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놀라워라!/ 이 많은 훌륭한 피조물이라니!/ 인간은 참으로 아름다워라! 오 멋진 신세계/ 이런 사람들이 사는 곳!”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 5막 1장에서 미란다가 말하는 이 대사는 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공상과학소설 <멋진 신세계>에서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상징으로 차용된다. 헉슬리의 작품을 떠올린 이유는 소설 속 미래에는 지금처럼 예수 탄생을 기점으로 한 서기력, 즉 기원전(BC)과 기원후(AD)를 쓰지 않고, 대량 생산의 아버지 자동차왕 포드기력을 쓰기 때문이다. 등장하는 세계는 포디즘으로 상징되는 생산과 소비의 인공적 세계다. 인간조차 공장에서 생산되면서 알파·베타·감마·입실론의 계급으로 구분되어 ‘만들어’진다. 완벽하게 설계된 시스템에 의해 작동되는 계획된 지구국가. 하지만 단 한 가지, 인간에 대한 철학적 이해가 빠져 있는 세상.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가져온 충격과 공포는 세상을 코로나 이전(BC)과 코로나 이후(AC)로 나누고,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뉴노멀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주장 속에는 어쩌면 신종 바이러스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 때문에 일시적 충동적으로 과장하는 목소리들도 섞여 있지만 한편 분명히 냉철한 현실 분석으로 문명사의 패러다임을 꿰뚫는 통찰도 깔려 있다고 본다.
이미 우리 생애에 겪은 한 차례 패러다임 전환이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건너온 뉴 밀레니엄의 다리였다는 데 동의한다면 이제 바이러스라는 불편하고 위험한 동반자가 개입된, 새로운 시대의 변화요인은 무엇인가? 그것을 짚어내야 새로운 방향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환경, 즉 자연과 인간과 타 생명유기체 간 관계에 관한 새로운 탐험이 필요하다. 산업화와 시장화·세계화의 결과가 제국주의와 영토 지도를 바꾸려는 전쟁이었다면 이제 메타게놈 유전체 지도와 플랫폼이 만들어지는 시대에는 우리 몸을 식민지화하려는 바이러스를 알고, 제어하는 사회 시스템이 필요하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 이사장의 최근 메시지는 매우 중요한데, 그의 제안은 바이러스를 이기기 위한 무기, 백신의 개발을 위한 국제연대에 방점이 찍혀 있다. 더하여 의료자원을 공공재로 인식하는 공감대이다. 국경 밖으로 바이러스를 몰아내 봐야 우리 모두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경고에 귀 기울이자.
그리고 이렇게 새롭게 인식하고 실천 방향을 잡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각 나라·사회·개인이 ‘적응’해 나가는 세계적 문화적 변화에 참여해야 한다. 최소한 이 세 가지가 코로나19가 이전과 이후 세상을 나눈 패러다임 전환의 축일 것이다. 바이러스는 어쩌면 지구라는 어머니, 가이아의 경고 특사일지 모른다. 바이러스를 개체이자 객체로서가 아니라 생태계와 우리 사이에 불협화음으로 바라본다면 중요한 것은 바이러스를 극복한 상태가 아니라 바이러스와 싸워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코로나19와 싸우면서도 뜨거운 참여로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러냈다. 그것은 우리 공동체를 대표하여, 또 대신하여 최적의 해법과 대안을 도출해내는 조직 시스템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국민이 세비를 내는 집단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 요구들을 21대 국회가 오롯이 받아낼 수 있을까. 부디 그런 사명감과 역량을 갖추길 바란다.
<최영일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 이사·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