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자동화 대가로 보편적 기본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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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는 시대적 단절을 촉발하는 역사적 경험이다. 이 시기 시민이 무엇을 학습하고 경험하는가에 따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전쟁·대공황·금융위기·불황 등 깊은 역사적 굴곡의 경험이 해당 세대의 가치관을 재구성하는 단절적 매개로 작용했듯, 코로나19도 그런 역할을 할 것이다.

독일의 아디다스 스마트 팩토리에서 신발을 제조하는 로봇의 모습/아디다스 제공

독일의 아디다스 스마트 팩토리에서 신발을 제조하는 로봇의 모습/아디다스 제공

역사적 단절 매개로서 코로나19는 자동화에 대한 인간의 거부감을 불가결하게 걷어내고 있다. 노조의 저항으로,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으로 자동화는 지체되거나 억제돼 왔다. 제도의 도움과 지원으로 점진적 도입에 무게가 실리던 와중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일거에 그 둑을 무너뜨렸다. 마르크스가 예견했던 대로 자동화 기계는 대량의 노동력이 존재하는 곳부터 빠른 속도로 침투해 노동을 대체하고 있다. 물리적 거리 두기는 자동화 기계의 틈입을 부추긴 기폭제였고, 기업가들은 그 명분을 재빠르게 취하는 중이다.

가속 페달을 밟은 자동화 속도는 코로나 트라우마의 강도에 비례할 수밖에 없다. 대면접촉에 대한 시민의 트라우마 강도가 짙게 남을수록 자동화는 이전보다 빠르게 공장을, 매장을, 사무실을 장악해갈 것이다. 문제는 사라진 일자리, 그곳을 채워가고 있는 자동화 기계류가 움켜쥔 기회를 쉽게 내놓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 시점에 발칙하고 급진적인 상상에 잠시 빠져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완전 자동화’를 수용해 풍요의 시대를 만끽하되, 반대급부로 ‘보편적 기본서비스(Universal Basic Service)’를 얻어내는 제안이다. ‘완전 자동화한 럭셔리 코뮤니즘’을 주장한 아론 바스타니는 부족함이 없는 탈희소성의 시대는 자동화 기술의 전면적 도입으로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다만 주택·교통·교육·의료·정보 5가지의 보편적 기본서비스를 보장받음으로써 임금노동을 해체하고 노동-자본의 갈등관계를 해소해 개인의 자기 성장을 도모하는 사회를 구축할 것을 주문한다.

완전한 자동화가 기술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인가라는 판정은 훗날의 고민거리로 미뤄두더라도, 이미 진행되고 있는 자동화 속도로부터 인류를 보호하기 위한 대안적 아이디어를 둘러싼 토론은 더욱 격렬해질 필요가 있다. 물론 기본소득이라는 제도가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그것의 유효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종결되지 않았다. 피케티의 불평등 공식처럼 부동산과 같은 자산수익률이 소득 증가율을 상회하게 된다면, 기본소득의 효과는 무력화된다. 한국처럼 자산수익률이 매번 월급 오름세를 능가하는 경우, 기본소득이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극단적으로는 기본소득이 러다이트 창궐을 억제하겠다는 불순한(?) 기획이라는 비판도 있다.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이 특별하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자동화와 디지털 전환의 속도가 이전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는 것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코로나의 전염 속도만큼이나 대안에 대한 토론은 더욱 빨라져야 한다. 보편적 기본서비스는 피케티가 주장한 기본자산과도 연결될 수 있다. 희소성이 없는 새 시대를 열어젖히는 대문의 열쇠일 수도 있다. 자동화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상상을 기본소득에 가두어둘 이유와 여유가 없다. 지금은 모든 아이디어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것이 먼저다.

<이성규 전 메디아티 미디어테크 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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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오늘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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