다. 당시 LG 소속 정현욱이었다.
정현욱의 별명은 ‘국민 노예’다. 1998년 삼성 유니폼을 입고 프로 무대를 밟은 정현욱은 2003년부터 불펜의 핵심 선수로 성장했다. 그가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2009년이었다. 그해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한 정현욱은 위기 때마다 마운드에 올라 활약했고, 그의 헌신 덕분에 대표팀은 WBC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2012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정현욱은 당시 불펜투수 최고액인 4년 총액 28억6000만원의 계약을 맺고 LG로 둥지를 옮겼다. 이적 첫해 54경기를 소화하며 2승 5패 2세이브 16홀드 평균자책점 3.78을 기록하며 순조로운 야구 인생이 이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2014시즌 뜻하지 않은 병마가 찾아왔다. 바로 그해 말 위암 판정을 받았다. 정현욱은 위를 제거하는 대수술까지 겪었다. 구단에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아달라고 했지만 금세 소문이 퍼졌다. 정현욱은 주변 사람들의 응원 속에서 병을 극복해 나갔다.
2014년 7월 8일 두산전 이후 627일 만에 1군 마운드에 다시 섰다. 예전보다 홀쭉해진 모습의 그는 공의 구속도 140㎞ 초반으로 줄어들었지만 마운드에 다시 오른 것 자체만으로 의미를 뒀다. 2016시즌 정규경기를 17경기 1승 1세이브 3홀드 평균자책점 7.29로 마친 그는 결국 정든 마운드와 이별을 택했다. 선수 시절 후배들의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했던 정현욱은 코치로서 제2의 야구 인생을 건강하게 이어가고 있다.
병마로 무산된 트레이드… 이겨낸 병마 2014년 12월 17일 삼성은 FA 배영수의 보상선수로 지명했던 한화 정현석을 현금 트레이드 형식으로 되돌려보내기로 했다. 정현석은 삼성의 지명을 받아 보상선수로 이적한 지 이틀 만의 일이다.
사정은 이랬다. 정현석은 삼성이 지명하기 전인 12월 8일 건강검진 결과 위암 판정을 받아 12일 수술대에 올랐다. 삼성은 보상선수 지명 마감 기한인 15일 한화를 통해 정현석의 위암 수술 사실을 접했고, 그날 오후 6시에 지명을 완료했다.
수술은 잘 끝났으나 정현석이 그라운드로 돌아오기 위해 6개월 정도 필요하다는 진단 탓에 문제가 불거졌다. 결국 두 구단은 트레이드를 다시 원점으로 돌리기로 합의했다. 삼성은 정현석을 한화에 돌려보내고 다른 보상선수를 지명하지 않는 대신 배영수의 연봉 5억5000만원의 300%를 보상금으로 받기로 했다.
다행히 정현석은 위암 초기에 병을 발견했고, 수술대에 오른 뒤 정상적으로 몸을 만들어갔다. 2015년 8월 5일 문학 SK전에서 복귀해 초구를 노려쳐 안타를 만들었다. 정현석은 “병마와 싸우고 있는 많은 분께 ‘나도 할 수 있다’라는 희망과 용기를 드리고 싶다”라고 전했고 그 말을 실천에 옮겼다. 정현석은 2017시즌까지 경기를 뛰고 은퇴한 뒤 ‘원클럽맨’으로 한화에서 코치 생활까지 하게 됐다.
감동적인 시구의 주인공 NC 원종현 NC는 2015년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의미 있는 시구자를 마운드에 세웠다. 팀의 일원인 원종현이었다. 2012년 육성선수로 입단한 원종현은 2014년부터 본격적인 기회를 잡기 시작했다. 그해 73경기 5승 3패 1세이브 11홀드 평균자책점 4.06으로 활약하며 팀의 필승조 역할을 했다. 뒤늦게 야구 인생에 꽃이 피려고 할 무렵, 원종현은 뜻하지 않은 소식을 들었다.
2015시즌 준비를 위해 미국 애리조나 투손에서 시작한 스프링캠프에 참여했으나 불펜 피칭 도중 어지럼증을 호소해 한국으로 조기 귀국했다. 정밀 검진을 받은 원종현은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원종현은 완치 판정을 받아냈고, 다시 마운드에 설 수 있었다.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시구를 한 뒤 “내년에 진짜 멋지게 던지고 싶다”고 밝힌 원종현은 그 약속을 이뤄냈다.
2016년 복귀해 54경기 3승 3패 3세이브 17홀드 평균자책점 3.18을 기록했고, 다음해에는 무려 68경기에 나서면서 불펜을 지켰다. 2018시즌에도 59경기에 등판하며 건재함을 과시한 원종현은 2019시즌부터는 팀의 마무리 투수로 60경기에서 31세이브를 올리며 자리를 굳혔다.
뇌종양 이겨낸 롯데 김상호 장충고-고려대를 졸업한 뒤 2012년 롯데에 입단한 김상호는 2016년 한 시즌 최다 경기인 114경기를 뛰며 타율 0.290 7홈런 등을 기록했다. 그해 ‘한 방’이 있는 타자라는 이미지를 심어줬다.
2018년 5월 말 큰 벽을 만났다. 5월 25일 퓨처스리그에서 경기를 뛰던 김상호는 갑작스러운 경련 증세 끝에 병원 검진을 받았다. 6월 초 최종 진단을 받은 결과 뇌에 3㎝ 크기의 종양이 생겨 수술이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나마 종양 부위가 운동적 기능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아 수술 후 재활을 하면 정상적으로 그라운드 복귀가 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김상호는 그해 7월 수술을 받았고, 롯데 선수들은 김상호의 등번호인 66번을 모자에 새기고 경기에 뛰었다.
김상호는 지난해 6월 말 팀에 복귀해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했고, 지난 3월 30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1·2군 연습경기에서 대타 홈런까지 쳐냈다. 그는 “그동안 못 즐겼는데 한 타석 한 타석 내려놓고 하니 즐길 수 있었다. 스트레스 안 받고 즐겁게 야구를 하고 싶다”며 희망을 키웠다.
<김하진 기자 hj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