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도 간다, 내년에 또 봄은 올 것이다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은
음~ 그리워 말아요 떠나갈 님인데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 걸 서러워 말아요
음~ 어디로 갔을까 길 잃은 나그네는
음~ 어디로 갈까요 님 찾는 하얀 나비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 걸 서러워 말아요
![[내 인생의 노래]김정호 <하얀나비>](https://img.khan.co.kr/newsmaker/1375/1375_70.jpg)
잔잔하게라도 나의 장례식에 어떤 노래를 틀어놓을지 종종 고민하곤 한다. 자신의 장례식을 의지를 가지고 통제할 수는 없다. 장례 의식은 영과 육은 이미 분리되어 육신의 허물을 앞에 놓고 지상에 남은 산 자들의 죽은 자에 대한 마지막 기억 절차다.
어찌 되었든 노래와는 친근하지 않은 내가 그러한 행사에 찾아오는 이들에게 들려줬으면 하는 노래들은 있다. 종종 술 한잔하고 화장실에 들어가 부르는 노래들이다. 중학교 시절 교과서에 실린 서양 가곡 <들에 핀 장미화>, 패티김이 부른 <사랑이란 두 글자는>, 요절 가수 김정호가 부른 <하얀 나비>, 임희숙이 부른 <내 하나의 사랑은 가고> 등이다.
4년 전 이맘때 블로그에 쓴 글을 보게 되었다. 이영애·유지태 주연의 영화 <봄날은 간다>에 대해서 썼다. “<봄날은 간다>는 남녀 간의 사랑 얘기지요. 젊은 날 연애할 때 있을 수 있는 치기까지도 담은 정감 있는 영화이고, 주연 배우 이영애에게서 남자들은 여성에 대한 환상도 봅니다. <봄날은 간다>는 10여 년 전에 보았습니다. 흔히들 봄을 온다고 하지 않고 간다고 표현합니다. 부지불식간에 목련이 피었을 때부터 봄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황사가 올 때부터인지, 대학의 성긴 너른 담장에, 성당 건너 여고 담벼락에 개나리가 제법 화창하게 핀 다음 날 비에 꽃잎들이 떨어지고, 휭하니 그 곁을 버스로 또는 걸어서 지날 때를 봄이라고 할지 잘 몰라 봄은 간다고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봄날은 간다>는 백설희의 원곡을 따라갈 수가 없다. 영화 OST로 남긴 김윤아의 노래 또한 좋다. 봄이 오면 막걸리를 한잔한 후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다. 우리 가곡 <봄처녀>다. 도입부 첫 마디를 뽑아낼 때의 절제되고 처연한 가락이 압권이다.
7년 전쯤 봄비가 내리던 날, 사무실 이전 축하차 찾아온 손님들과 술 한잔 후 노래방에 갔다. 어떤 여성이 정훈희의 <꽃밭에서>를 불렀다. 원래 그런 노래가 아닌데 서늘했다. 또 이분은 다음해 의정부의 서양화가 백영수 선생 구순 잔치에서 <연극이 끝난 뒤>를 불렀다. 부르는 모든 노래가 서늘하고 슬펐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이 타오르던 광장과 거리 무대에서 외치던 학생 운동권의 리더였음을 나중에 알았다.
그중에서도 ‘내 인생의 노래’를 꼽으라면 단연 김정호(1952~1985)의 <하얀 나비>다. 잘 불러서가 아니다. 수십 년을 불러도 늘지 않는다. 의외로 박자 맞추기가 쉽지 않다. 김정호의 데뷔곡인 <이름 모를 소녀>도 좋아한다. 나는 음치다. 중·고등학교 시절, 음악 실기시험 때 끝까지 부른 곡이 없다. 음악 점수가 전 과목 평균 점수를 엄청 깎아 먹었다. 코로나19로 많은 노래방이 폐업했다. 물리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는 봄의 끝자락쯤, 살아남은 지하 어느 노래방에서 ‘법대 가지 말고 음대를 갔어야 할’ 멘토를 모시고 <하얀 나비>를 부를 것이다. 이 봄도 지나간다. 내년에 또 봄을 맞이하면 매우 기쁠 것이다.
<심정택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