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을 주는 소녀-우리 사회는 왜 타인의 고통에 공감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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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변할 수 있을까. 지난해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한 웹툰 <아티스트>의 후속작 <곽경수의 길>은 이 질문을 탐구한다. <아티스트> 본편에서 ‘이보다 더 찌질할 순 없다’를 몸소 보여준 캐릭터 ‘곽경수’는 <곽경수의 길>에서 드디어 내면의 열등감을 벗겨내고 자신의 길을 찾아낸다. 경수는 동료인 신득녕이 여러 고락을 겪으며 마침내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질투와 열등감으로 가득 찼던 자신의 내면에서 동료에 대한 존경심을 발견한다. 그것을 계기로 경수는 서서히 변화를 일구어낸다.

러스트·린든 작가의 웹툰 <영생을 주는 소녀> 중 한 장면 / 이끌툰

러스트·린든 작가의 웹툰 <영생을 주는 소녀> 중 한 장면 / 이끌툰

그러나 계기가 없더라도 반드시 변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성 신도를 꾀어 성폭행을 저지른 목사, 수시로 아내를 때린 가족학대범-이들은 변하지 않는 한 끊임없이 자신의 폭력을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변하지 않는 이들을 강제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건 웹툰

<영생을 주는 소녀>(러스트 글·린든 그림, 에끌툰)의 여성들이다. 린든 작가의 전작 <비혼주의자 마리아>에서 성범죄를 저지른 윤 전도사가 이 작품에서 윤 목사로 등장한다. 윤 목사는 여전히 성도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르고, 가족을 향해서는 가정폭력을 행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윤 목사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이후 그의 딸 ‘다라’는 대기업 ‘에붐’에 입사한다. 평범한 스마트 헬스 기기 제조사인 줄 알았던 에붐에서 다라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한다. 죽은 줄로 알았던 아버지가 에붐의 한 카라반 안에 누워 있었다. 알고 보니 이 카라반은 지속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납치해 그들의 뇌를 조작하며 이들이 과연 교화될 수 있을지를 연구하는 비밀 프로젝트였다.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를 평소 신뢰하지 않았던 다라는 이 대표의 회유와 설득으로 카라반 프로젝트에 투입된다.

<영생을 주는 소녀>가 기본적으로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만큼 다라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성경과 기독교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고민을 이어간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기독교 세계관 안에서 어째서 폭력이 반복되는지, 기독교 안에서 인간은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지점이 없는 것인지, 이런 질문들을 헤쳐나가며 카라반의 여성 연구진들은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조건을 찾아 나선다.

명목적으로 카라반 프로젝트는 성범죄자가 교화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지만, 그 기저의 질문은 보다 근본적이다. 이 프로젝트의 진짜 질문은 개개인의 교화를 넘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사회가 가능한지를 향한다. 많은 사람이 n번방 사건에 대해 경악한 부분 중 하나는 피해자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가해자들의 태도 때문이다. 사실 그들은 공감 능력을 상실한 게 아니라 선택적으로 발휘한다. 돈을 내고 구매한 것인데 왜 그게 불법이냐는 반문, 피해자가 먼저 잘못한 것 아니냐는 비난을 통해 가해자들은 자신들끼리 탄탄한 공감의 성역을 구축한다. 공감이 비는 자리에 그들이 가져야 하는 건 죄책감이지만,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이들의 죄책감을 낮은 형량과 가해자 두둔 등으로 값싸게 처리해주었다.

<영생을 주는 소녀>는 제대로 치러지지 못한 죗값의 공터를 다시 피해자의 목소리로 채운다.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카라반의 여성들이 던지는 이 질문은 분명히 컷 바깥을 향하고 있다. 이번에야말로 우리는 여기에 대답해야 한다.

<조경숙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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